[커버스토리]보좌관 좌담회 “국감자료 확보 갈수록 어려워요”

류경재 비서관, 박판열 비서관, 배선희 보좌관(왼쪽부터)이 좌담회에서 의정활동과 관련해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김석구 기자>

정치를 흥미로운 한 편의 드라마에 견준다면, 보좌관들이 빠진 의회 정치의 드라마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의회 정치는 국회의원 한 사람만의 1인극일 수 없다. 의회 정치는 의원 개인의 역량과 보좌관들의 숨은 노력이 조화할 때 비로소 빛난다. 보좌관들은 정책 개발, 국정감사 준비, 언론 홍보, 선거 전략 수립 등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필요한 모든 일을 꾸려나가는 ‘멀티플레이어’다. 바쁘고, 바쁜 만큼 희비가 교차한다.

뉴스메이커는 이번 의정활동 평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국회의원들을 충실히 뒷받침해온 보좌관 세 사람을 만나 17대 국회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배선희 보좌관(민주당 손봉숙 의원실), 박판열 비서관(한나라당 김석준 의원실), 류경재 비서관(대통합민주신당 이낙연 의원실)이 참여했다.

사회 국정감사가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하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판열 국감은 두 가지를 준비한다. 하나는 언론 보도를 준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적인 준비다. 언론과 관련해서는 기자들이 좋아하는 부분들을 준비하는 것인데, 그게 정책적으로 반영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많이 준비하는 건 정책적인 부분이다. 가령 전국 시군구별 정보화지수 같은 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자료를 준비하고 분석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국감과 상임위에서 했던 지적들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아까 말한 정보화지수나 주파수 대역 분배가 있다.

또 이동통신사 간 유효 경쟁 정책을 할 것이냐 자유 경쟁 정책을 할 것이냐와 관련해서 유효 경쟁 정책을 당분간 유지하되 궁극적으로는 자유 경쟁 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부분이 기억난다. 새 정부의 정보통신정책 방향이 그간 주장했던 방향으로 정해지고 있다.

배선희 손봉숙 의원은 사행산업 관련 활동을 많이 했다. 2004년부터 카지노와 사행산업에 대한 질의를 많이 해왔다. 그때는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2006년에는 별다른 반향이 없어 사행산업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이야기 문제가 터지면서 관심이 고조됐다. 다행히 그간 축적해놓은 부분이 있어서 당시 많이 주목받긴 했지만 허무하기도 했다. 그 이전에 언론과 정부에 대해서 문제의 심각성을 열심히 주장했을 때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큰 사건이 터지고서야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또 하나는 장애여성 문제다. 손 의원께서 문광위와 함께 여성가족위 일을 했다. 2005년 국감에서 장애여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는데, 당시 여성가족부 입장에서는 장애여성이 정책 사업 대상이 아니었다.

그때 의원께서 국감장을 눈물바다로 만들면서 아주 감동적인 질의를 했다. 그 뒤에 여성가족부에 장애여성팀이 생겼다.

류경재 국감에서는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자면 자료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 상대방은 안 주려고 하고 우리는 받아야 하니까. 국감 전날까지도 안 주고 버티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는 답답하니까 받으러 간다든지 우회적인 방법으로 입수한다.

예를 들면 2006년에 부도 임대주택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 알아 보니까 건교부에서 모 회계법인에 의뢰해 당시 임대주택 대출을 담당하던 국민은행을 실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부실 대출을 입증하는 사례가 여럿 나왔는데 건교부에서 그 자료를 안 주려고 했다. 여러 가지 경로로 알아보다가 해당 회계법인을 통해 겨우 빼냈다.

사회 피감기관이 정부 부처인데, 피감기관과 관계를 잘 형성하는 노하우가 있나.

박판열 우리는 자료를 받아야 하고, 그쪽에서는 질의서를 받아가야 하니, 서로 주고받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초반에 자료가 미흡하거나, 원하던 자료가 오지 않았거나, 전화를 했는데 제대로 응대하지 않으면 우리가 질의서를 주지 않는다. 아니면 나중에 주거나. 대개는 미리 만나서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 입장을 얘기하고 그쪽 입장을 듣는 거다. 큰 이슈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얻지 못하는 자료들도 얻는다. 그 정도까지 관계를 형성한다.

배선희 일절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접대를 받지 않는다. 구하기 힘든 자료는, 기관에 따라 다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가 어떤 기관에 자료를 요구했는데, 엉뚱하게 정보기관에서 찾아온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어떤 사업자를 방문해서 회의록을 요구했는데 주지 않아 가서 일일이 노트북으로 쳤다. 그랬더니 그쪽 직원이 ‘보좌관이 할 일이 없어서 여기 와서 다 치고 있냐’고 했다. 이 일과 관련해 의원께서 국감장에서 사과를 받아낸 적도 있다.

류경재 내 경우에는 기관들로부터 평을 잘 못 받는 편이다. 야당이어서 그랬나(웃음). 항상 기관에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나는 자료와 관련해서 기관과 마찰이 잦은 편이다. 어느 정도 긴장이 있어야 상대방에게 아주 힘든 걸 요구했을 때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자료를 받을 수 있다.

사회 정부 관계자들을 질책하기도 하나.

류경재 싸우는 거다. 이런 건 공개해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고. 그러나 위압적으로 할 수는 없다. 요즘은 행정부가 더 고자세다. 국회에서 달라면 다 줘야 하느냐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더 당황스럽다.

