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총리‘위기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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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출범 4개월 만에 지지율 급락… 자민당 내부서도 ‘흔들기’ 가시화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지난 16일 자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45.6%로 내각 출범 4개월 만에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한 달 전에 비해 6.9%포인트나 떨어진 수치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1.6%로, 한 달 전보다 6.3%포인트 증가했다.

이 정도는 그래도 후한 편이다. 지난해 12월 말엔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교도통신 조사에서는 ‘지지한다’는 응답이 35.3%, 니혼게이자이 신문 43%, 마이니치 신문 33%로 한두 달 전의 정기 여론조사 때보다 각각 12.7%, 12%, 13%포인트 떨어졌다. 3개 매체의 조사 모두 ‘지지한다’는 응답보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많았다.

전임자인 아베 신조 총리의 사퇴로 지난 9월 급작스럽게 내각 수장에 오른 후쿠다 총리는 주변국과의 외교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내각 출범 직후 겸손한 자세와 성실한 면모 등으로 상당히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최근에는 30%대로 급락한 상태다. ‘친중파’란 평가답게 지난 12월 말 중국을 방문해 중·일 해빙무드를 과시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국민들이 그에게 보내는 시선은 싸늘하다.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정가에 대두
요즘 들어 후쿠다 총리에 대한 존재감은 느끼기 힘들다. 일부에서는 “후쿠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만큼 위축됐다는 말이다.

우선 내정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아베 총리를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된 5000만여 건의 연금기록 누락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데다, 전 방위성 차관 골프 접대사건, ‘C형 간염 약해(藥害)’ 문제 등 악재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C형 간염 약해’ 문제란 후쿠다 총리가 국민들이 오염된 혈액치료제를 통해 C형 간염에 집단 감염된 사태에 대해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다시 한 번 사면초가에 몰린 일을 말한다.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책임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국민들의 불신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이 같은 국면은 반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후쿠다가 더욱 휘청거릴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올해 일본 정가에서는 ‘정권교체 가능성’이란 화두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사실 정권교체 가능성 문제는 이미 예견돼왔다.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역사적인 참패’(아사히 신문)를 당한 것이 계기다. 올 들어 일본 정가에서는 자민당의 1당지배 체제가 종식되고 사실상 정권이 교체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국회 상황은 더욱 어렵다. 후쿠다 총리가 정상적으로 정권을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려 있다. 이른바 ‘네지레(비틀린) 국회’다. 중의원은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참의원은 제1야당인 민주당이 장악, 전체 242석 중 119석을 차지하고 있다. 여야 합의가 없이는 법안 통과가 곤란한 형국이다.

실제로 지난 11일에는 일본 정국의 뇌관으로 불리던 해상자위대의 급유지원 특별조치법(특조법)을 중의원에서 재의결하면서 일본 정가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왔다. 이날 오전 야당이 장악한 참의원이 전체회의에서 특조법을 부결했지만 중의원은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집권 여당인 자민·공명당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특조법을 재의결했다. 참의원에서 부결한 법안을 중의원에서 재의결한 것은 1951년 이후 57년 만의 ‘사건’이다. 일본 헌법은 참의원 부결 법안에 대해 중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재의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내 유력파벌선 후임주자 물색
당초 제1야당인 민주당은 참의원 특별법안 부결 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며 후쿠다 총리를 압박하기로 했지만 이를 철회했다. ‘과반의석 확보’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야당이 중의원 전체 480석 중 과반을 획득하려면 현재 연립여당이 보유한 336석(자민 305, 공명 31석) 가운데 최소 96석을 빼앗아야 한다. 더구나 민주당 단독으로 절반 이상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현재 가지고 있는 113석을 2배 이상 늘려야 한다. 그럴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일본 언론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그러나 이처럼 법안 통과를 놓고 파열음을 내는 상황은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으며 ‘후쿠다 흔들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정당·정파 간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비정상적인’ 정국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볼 수 있다. 중의원 해산 뒤 실시하는 총선에서서 민주당이 압승해 중의원의 다수당 지위를 차지해 정권을 교체하거나, 자민당이 승리하여 정계 개편 등을 통해 틀을 다시 짜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참패할 경우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참의원 내 추종 세력을 이끌고 탈당해 자민당과 보수 대연정을 시도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민주당이 의석을 200석 정도로 크게 늘리더라도 ‘야당 과반수’에 실패하면, 대연정 움직임이 다시 꿈틀거릴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말 오자와 민주당 대표가 방송에 출연해 “대연정은 1석3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 동시에 민주당원들에게 집권 훈련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며 애착을 나타낸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과반수 확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여야 모두 조기 총선에 대해서는 다소 미온적이다. 중의원 해산 시기도 오는 7월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선진8개국(G8) 정상회담 이후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어떤 시나리오가 되든 후쿠다 총리에게는 ‘우울한 전망’이다. 자민당 내에서는 후쿠다 총리를 간판으로 내세워 총선을 치를 경우 야당에 승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당내 유력 파벌에서 후임 주자를 찾는 물밑작업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언론에 이런 내용을 슬쩍슬쩍 흘리는 모습도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아베 전 총리 진영 의원들의 회합이 부쩍 잦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측근 비서관이 “차기 총리감은 다니가키 사다카즈 정조회장”이라고 하는 등 ‘후쿠다 흔들기’가 가시화하는 양상이다. 자민당이 후쿠다를 내세워 가까스로 총선에서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정계개편 과정에서 후쿠다 총리에게 책임을 물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이래저래 후쿠다 총리에게는 ‘추운 겨울’이다.

<국제부┃조홍민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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