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감시단도 못 말리는 스리랑카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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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정부 휴전 파기 선언으로 동북부 타밀지역 긴장감 고조

스리랑카의 군인들이 지난 1월 2일 콜롬보 시내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현장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스리랑카의 군인들이 지난 1월 2일 콜롬보 시내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현장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살얼음판을 기어온 6년간의 스리랑카 휴전, 그나마 종이에만 있던 그 ‘종이휴전’조차 1월 3일 마힌드라 라자팍세 대통령의 공식 파기선언으로 깨지고 말았다. 타밀 타이거 측(LTTE)은 10일 휴전감시단(SLMM) 대표인 조한 솔버그 소장과 만난 자리에서 “그래도 (휴전을) 준수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정부 의지가 워낙 확고했다. 관영언론인 스리랑카 영자일간지 데일리 미러가 28일자에서 인용한 외무부 장관 라뜨나시리 위크라마나야케의 말을 들어보자. “서방 국가들이 우리보고 타밀 타이거와 협상하라고 하는데, 그들도 자국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와 협상 안 하지 않나. 우리에게도 테러리즘은 테러리즘이다.”

휴전 파기 선언 후 2주가 지난 16일, 휴전협정에 따라 ‘파기선언’이 효력을 발생하는 날이었다. 이날 저녁 7시 휴전감시단은 “우리는 이 복잡한 분쟁을 군사적 방식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음을 확신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짐을 쌌다. 휴전을 깬 측에 간접적이나마 책임을 좀 더 얹어놓은 듯한 이 성명은 또 “그들(휴전감시단)이 떠나는 게 두렵다”던 동북부 타밀인들의 공포감도 살짝 언급했다. 왜 깨졌을까.

2005년 선거 후부터 휴전 파기 조짐
스리랑카 정부는 휴전 파기 시점을 야당인 민족연합 정당 소속 타밀 정치인 타가라자 마헤스와란의 암살과 바로 이어진 콜롬보 시내 폭탄 테러 직후에 잡았다. 표면적으로는 ‘테러리스트 공격을 더는 못 참아서…’라는 타이밍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암살과 폭발이 휴전 파기의 구실이 되기에 좀 새삼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는 건 그동안의 솔직한 현실이었다. 늘 타밀 타이거의 소행으로 지목되었고 별다른 조사가 없었지만, 타밀 타이거는 물론 정부군 지원을 받는 각종 타밀 민병대나 정부와 연정한 강경파 정당들이 비공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조직’들도 할 수 있는 ‘수준’의 폭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2005년 선거에서 당선한 라자팍세 정부가 휴전을 파기할 것이라는 건 예상된 우려였다. 불교극우주의 정당인 민족유산당(JHU), 극좌 인종주의 정당인 인민해방전선(JVP) 등 초강경세력과 연정으로 집권한 라자팍세 정부 출범을 뒤따른 건 폭력사태와 군사작전의 증가였기 때문이다. SLMM이 지난해 발표한 ‘휴전5년’ 보고서에 따르면, 휴전협정 체결(2002년 2월) 이래 3년 동안 130명이 사망한 반면, 2007년 2월을 기준으로 ‘지난 15개월 동안’ 4000명이 사망했다. 당선 직후 국방 예산을 30%나 증가시킨 라자팍세 정부의 탄생 시점은 바로 이 폭력 사태가 급증하기 시작한 2005년 11월이다.

그리고 2006년 중반부터는 (동북부 타밀지역에 대한) 공습과 교전, 민간인 학살, 납치 규모가 더욱 커졌지만 국제 사회와 외신이 주로 목소리를 낸 건 콜롬보 폭탄이나 콜롬보 정치인 암살이었다. 2006년 11월 피난민 캠프에 대한 공습으로 난민 62명이 학살당한 소식 같은 건 ‘친 타이거 언론’으로 불리는 타밀넷이나 인권단체 보고서가 아닌 이상 좀처럼 다루지 않았다. 이건 스리랑카 정부가 동북부 타밀 지역을 철저히 고립시키며 정보를 차단해온 탓도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타이거 본부와 가까운 오만따이 검문소까지 공식 봉쇄해왔다.

이런 강경파 정부의 탄생에는 타이거 역시 책임이 있다. 타이거의 선거 보이콧이 아니었다면 휴전준수와 평화협정 진행에 호의적인 민족연합정당 라닐 위크레마싱헤 전 총리의 당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부군 공습으로 타밀 협상대표 사망
강경파 정부의 탄생이 휴전 파기에 가속도를 붙였다면, 타밀 민병대인 ‘카루나 그룹’은 휴전을 위협한 폭력 사태의 시작이었고 또 최장기 변수였다. 2004년 4월 타이거 동부 사령관이던 카루나는 타이거를 이탈한 후 또 다른 민병대 조직 필리얀 정파와 함께 타밀인민해방타이거(TMVP)를 결성했다. 이들은 스리랑카 군의 지원을 받으며 동부지역에서 대 타이거 싸움을 왕성하게 벌였다. 지난해 타이거 통제 지역이던 동부지역이 결국 정부군 손에 넘어간 건 이들의 공이 크다. SLMM의 보고서, 각종 인권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급증하는 납치, 미성년 병사 모집의 주연도 다수가 이들 몫이다.

최근 이 그룹은 내부 갈등을 거쳐 필리얀이 조직을 넘겨받았고, 카루나는 지난 11월 외교관 위조 여권을 들고 영국으로 입국하다 공항에서 구속되었다. TMVP는 이제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정당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카루나는 9개월 형을 선고받은 후 현재 난민신청을 했다는 후문이다. ‘타밀 민병대는 모두 비무장할 것’을 명시한 휴전협정 1항 8조 위반에 대해 감시단도 중재단도 별수를 쓰지 못한 게 결국 전쟁을 일으키는 씨앗이 되고 만 것이다.

한편, 타밀 타이거 협상 대표들의 잇따른 죽음 역시 휴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수십 년간 타이거의 협상 대표였고 이데올로그를 도맡아온 안톤 발라싱함은 2006년 12월 지병으로 세상을 떴지만, 그의 뒤를 이어 협상 대표를 맡아온 정치 수석 타밀셀반은 지난해 11월 2일 스리랑카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협상 파트너의 대표를 암살한 이 사건은 스리랑카 정부가 더는 대화 의지가 없다는 휴전 파기의 신호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정부군의 공습, 서서히 횟수를 높여가는 지상전. 여기에 육·해·공군력을 모두 갖춘 타밀 타이거 역시 강력히 맞서면서 말리고 감시하던 눈들이 떠난 북동부 타밀 지역은 이제 본격적인 전쟁터가 되고 있다. 휴전 파기 선언 직후 폰세카 스리랑카군 총사령관은 “다음 사령관에게 전쟁을 넘기지 않겠다”라며 전의를 불태운 바도 있다.

반면 타밀 타이거 최고 사령관 프라바카란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 대신 스리랑카군의 공습으로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잠시 고개를 들었고(그는 2004년 쓰나미 때도 ‘죽었고’ 그 전에도 다섯 번쯤 ‘죽었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후 인도로 잠입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20년 내전 후 ‘일단 멈춤’ 했다가 30년 내전으로 향하는 그 전선에는 ‘적’의 사상자 수치 높이기에 혈안이 된 프로파간다전도 한창이다. 그러나 그 전쟁이 (대부분 타밀 민간인인) 7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은 누구의 프로파간다도 아니다. 고립되고 봉쇄된 타밀 지역 민간인들이 진짜 전쟁 한가운데에서 꼼짝없이 죽어가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이유경〈국제분쟁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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