사회 국감 때 보면 정부에서 국감 대비 국회 대응 매뉴얼 같은 것이 나온다. 예를 들면 민감한 사항인 경우 국회에서 발표하기 전에 보도자료를 뿌린다든지 하는 일이 있다.

박판열 지난번에 다른 의원실에서 그걸 공개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글쎄, 자기한테 감출 게 있거나 인사 비리가 있다면 당연히 밝혀야 하는 것일 테고, 유출돼서는 안 될 정보라면 법에 따라 요구하면 될 것이다. 법 절차에 따라 자료 공개가 안 되는 경우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테고.

사회 입법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법안이 있다면.

배선희 지난 12월에 어렵게 통과한 것이 있다. ‘옥외광고물등 관리법’이라고, 행자위 관련 법안이다. 공항으로 가는 도로나 경부고속도로를 보면 큰 광고 간판들이 있다. 야립 간판이라고 한다. 도로 양측이나 산등성이 쪽에 많다. 서울올림픽 당시 전국에 설치한 것들이다. 당시 특례법으로 5년간 한시적으로 설치하기로 했던 것인데 벌써 20년이 지나도록 철거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걸 없애는 법안을 지난해에 발의해 통과시키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 광고판을 철거할 때까지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굉장히 많은 압력을 받았다. 행자부와 문광부 사이 갈등도 컸고.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지만 어렵게 통과해 앞으로는 야립 간판들이 다 철거될 것이다.

류경재 부끄럽지만 원안 가결된 법안이 많지 않다. 일전에 부산에서 박모 회장이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끌려나온 적이 있다. 나는 국회에 들어와서 계속 건교위 일만 하고 있는데, 17대에 들어와서 기내 난동 현황을 보니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다. ‘항공안전및보안에관한법률’을 보니까 벌금이 100만 원이었다. 일본은 50만 엔 정도로 높다. 그래서 벌금을 500만 원으로 올리는 내용으로 법안을 내서 원안 가결됐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회 가장 보람 있는 일과 힘든 일을 꼽는다면.

박판열 보람은 의정활동 평가를 좋게 받을 때, 정책들이 의원을 통해서 잘 반영됐을 때다. 힘든 건 직원 수는 제한되어 있는데 일이 쏟아질 때가 많다는 점이다.

배선희 보람 있는 일이라면 꼭 할 얘기가 있다. 그동안 장애인 정책이라고 하면 보건복지부에서 다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장애인 문화예술인이 굉장히 많다. 장애인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문광부가 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제안해서 지난 연말에 통과됐다. 조문상으로는 많은 내용을 담지 못해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장애인 문화예술인들로부터 굉장히 호평을 받았다. 지난 한 달 동안 의원님이 관련 단체로부터 감사패만 3~4개 받았다. 장애인들에 대해 단순한 생계 보장만이 아니라 예술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법이어서 보람 있었다. 힘든 점을 굳이 말하자면, 의원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의원께서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정당 내에서 의원이 존재감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다.

류경재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부분이 개선되거나 법안이 통과돼 시행된다든지 하는 경우에 보람을 느낀다. 지난해 건교부 결산심사 때 일이다. 철거민들이 이주할 때 국민주택기금에서 저리로 전세 자금을 지원하는 개발이주자 전세자금지원 제도가 있는데 기획예산처에서 이 제도에 대해 주택공사나 토지공사 같은 사업자들이 책임을 져야지 국가 기금으로 하는 게 맞느냐며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사업자들이 사실상 자금 지원을 없애버렸다. 한 푼도 대출을 집행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우리가 지적해 건교부에서 원상 회복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보람을 느꼈다. 어려운 점이야 비슷하지 않겠나. 일은 끊임없이 많고 충전할 시간은 없다.

사회 정책을 담당하다 보면 이익단체에서 로비하지 않나.

박판열 그들의 목소리를 다 들어주는 게 결국 국회의 업무 아닌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나오는 의견은 충분히 다 듣는다. 우리 쪽 생각도 충분히 이야기해준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공청회나 토론회를 한다. 그 결론을 토대로 얘기하는 건데, 그럼에도 외부에서 보면 ‘이 사람이 누구 편을 드는 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대한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중재해서 우리 목소리를 내는 게 기본이다.

사회 정책담당 하면서 한 달에 몇 번은 법안 개정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그런 부담은 없나.

류경재 의원께서 따로 압박을 주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부담을 많이 느낀다. 요즘 원안 가결이 몇 건이냐로 평가를 많이 하는데, 사실 원안 가결은 하늘의 별 따기다. 처음 국회에 왔을 때는 원안 가결 100건을 채우는 게 목표였는데 갈수록 어렵다. 워낙 많은 법안이 경쟁적으로 나오고, 그것들을 쌓아뒀다가 같은 법안들을 한 번에 처리하니까….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신경 써야 하고.

배선희 의원님이 많이 요구하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우리는 초기에 의원님과 토론을 했다. 단순 조항 개정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런 걸로 발의 건수를 채우지는 말자고 했다. 발의 건수로 평가하는 건 한계가 있다. 정책보고서도 질적으로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보좌관이 만들지 않고 부처에서 만들어준 경우도 많다.

박판열 법안에 대해서 말하자면, 지역구 의원이다 보니 지역 의견을 반영하는 법안도 있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걸 나쁘게 보기도 하지만 지역 대표로서 그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국회의원의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정리·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