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석정남 '공장의 불빛'
일하는 신체, 쓰는 주체…여성 노동자 수기의 출발
석정남의 ‘불타는 눈물’이나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같은 노동자 소설을 읽으면서, 또 주말이면 경인공단이나 구로동을 취재하면서 이런 것들을 놔두고 어떻게 그냥 지나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아직도 이루지 못한 ‘난장이의 꿈’: 조세희 ‘난쏘공’ 출간 30주년, 경향신문 2008년 11월 11일 기사 일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작가 조세희는 1970년대 석정남과 유동우의 노동자 소설(엄밀하게는 수기)이 자신의 창작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이 인터뷰 기사에서 언급한 ‘불타는 눈물’은 ‘월간 대화’에 실린 석정남의 ‘어느 여공의 일기’의 일부이다. 제목처럼 온전히 스무 살 여성 노동자의 일기로만 이뤄진 이 수기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1976년 11월)와 ‘불타는 눈물’(1976년 12월)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다. ‘어느 여공의 일기’에서 발화한 여성 노동자 수기는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1982),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1984)로 이어지면서 1970년대 진보적 지식인 사회와 문학 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계층적·성적으로 소수자였던 ‘여성’ ‘노동자’가 글쓰기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지식인 남성 중심의 견고한 문학 장의 위계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석정남은 이 수기를 동일방직에서 해고된 뒤 7년이 지나 <공장의 불빛>(1984)으로 개작해 단행본으로 재출간한다. ‘어느 여공의 일기’는 작가가 동일방직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갓 노동운동에 입문했던 전후 시기를 아우르면서 평범한 여자아이가 시를 읽고 글을 쓰는 교양 있는 여성을 꿈꾸지만 누추한 현실에 좌절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 사적 기록물에 가깝다. 반면 <공장의 불빛>은 작가가 ‘나체 시위’와 ‘똥물 사건’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동일방직 사건의 배경과 실상을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의도로 쓰인 19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아카이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