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 아들인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과거 군사정권 후예라고 자처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김영삼 대통령 사진이 더 이상 그곳에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사진을 당장 내려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힘에 전두환 사진 걸라는 극우 유튜버의 주문에 장동혁 지도부가 무응답으로 호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 아들인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과거 군사정권 후예라고 자처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김영삼 대통령 사진이 더 이상 그곳에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사진을 당장 내려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힘에 전두환 사진 걸라는 극우 유튜버의 주문에 장동혁 지도부가 무응답으로 호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김지원의 '잠과 꿈'
아틀라스가 공장 들어오는 날, 한국사회는 준비돼 있나
취재 후
퇴직연금, 개인도 이제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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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안을 탐색하는 여성 서사
김우재의 플라이룸
거미의 엉덩이와 개미의 냄새
이한재의 세계 인권 현장
독재로 그늘진 땅에 민주주의의 씨앗을 심다1970년대 독재자 이디 아민(Idi Amin)의 통치 기간 동안 우간다에서 30만명에서 50만명의 시민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자비한 납치와 고문 그리고 실종이 이어지는 끔찍한 시기였다. 우간다 민주주의 교육활동가 마이클 카타가야는 “오늘날 많은 우간다인은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으며, 정권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86년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는 이 비극을 끝내겠다며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으나 그 역시 결국 독재자의 길을 걷고 있다.
가장 급진적인 로컬, 동네서점
책 읽기의 안팎과 지역의 미래임동과 광천동은 원래 광주의 바깥으로, 공업지대로 개발된 곳이다. 임동에는 방직공장이, 광천동엔 자동차 공장이 있었다. 당연히 그곳에는 노동자들이 살았다. 도시의 하수가 합수되는 광주천 옆 공장에 목구멍을 대고 살던 노동자들에게 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대신 책은 광주의 안쪽에 있었다. 광주 사람들이 “그럼 충장서림에서 만나자”며 모두가 약속을 하던 곳, 매일 5시 18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장의 기억을 일깨우는 곳에 책이 있었다. 1990년대 ‘충장서림’이 있던 시내에는 ‘나라서적’, ‘삼복서점’이 자웅을 겨루며 광주 향토서점 ‘빅 3’로 자존심을 지키며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충장로 우체국사거리 앞의 ‘나라서적’은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광주에서 공시지가 기준 평당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었다.
가상화폐 시가총액 1위 종목인 비트코인의 가격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리던 7만 달러를 내준 이후 추락을 거듭해 한때 6만 달러까지 떨어졌다. 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미 동부시간 5일(현지시간) 오후 8시30분 기준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약 12% 하락한 6만4937달러를 기록했다. 이보다 앞서 오후 7시15분에는 장중 6만 달러를 터치했다.
서울에 사는 30대 초반 남성인 취업준비생 A씨는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 중”이라고 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감정평가법인에 들어가려고요. 어시(보조원)로 5년쯤 일하면 감정평가사 1차 시험이 면제되거든요. 감정평가사로 일하는 게 제 목표예요.” A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에 취직했다가 그만뒀다. 박봉에 야간 근무도 잦았다. 고졸이라고 무시당하는 일도 있었다. 군대 전역 후 느지막이 대학에 가서 2년 전 졸업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생활한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도 해지하고, 생활비 아끼는데도 빠듯해요. 월세도 내야 하고, 학자금 대출은 500만원 더 남아 있고….”
새해 벽두, 이란 전역은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란 구호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란 신정 체제 종식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자 이란 정권은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시위대를 무력으로 탄압하고 살해하는 것으로. 하지만 이번 유혈 진압은 방식과 규모 면에서 무척 잔학했다. 지난 1월 8~9일(현지시간) 이틀 동안 보안군의 유혈 진압으로 사망한 사람은 수천명에서 많게는 3만명 이상으로 보고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됐기 때문에 시위는 잦아들었다. 이란 정권이 체제 수호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상처를 서둘러 덮어버린 일시적 봉합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