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자 모 중앙일간지에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 인터뷰에서 이 장관은 “‘인공지능(AI) 기본법’이 통과돼야 딥보이스 같은 AI 악용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시행령에 담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게 말이 되나?
필자는 그동안 이 법안의 내용을 지켜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 법안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다. 그래도 이 기사는 뒷골을 때렸다. 왜 그랬을까?
필자가 처음 이 장관의 인터뷰에 의문을 가지게 된 이유는 ‘처벌 규정을 시행령에 담겠다’는 취지의 발언 때문이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위헌적 발상이고, 아마도 대한민국 내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제12조 제1항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죄의 종류와 형벌의 내용은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소위 죄형법정주의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처벌 규정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담겠다고? 일단 말이 안 된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이 거짓말?
그다음부터는 최대한 이 장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 했다. 형벌과 관련한 규정을 시행령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니, 어쩌면 이 장관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처벌’은 형사처벌이 아니라 과징금이나 과태료와 같은 행정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변명도 사실은 쉽지 않다. 대부분은 과징금이나 과태료 역시 시행령이 아니라 법률에 규정하기 때문이다. 간혹 과징금을 부과할 때의 계산 방식이나 과태료에 하한이나 상한을 두는 경우 이를 구체화하는 내용을 시행령 등 하위 규정에 위임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정말 이 장관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결국 법안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회 홈페이지의 의안 정보 부분에 가서 관련 법안을 살펴보았다. 관련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의 계류의안 목록에는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발전’으로 시작하는 법안은 없었지만, ‘인공지능’으로 시작하는 법안은 총 9개가 수록돼 있었다. 아마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법안은 이 9개 법안을 적당히 융합하고 수정한 대안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찾아본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이들 법안은 2022년 12월 15일 상정 및 축조 심의를 거쳐 2023년 2월 14일 그 당시까지 발의됐던 총 7개 법률안의 내용을 대안에 반영으로 것으로 하여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했다.
그렇다면 수정 대안은 딥보이스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에 대한 ‘처벌’과 관련해 어떤 벌칙 조항을 자체에 규정하거나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을까? 알 수 없다. 매우 의아스럽게도 수정 대안이 소위를 통과한 지 1년이 훨씬 넘었지만 수정 대안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암중모색밖에 없다. 수정 대안은 7개 법률안 중 어떤 안을 기본골격으로 하여 만들어졌을까? 이것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필자의 느낌상 윤두현 의원 안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첫째, 윤두현 의원 안은 2022년 12월 7일 발의돼 그다음 날인 12월 8일 과방위로 회부된 후 별도의 심사보고서 없이 1주일 후에 개최되는 법안심사 소위에 소위 ‘직상정’됐다. 국회 속기록의 조승래 소위 위원장 발언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미는 법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윤두현 의원 안은 시민단체가 이번 인공지능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우선 허용·사후규제 원칙’을 제11조에서 천명하는데,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축조심의 때 등장하는 기본 골격 법안의 제11조도 이 원칙을 담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수정 대안은 아마도 윤두현 의원 안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거기에 다른 의원 안의 일부 조항과 과기정통부의 의견을 반영해 정리한 법안으로 보인다. 그럼 이들 법안의 벌칙 조항은 과연 어떠한가? 정말 딥보이스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가?
일단 윤두현 의원 안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 눈을 씻고 찾아도 그런 조항은 보이지 않는다. 윤두현 의원 안에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으로 의제되는 정부 산하 위원회의 위원이 자신이 위원회 활동 과정에서 지득한 비밀을 누설한 경우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만 있다. 잘못된 인공지능을 개발하거나 활용하는 사업자에 대한 형사처벌, 행정벌 부과는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 민사상 손해배상 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내용조차 없다.
다만 정필모 의원 안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고위험 인공지능 사업자에 대해서는 신고 의무가 부과되고 과기정통부 장관은 신고하지 않거나 거짓 신고를 한 사업자에 대해 영업 정지 명령이나 폐업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만일 사업자가 정지 명령이나 폐업 명령을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에 처한다. 그런데 과기정통부 장관은 정지 명령이 이용자에게 ‘심한 불편’을 줄 때는 정지 명령 대신 1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그 자세한 내용은 시행령에 위임했다.
‘AI 정상회의’ 앞두고 언론플레이 의혹
그럼 이제 이 장관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평가해 보자. 첫째, 수정 대안이 윤두현 의원 안에 근거해 벌칙 조항을 만들었다면 장관 인터뷰는 거짓말이다. 둘째, 수정 대안이 정필모 의원 안의 벌칙 조항 또는 그와 유사한 내용을 담았다면 과기정통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시행령을 통해 처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처벌일까? 정필모 의원 안의 과징금은 형사처벌로 연결될 수 있는 정지 명령을 면해주는 대가이므로 오히려 면죄부에 가깝다. 또한 1억원의 과징금은 너무 작을 수 있다. 참고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시장지배력 남용의 경우 매출액의 6%(매출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는 20억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딥보이스 악용 범죄자에게 형사처벌을 면해주면서 1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그 사업자가 무서워할까? 사실상 말이 안 된다.
오는 5월 21부터 22일에는 서울에서 ‘AI 서울 정상회의(AI Seoul Summit)’가 개최된다. 인공지능의 안전성을 강화하자는 회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회의를 영국과 공동 주최하면서 뒤에서는 석연치 않은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회 과방위는 즉시 수정 대안을 공개해 국민이 지금 정부와 여야가 짝짜꿍이 돼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이처럼 중요한 법을 열흘도 남지 않은 이번 국회에서 졸속과 날치기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그 입법을 다음 국회로 넘겨야 마땅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