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 명품족’ 사치 눈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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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회복으로 최고급 제품·서비스 찾아 ‘과시적 소비’ 일삼아

일본 도쿄의 명품족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다.
1980년대 거품경제의 붕괴 이후 10여 년간 이어진 경기 침체로 일본에서는 한동안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과소비가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최근 경기가 회복되고 활황세가 이어지면서 최고급 명품과 서비스만 찾는 신흥 부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잃어버린 10년’의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이들은 최고급만 선호하는 과시적 소비를 일삼고 있다. 대부분 서민의 검소한 모습과 동떨어진 초호화 생활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지만, 명품 업체들은 이를 기회로 일본 진출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신(新) 명품족의 빛나는 생활
체형에 맞춘 시트를 단 주문제작 롤스로이스 차를 몰고 초고층 호텔로 들어선다. 꼭대기층에 위치한 멤버십 바에 들어서며 모피코트를 벗는 손목에는 13만 달러(약 1억2000만 원)짜리 스위스 시계가 빛난다.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자주 들르는 이곳에서 주로 마시는 술은 올리브 대신 다이아몬드가 담긴 마티니다. 흘린 술을 닦으려 핸드백에서 꺼낸 티슈는 크리스탈로 포장된 47달러(약 4만5000원)짜리다.

이렇듯 새롭게 등장한 명품족들의 소비 행태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적당히 비싼 대중 명품 수준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 다른 무엇보다 독특하고, 차별화한 ‘슈퍼 럭셔리’ 명품이 아니라면 이들의 간택을 받을 수 없다. 롤스로이스 일본 법인의 매튜 베넷 대표는 “일본인 하면 수수하고 검소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끊임없이 색다른 것을 요구하는 고객은 일본인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롤스로이스의 경우 유럽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맞춤 주문이라고 하면 고작해야 방탄 정도. 중국에서는 빨간색이나 황금색 등의 색상 선택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훨씬 복잡한 요구사항에 부응해야 한다.

베넷 대표에 따르면 한 고객은 연회색 바탕에 토마토빛 빨간색을 더한 투톤 색상의 차체를 주문했다. 차량가격만 39만 달러(약 3억6500만 원)인데다 색상 주문으로 2만 달러(약 1900만 원)를 더 내야 했지만 기꺼이 지불했다. 또 다른 고객은 55만 달러(약 5억 원)를 내고 냉장고와 TV 모니터가 달린 차량을 주문했다. 본인의 이름을 시트 등받이에 ‘해리 포터 서체’로 새겨달라며 5000달러(약 470만 원)의 웃돈을 낸 고객도 있었다.

그는 “일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신 명품족은 패션도 남다르다. 도쿄에서도 최고급 명품숍이 몰려 있는 오모테산도에서는 최근 이탈리아의 최고급 핸드백 브랜드인 ‘보네가 베네타’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 브랜드에서 가장 싼 가방은 1500달러(약 140만 원) 수준. 일본에서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명품 브랜드인 ‘구찌’나 ‘루이비통’이 600~900달러(약 55만~85만 원) 선임을 감안하면 명품 중에서도 상당히 비싼 셈이다.

소비는 더 양극화
신 명품족의 등장은 일본 경제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05년부터 11분기 연속으로 플러스를 기록하며 전후 최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다. 1990년대 개혁을 기치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경쟁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형성됐다. 고용이 자유로워지면서 성과급과 스톡옵션 등도 보편화했다. 금융이나 정보통신(IT) 등 경제 성장을 이끈 분야에서 고수입을 올리는 임원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부유층이 탄생했고, 이들이 바로 신 명품족이라는 것.

메릴린치에 따르면 금융자산을 100만 달러 이상 보유한 일본의 신흥 백만장자는 2006년 현재 150만 명에 이른다. 중국과 대만, 홍콩의 백만장자를 합친 것보다 세 배 많다.

이들의 소비로 일본 내 고급 차 브랜드는 최근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이탈리아의 고급 스포츠카 페라리의 일본 판매는 2006년에 비해 11% 늘어났다. 독일의 스포츠카 포르셰 역시 15% 판매 신장을 달성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산층·서민을 겨냥한 일반차 부문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도요타는 같은 기간 판매량이 17% 하락했다. 폭스바겐이나 메르세데스-벤츠의 판매량도 6~7% 떨어졌다. 근로소득자의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비정규직 고용이 늘어나면서 서민들은 실제 경제 성장의 열매를 맛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세계적 컨설팅그룹 베인의 클라우디아 다르피지오 컨설턴트는 “소비의 양극단화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 명품족의 과시적 소비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기업을 경영하는 45세의 한 남성은 “뭔가 잘못됐다”며 “도쿄의 명품 거리인 긴자나 오모테산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무언가 자랑하는 데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은 나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묘한 집단주의 의식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명품업체 진출 가속화
신 명품족의 윤리 논란과 별개로, 세계 굴지의 명품 브랜드들은 새롭게 다가온 기회를 잡기 위해 일본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지난해 아르마니와 구찌는 도쿄 긴자에 초대형 패션 매장을 잇따라 개장했다. 이미 긴자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샤넬과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탈리아의 보석 브랜드인 불가리는 지난해 오모테산도와 긴자에 연이어 매장을 내는 등 투자 규모를 확대했다.

불가리의 프란시스코 트라파니 최고경영자(CEO)는 “일본 고객들은 4만~10만 달러(약 3억7000만~9억3000만 원)에 이르는 최상급 보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더욱 세련된 고가 제품으로 기회를 다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부┃박지희 기자 violet@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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