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쯤 잠자리에 들려 할 때,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구에 있는 모 병원에 뇌사자가 발생했는데 장기기증 의사가 있고, 우리 병원에 신장과 췌장을 등록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분이 수혜를 받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우선 코디네이터 선생님에게 환자에게 이식수술을 받을 의사와 상황이 되는지 확인해보라고 한 뒤, 컴퓨터를 켜서 환자 차트를 열어보았다. 투석이 필요하니 당연히 신장내과에 다니고 있고, 심장 쪽에 문제가 있어 심장내과 교수 외래도 다니는 분이었다. 심장내과 교수에게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내니 마침 바로 답장이 왔다. 그쪽도 안 자고 있었나 보다. 환자에 대해 상의하고 내일 응급실에 도착하는 대로 심장 초음파를 해보기로 했다. 코디네이터 선생님에게 환자가 수술을 받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침 8시까지 응급실에 오시라 이야기하고는 잠을 청했다. 이미 새벽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에 출근해 환자의 이전 기록을 살펴보았다. CT를 보니 환자의 혈관은 석회화가 심하지 않아 이식할 신장과 췌장의 혈관을 붙일 자리는 쉽게 확보될 것 같았다. 환자가 장기이식센터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환자와 면담 후 수술에 대한 설명과 동의서를 받았다. 환자가 응급실에서 수술을 위한 기본적인 검사와 심장초음파를 받는 동안, 심장내과와 의견교환을 하고 장기 적출 수술을 위한 준비를 했다.
신장과 췌장을 받기 위해 대구로
오후 2시에 앰뷸런스를 타고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 그 병원에 도착한 뒤 수술실로 향했다. 해당 기증자는 폐는 기증하지 못하고 심장과 간, 췌장과 신장을 기증하는 수술을 하는 환자였다. 심장 적출팀 및 간 적출팀과 수술 순서와 수술에 걸리는 시간 등을 상의한 뒤 이식할 췌장의 상태를 확인하러 수술실에 들어갔다. 췌장은 약간의 지방이 끼어 있었으나, 신장과 같이 이식해야 하므로 이 정도면 이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혜자의 경우 신·췌장 동시이식을 받아야 하므로 췌장을 포기하면 신장도 같이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신장이식을 해서 얻는 이득이 더 크므로 췌장이 아주 이상적인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이식을 진행해야 할 것으로 판단했다.
심장, 간, 췌장, 신장순으로 장기구득 수술을 진행했다. 간 적출팀이 수술의 마지막 과정을 시행하는 부분에서 나도 합류해 췌장 쪽으로 가는 혈관이 손상되지 않도록 도와드렸다. 간 적출팀이 수술을 끝내고 췌장을 적출 중일 때, 수술실에 같이 있던 장기기증원(KODA) 선생님이 상황이 바뀌었음을 알렸다. 원래 한쪽 신장만 우리가 가져오고, 나머지 한쪽 신장은 다른 병원에서 가져가기로 했는데, 그 병원 수혜자가 코로나19 양성으로 나와 나머지 한쪽 신장을 받을 수혜자를 그 시간에 다시 찾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때가 이미 오후 6시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수술을 중단할 수는 없기에 우선 내가 장기 적출을 하고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의 판단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시간에 새로운 수혜자를 전국에 수배해 다시 그 환자를 해당 병원으로 불러서 이식 수술을 하려면 이미 기증자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신장인데 제법 많이 기다려야 할 것처럼 보였다. 또한 기증자의 상태가 혈역학적으로 불안정해 이미 신장수치가 많이 상승한 상태였으므로 속으로 나는 ‘아마 저 신장도 우리 환자에게 같이 붙이게 될 것 같군’이라고 생각했다. 장기기증원 선생님이 KONOS의 결정이 나야, 즉 전국에도 저 신장을 쓰겠다는 이식센터가 없어야 나머지 한쪽 신장도 우리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다. 우선 그 신장도 같이 가져간 다음 수술은 KONOS의 허락이 떨어지고 난 뒤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수술을 끝낸 뒤 췌장과 양쪽 신장을 든 채 앰뷸런스를 타고 우리 병원으로 향했다.
국내 첫 ‘췌장과 신장 2개’ 동시이식
양산부산대병원에 도착할 때쯤 KONOS에서 전국에 수혜자가 없으니, 장기를 버리지 말고, 우리 환자에게 가능하다면 2개의 신장을 모두 붙여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뇌사자 신장이식을 위해 대기기간이 6년이 넘어가는데, 2개의 신장을 한 사람에 붙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췌장 및 신장 2개를 동시에 1명의 수혜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은 국내 최초다. 항상 현실에서는 예상 못 했던 역설적인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수술실에 도착해 옆 수술실에 누워 있는 수혜자를 수술하기 위해 마취과 선생님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장기를 붙이기 위해 다듬는 수술을 시행했다. 췌장 1개와 신장 2개의 준비를 마치고 수혜자 수술에 들어갔다. 환자의 배를 열고 오른쪽 장골 동맥과 대정맥을 노출한 뒤 췌장의 혈관부터 문합했다. 지혈하고 췌장과 붙어 있는 십이지장과 환자의 소장을 문합하고, 초음파로 혈류가 원활한 것을 확인했다. 그 뒤 아래쪽 혈관을 박리해 기증자의 왼쪽 신장을 수혜자의 오른쪽 아래에 붙였다. 노르웨이 이식외과 형님에게 배운 방식이 머리에 떠올라 수혜자의 왼쪽 장골 혈관은 복막을 아래쪽으로 박리하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수술 방식이었지만 다행히도 아주 쉽게 잘 됐다. 덕분에 기증자의 오른쪽 신장도 수혜자의 왼쪽 신장에 무사히 이식할 수 있었다.
양쪽 요관을 수혜자의 방광에 문합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수술실에 계속 있었지만, 나를 도와주었던 외과의사는 3~4명이 교체됐다. 이제부터는 지혈이 중요하다. 피가 나서 재수술을 하는 경우는 없어야 하니 말이다. 지혈을 꼼꼼히 하고 새벽 4시가 넘어선 시각, 환자가 중환자실로 나왔다. 환자는 마취에서 잘 회복했으며, 이식한 신장에서 소변도 잘 나오는 상태였다. 밤을 새우며 기다린 보호자에게 다가가 수술이 잘 됐다고 설명했다.
36시간 만의 퇴근…‘진한 순간’의 보람
날이 밝고 오전에 CT를 다시 촬영해 이식한 장기들에 피는 잘 가는지, 출혈은 없는지 등을 확인했다. 다 괜찮았다. 이제 수술을 마친 환자 상태를 안정화하는 일이 남았다. 수혈을 하고, 수액 양을 조절하고 혈당을 체크하면서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비로소 퇴근을 했다. 거의 36시간 만이었다. 곧바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 출근해 환자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일반 병동으로 옮겼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 순간을 위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과대학생들이 응급 야간 당직 중 하나라도 들어가는 과는 무조건 피한다고 한다. 필수과 의료가 위기라고도 한다. 여기저기서 필수과 의료진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수가를 올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필수과 의료만큼 이렇게 진하게 살 수 있고, 진한 순간 뒤에 얻는 보람이 큰 분야가 어디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세상에는 돈만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