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의대 증원 여론몰이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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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복도에서 관계자가 의협의 주장이 담긴 벽보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복도에서 관계자가 의협의 주장이 담긴 벽보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의대 정원 확대 이슈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에 대해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백년지대계인 교육과 더불어 백년 계획을 세워야 하는 지역의료, 필수의료에 대한 담론과 공청회는 뒤로 한 채 총선을 위한 하나의 이슈 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의대 정원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고, 의료계를 포함해 대부분의 국민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충분한 논의 과정과 철저한 계획을 세운 후에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의협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학장들에게 원하는 의대 정원을 물어본 후 바로 언론에 발표했다. 의정 갈등만 부추기는 행위다.

공공의대, 의대 정원, 필수의료, 지역의료 등에 관련된 수많은 이익단체의 입장과 국민의 처지를 생각하는 시민단체 입장, 정부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이러한 첨예한 사안을 토론할 때는 여러 번의 공청회와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참고해야 한다. 언론에서는 서울대 김모 교수가 주장하는 낙수효과에 대한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 교수가 얘기하는 낙수효과는 여러 면에서 허점이 많을 뿐 아니라 의사들의 인간적 본성을 간과하는 발언이다. 우선 의료서비스는 수요공급 원리가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수를 늘리면 그만큼 전 국민 의료비가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의사가 늘어난다고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필수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지역의료를 담당하려 하겠는가.

고되고 의료사고 위험 높은 필수의료 대책 마련부터

의사 수를 적정하게 늘리자는 데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리면 그 숫자는 고스란히 미용의료 등의 영역으로 빠지게 된다. 열심히 공부한 훌륭한 의사 인력을 필수의료로 유인하는 정책이 없다면 이들은 당연히 돈을 따라서 의대 졸업과 동시에 돈을 꽤 많이 벌 수 있는 미용의료로 빠지고 만다. 그게 현실이다. 단순히 사명감 하나로 일하라는 건 너무나 열악한 의료현장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필수의료 분야는 특히 그렇다.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한 선배는 나한테 전화 너머로 얘기하기를 365일 중 364일을 병원에서 잔다고 했다. 집에서 잠을 자는 건 1년에 1번뿐이란다. 중간중간에 가족이 병원에 와서 잠깐 얼굴은 봤겠지만, 삶의 질을 놓고 봤을 때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동 강도다. 이런 분들이 대우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렇게 힘들게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분들은 의료사고에 노출될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민형사상 책임은 의사가 고스란히 져야 한다. 물론 의사가 직접 한 의료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온전히 의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게 가혹한 현실이다. 정부는 이러한 위험들은 상호 부조를 통해 의사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이러한 정부 정책이 과연 능력 있고 사명감 투철한 의사들로 하여금 필수의료로 향하게끔 만드는 유인책이 될 수 있을까?

정부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필수의료로 의사들을 가게 하려면 의료수가를 조정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놓고 벌이는 시소 놀이는 멈춰야 한다. 지금까지의 의료수가 조정은 여기서 울면 다른 곳에서 빼앗아 여기에 조금 주고, 빼앗긴 데서 울면 또 다른 데서 빼앗아 주는 식이었다. 악순환이었던 셈이다. 그러한 고리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저렴한 의료수가를 방치해서는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MRI, CT 등에 의료비를 지원하는 선심성 정책은 과감히 버리고 소아, 중증환자, 취약계층 등을 진료하는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원을 모아야 한다. 정치권은 표 놀음을 그만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라면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학생 때 의사는 종교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지금까지 정말 그렇게 살았노라 자신할 순 없지만 그에 상응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업을 행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의사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매진할 준비가 된 굉장히 자각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또한 이러한 자성 있는 집단과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은 방안에 대해 토의하고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현실은 그러나 두 집단의 간극이 너무도 크다. 수십 년에 걸친 상호 간의 신뢰 부족 때문이다.

의협, 범죄 연루 의사 현업 복귀 막는 등 자정노력 필요

의협에서도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아프더라도 썩은 살은 도려내는 심정으로 의료계 조직의 위계와 사회적 책임감, 아주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을 위한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의료 집단이 종교인에 필적하는 도덕적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모든 목소리는 공염불처럼 허공을 떠돌 수밖에 없다. 마약 의사, 성 관련 범죄 의사, 사무장 의사 등이 왜 다시 현업에 복귀하고 있는가? 내부 단속은커녕 부도덕한 몇 명 살리겠다고 엉뚱한 판단을 내리고 차일피일 책임을 미루면서 스텝이 꼬이니까 언론의 지탄, 국민의 뭇매를 맞고 이 지경에 이르고 만 것 아닐까. 향후 10년을 목표로 문제 의사는 영구적으로 퇴출하는 등 국민과 정부에 우리의 자정 의지를 꾸준히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서로 신뢰가 쌓이고, 의협도 결국에는 존경받을 수 있는 집단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재란 인재는 전부 의대로 쏠리고 있다. 그러한 인재들이 정말 필요한 곳으로 갈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중국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밀어닥쳤을 때 정부는 이들의 단체비자 발급 수수료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준 바 있다.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의료계로 범위를 좁히면 미용성형, 피부시술 등을 위해 한국 병원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한 일종의 의료산업 진흥정책이었던 셈이다. 이런 산업적인 측면에 머물 게 아니라 정부가 정말로 국내 의료계의 발전을 원한다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한국의 의료기술을 전 국민이 골고루 안전하게 누릴 수 있도록 의료수가에 대한 전향적인 재고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산업의 발전 토대가 될 의과학자들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고, 발등에 떨어진 불 수준으로 위기감이 커진 필수의료 분야의 문제점도 차츰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박병호 아이호성형외과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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