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정부 진정성이 의료갈등 해결의 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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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월 1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해 병원장 등 참석 의료진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해 병원장 등 참석 의료진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최근 의료계 최대 이슈는 당연하게도 의대 정원 문제, 그리고 그보다 앞선 본질적인 필수의료와 의료취약지역에 대한 문제다. 의료계 이슈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나아가 국가 경쟁력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뛰어난 의료기술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손쉽게 고급 진료를 받길 원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것을 보면 자명하다.

필수의료와 의료취약지역에 대해 다양하고 의미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료계와 정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의해도 만만치 않고, 다듬어야 할 문제도 많다. 테이블에 앉아 토론할 수 있는 서로 간의 신뢰가 선결 조건이지만, 정부는 의료계를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책 시행 당사자인 정부는 의료계에 진심 어린 손을 내밀고 아이디어 공유와 토론을 해야 한다.

의사 수를 늘리면 필수의료로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가는가? 아니면 소외지역으로 가는가?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현재는 왜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전공 과를 버리고 타과 진료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답변해야 하지 않겠는가. 행위에 따른 최소한의 비용도 보존해 주지 않는 저수가에 따른 너무나도 분명한 사안에 대해 정부는 단순 의대 증원이라는 일차원적인 대안을 내놓는지 모르겠다.

의사에게 올바른 답변 대신 환자와 이간질

심지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창한 한 의대 교수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인기에 영합한, 혹은 권력에 빌붙는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배출되고, 정부는 총선이나 대선 표를 얻기 위해 의료계를 이용해왔다. 수십 년간 그래왔다.

최근 일례를 하나 들자면 과학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이공계 석사 과정 1년 차가 증발했다. 과학계는 입에 거품을 물고 미래를 걱정했다. 정부는 이제 의사 부족분이 1만 명이라는 과학적이지 않은 통계를 들고 와 1만 명 넘는 의사를 병원 밖으로 내쫓았다. 매년 도제로 키워지는 의사가 3000여명인데 한순간에 5000여명으로 만드는 정책에 대해 정부는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무너지게 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지금 의사들은 정부에 잘못된 정책 방향에 질문하고 올바른 답변을 원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의사와 환자를 이간질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잃게 되는 건 국민 건강이고, 필수의료의 파괴다.

이제 MZ세대 젊은 의사들은 병원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 실상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의사로서 아픈 환자를 보는 사명감으로 병원을 지키던 젊은이들이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며 자신의 청춘을 바쳐 희생해가며 환자를 봐오던 젊은 의사들에게 필수의료를 해도 보상은 주어지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게 한 주범은 정부다. 그 신뢰의 무너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손해다. 이미 아이를 받을 산과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 심장 수술을 하는 의사도 점차 사라지고, 우리는 앞으로 의료의 단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0년 전에도 같은 얘기를 했고, 20년 전에도 같은 얘기가 나왔다. 의료 수준이 1년이 아니라 몇 년 후퇴될지 가늠이 안 된다. 국민은 현실을 알아야 한다. 정치권이 국민의 생명을 저당 잡고 정치놀음을 하고 있다는 걸.

진정한 정치인 혹은 지도자라면 국민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린 후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현명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역대 대통령은 항상 규제 철폐를 외치고 나라의 부강을 위해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매번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권력을 위한 선심성 정책으로 인해 규제 일변도였다. 의사 수를 늘리는 아이디어는 총선을 위한 정치적 쇼였다.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내놓은 윤석열 정부의 총선 승리용 시나리오 1번이다.

의료개혁특위 총알받이로 전락 우려

의료계는 이미 상당 부분 망가져서 돌이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분별하게 병상 수를 경쟁적으로 늘린 대학병원 중 도산하는 곳도 나타날 것이다. 연착륙을 통해 전문의 위주의 병원으로 가야 하는 게 맞지만, 너무나도 급격하게 전문의 위주의 병원이 되면서 의료비가 상당히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에 따른 사보험 혹은 대기업 보험이 커지게 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실손보험의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다. 그에 따른 의료비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저수가를 보존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금의 전공의들로 병원을 운영한 결과다.

앞으로 시스템이 조금이라도 덜 다치게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라도 정부는 의료계를 진정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말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망가진 의료를 더 수렁에 빠지지 않게, MZ세대 의사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 같아 걱정이다.

허울뿐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문제가 어그러지면 총알받이로 전락할 게 뻔하다. 실질적으로 정부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위원 배분으로 공론화 명분만 얻고 결국에는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정책 결정을 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게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직전 전공의단체 대표를 대통령이 불러 직접 대면한 게 아주 대표적인 보여주기식 명분 쌓기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그런 짓은 하지 말자.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정부는 대한병원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전국의대 교수협의회를 따로 접촉해 의료계 내부 분열을 유도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유일한 법정단체이면서 하나의 창구로 통일된 대한의사협회와 협의체를 구성한 후, 협상테이블에 앉아 심도 있게 토론하고 대안을 마련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박병호 아이호 성형외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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