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인 하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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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학이 연초부터 잇따라 터진 악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첫번째 원인 제공자는 하버드대 최고 수장인 로런스 서머스 총장. 서머스 총장은 지난 1월 14일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서 열린 전미경제연구국(NBER) 비공개 회의에서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하겠다"며 미국 사회에서 금기시된 영역을 건드렸다.

[월드리포트]"비하인드 스토리 인 하버드"

현지 신문 '보스턴 글로브'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미국 전역에서 저명한 학자 50명이 참석했으며, 그중 매사추세츠주 공과대 낸시 홉킨스 교수는 서머스 총장의 말을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장하기도 했다. 

자신도 하버드대 출신인 홉킨스 교수는 '보스턴 글로브'지에 "기절하거나 토할 뻔했다"며 "(하버드대의) 똑똑하고 젊은 여학생들이 그런 생각을 가진 남자의 지도를 받는다니 정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독단적 학교 운영도 도마에 올라

빌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낸 바 있는 서머스 총장은 2001년 중반 총장으로 취임한 이래 수시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졸업하고 불과 28세의 나이에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가 된 전설적인 인물인 서머스 총장은 취임 이후 각종 개혁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보수적인 하버드대 교수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버드대 교수진 10여명은 1월 26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서머스 총장의 탁월한 학문적 열정은 인정하지만 그는 총장으로 재직하는 3년 6개월간 독재자처럼 군림해왔다"고 비난했다. 회의에 참석한 교수들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는가 하면 토론회를 독단적으로 주재하고 심지어 일방적으로 종결하는 등 공분을 살 만한 전횡을 일삼아왔다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로 떠오른 발언의 '수위'가 높았던 배경에도 그동안 유사한 행태를 반복했던 서머스의 '관성'이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하버드대 물리학 교수인 다니엘 피셔는 이와 관련해 "래리(서머스 총장의 애칭)의 원칙은 명확하다. 총장으로서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그것 때문에 다른 교수들의 건설적인 문제제기와 반대가 묵살되곤 했다"고 전했다.

서머스 총장은 가난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학생들을 하버드로 끌어들이는 한편 대학의 커리큘럼을 혁신하고, 과학분야에 독보적인 대학으로 키우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이를 위해 그동안 대학재정 확충에 심혈을 기울였고 장래성 있는 젊은 교수진 영입에 발벗고 뛰었다. 이런 상황에 구설수를 자초, 발목을 잡힌 데다 기존 보수성향 교수진의 반발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여성비하 발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서머스는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 발언이 문제된 이후 2차례에 걸쳐 강도가 약한 사과 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1월 19일에는마침내자신의 홈페이지(www.president. harvard.edu)에 공개사과문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본인의 발언이 가져온 여파를 보고 깊이 후회하며 좀더 사려깊게 헤아리지 못했음을 사과한다", "뜻하지 않게 재능있는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실망을 준 나의 발언 방식은 잘못됐다", "탁월한 여성 과학자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분야의 잠재력은 성(性)과는 상관없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며칠 뒤에는 대학에 여성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며 마침내 '백기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하버드대는 향후 여성 교수진을 고용-양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남녀의 다른 점을 연구하기 위한 실무팀을 구성하며, 여성 학자들의 경력 신장을 위한 견고한 장치를 구축할 방침이다.

서머스 총장이 취임한 지난 3년 남짓 하버드대 고위 보직을 받는 여성이 매년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그가 남녀 차별적이라는 비난 대상이 됐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가 얼마나 개혁적이며 충격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투자수익 보너스 너무 많다" 제동

'서머스 설화(舌禍)'와 함께 하버드대를 둘러싸고 최근 미국 언론이 주목하는 또 다른 사건은 하버드대 기금 운용회사인 '하버드 매니지먼트(HMC)' 잭 마이어 사장의 퇴진이다.

[월드리포트]"비하인드 스토리 인 하버드"

사실 마이어가 이끄는 자산운용팀은 그동안 하버드대 기금을 운용하면서 자본시장이 놀랄 만한 수익률을 기록, 학교측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다. 지난해만 해도 하버드대는 마이어팀 덕분에 시장수익보다 10억달러 이상 많은 이익을 얻었다. 이 자금은 서머스 총장의 '청사진'을 실현시키는데 꼭 필요한 재원이다.

하지만 마이어가 지난해 성과급으로 720만달러를 받아갔고, 핵심 투자매니저인 데이비드 미틀맨과 모리스 사무엘스는 그보다 많은 2500만달러씩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동창회가 시비를 걸고 나섰다. 동창회측은 "거액의 보너스는 위대한 대학교의 가치에 반하는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것"이라며 예일대 등 다른 대학의 기금운용 팀처럼 학교를 우선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물론 마이어 팀은 이에 반발해 하버드대를 떠나겠다고 했고, 나머지 동료들도 이에 합류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와 관련, "시장 관행보다 훨씬 적은 보너스를 받은 마이어가 사실상 하버드대의 최대 기부자 중 한명이었다"면서 "하버드대는 이번 사태로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이어를 잃음으로써 하버드대가 수억 달러의 즉각적인 손실을 입고 장기적으로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볼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블룸버그'는 하버드대가 연간 운용 수수료 2%에다 투자수익의 20%를 주겠다는 약정 아래 과거 5억달러의 기금을 어느 헤지펀드에 맡겼던 사실을 예로 들면서 "이런 조건이라면 마이어는 수십억 달러의 부호가 됐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블룸버그 분석대로라면 하버드대는 결국 마이어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새로운 학내 기금운용자를 찾거나 마이어에게 줬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기금운용 전문가를 외부에서 찾아야 할 형편이다.

몇해 전까지 재무장관으로서 미국 경제를 이끌며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던 서머스 총장이 안팎으로 닥친 '파도'를 어떻게 극복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제부|이상연기자 lsy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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