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의 ‘뉴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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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휴진과 의대 정원 증원 반대 이유를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4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휴진과 의대 정원 증원 반대 이유를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수빈 기자

불과 2~3년 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질병관리청의 누군가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19를 극복하더라도 다시는 그 이전처럼 살 수 없을 거라고. 그런데 2년 정도 지나자 그 이전으로 거의 복귀한 듯하다. 대학병원에도 마스크를 안 쓰고 출입할 수 있고, 열이 나고 아프더라도 코로나19인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질병관리청의 누군가가 한 발언이 다소 과장이었던지, 아니면 인간의 적응력이 뛰어나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고, 이전과 달라진 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소위 ‘의료대란’이 발생한 지 100일을 넘었다. 이 의료대란도 몇 년 지나면, 코로나19를 극복했듯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갈 수 있을까?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느냐마는, 지금의 판단으로는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듯하다.

대학병원,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어

일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돌이켜봐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작년까지만 해도 의료계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지방의 국립대학병원을 빅5라고 불리는 병원들 이상으로 성장시키겠다”, ”집중 투자를 하겠다”, “지역의료를 살리겠다” 등. 지방에서 대학병원, 그중에서도 소위 ‘필수의료’과인 외과에서 교수로 일하는 내게는 기분 좋은 소식들이었다. 이런 소문이 소문에 그치지 않고 곧 실현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월 갑자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대통령의 발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인턴, 레지던트를 비롯한 전공의들과 전임의들은 병원을 나가버리고,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강경파가 득세했다. 인터넷 여론과 언론은 전공의들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의료 현장은 난리가 났다. 급하지 않은 수술은 미뤄지고, 대학병원들은 적자에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의대 정원이 1500명 이상 늘어나는 것은 거의 확정된 듯한데 대학병원은 이전 상태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병원에 돌아오더라도 추가 수련을 해야 하고, 그 기간만큼 수련하더라도 전문의 취득을 할 수 없는 시점에 돌입했기 때문에 복귀할 명분은 더 줄어들어 버렸다. 내년에는 전문의들이 배출되지 않을 게 거의 확정적이며, 동맹 휴학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 300명에 가까운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판이다. 내년의 극심한 혼란은 예정돼 있다.

지난 5월 1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검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1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검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우울감’이 감정의 바닥에 깔린 상태로 일하고 있다. 의사들만 가입할 수 있는 사이트의 익명 게시판에서는 의대 교수를 서슴지 않고 비난하기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의대 교수들이 1주일만 의료를 중단하면 정부가 백기를 들 수 있는데, ‘사직 쇼’만 하고 실제 행동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많다. 의사가 테러리스트인가? 손에 칼을 쥐여주고 살아 있는 닭의 목을 치라고 하면 못 할 사람이 많을 텐데, 환자를 죽여서 정부를 이기자는 의견을 익명게시판이라고 떠들 수 있는 인간들은 같은 동료의사라고 부르기도 아깝다. 저런 주장을 하는 인간 중에 이른바 ‘바이탈’이라는 생명을 다루는 분야에서 일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저런 이들은 이번 사태 전에는 바이탈하는 의사들을 돈도 못 벌고 어리석은 놈들이라고 비웃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인간 이하의 것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면에서 우울하다. 전공의 없이 어려운 수술이 잘됐을 때, 환자의 보호자에게 수술이 잘됐다고 전달할 때, 때아닌 우울감이 있다. ‘이 수술을 수현이가 봐야 했는데, 같이해야 했는데, 이런 케이스를 우리 전공의들이 봐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태 끝나도 외과 미래는 더 어두워질 것

응급실에서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왔다고 연락이 와 모든 과정을 내가 직접 해야 할 때는 좀 짜증이 나고 귀찮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를 우울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우울해진다. 이 상황을 못 견딘 동료 교수가 정말로 사직할 때는 또 우울해진다. 의료전달체계가 강제로 정상화돼 2차 병원은 때아닌 호황을 누린다는 말을 들을 때, 허탈해지기도 한다. 의료전달체계가 이렇게 쉽게 정상화될 수 있는 것이었나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가 끝나도 외과의 미래는 더 어두워질 것이다. 필수의료, 지방의료를 살리겠다고 시작한 이 사태가 이렇게 끝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어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가진 우리나라가 자살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미래세대가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모습이라면, 이번 사태로 미래세대가 없어진 필수의료도 대한민국의 현 상태를 잘 보여주는 작은 표본일 것이다.

어차피 가성비 좋은 현재의 의료가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어떤 식으로든 의료체계의 변화는 일어나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면 따라야 했다. 어떤 식으로는 장밋빛 미래가 없다면 극심한 혼란을 겪어보는 것도 정해진 순서가 아닐까 싶다. 확실한 것은 이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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