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내전에 기후재앙 세계에서 가장 굶주리는 소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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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세계기아지수에서 유일하게 ‘극히 위험’ 등급으로 분류

우리에게 영화 <모가디슈>로 많이 알려진 아프리카 소말리아가 전 세계에서 굶주림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발표됐다.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가 지난 11월 16일 세계 135개국의 기아상태를 조사한 ‘2021 세계기아지수’에서 가장 기아가 심각한 나라로 소말리아를 지목한 것이다. 이 지수에 의하면 소말리아는 유일하게 ‘극히 위험’ 등급으로 분류됐다. 소말리아 영양결핍 인구비율이 5명 중 3명꼴인 59.5%에 이른다. 5세 미만 아동사망률도 11.7%나 된다. 소말리아에서는 273만~283만명이 식량을 구하지 못해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는 이를 두고 ‘소말리아의 식량안보 위기’라고 부른다.

2018년 2월 대통령궁 근처에서 터진 차량폭탄으로 최소 38명이 사망한 가운데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건물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 모가디슈 | AP연합뉴스

2018년 2월 대통령궁 근처에서 터진 차량폭탄으로 최소 38명이 사망한 가운데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건물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 모가디슈 | AP연합뉴스


곳곳에서 기아로 사망 시신 눈에 띄어

소말리아는 어쩌다 세계에서 가장 굶주리는 나라가 됐을까. 이 나라는 쿠데타와 반군 그리고 이슬람 무장조직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1969년 10월 15일, 라스 아노드 마을을 방문한 셰르마르케 대통령이 경호원에게 암살당했다. 6일 후인 10월 21일에 군부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때 정권을 접수한 사람이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장군이었다. 그는 소말리아 재건에 힘을 쏟았으나 독재자였다. 가장 큰 실책은 ‘오가덴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1977년 12월부터 1978년 3월까지 소말리아군의 에티오피아 침공으로 에티오피아 오가덴에서 분쟁이 시작됐다. 바레 정권이 에티오피아를 공격했던 그 전쟁은 나라의 정계를 흔들거리게 했다. 그리고 지난 1991년, 소말리아 반군이 일으킨 군사쿠데타로 바레 정권이 무너졌다. 이후 바레 정권의 공백은 수많은 반군의 난립을 가져왔다. 서로들 정권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한 내전이 발생했다. 영화 <모가디슈>에 보이는 내전이 바로 그 모습이다. 한국 정부도 당시 내전과 원조를 위해 1993년 우리나라 최초로 유엔평화유지군을 파병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블랙 호크 다운>으로 유명한 미군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소말리아에서 국제적인 원조와 관심이 서서히 사라지게 됐다.

이렇게 30년 내전의 포문을 연 소말리아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가뭄이 극심했다. 소말리아 인구의 65%는 농업에 종사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으로 농사가 힘들어지자 국민은 굶주림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2006년 소말리아를 취재 갔던 기자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막을 헤매고 시골길을 운전해 가다 보면 기아로 사망한 시신이 계속 눈에 띄었다. 원래 소말리아 우기(3~6월)에는 구(Gu)라고 불리는 비가 내린다. 그러나 20년 전부터 기후변화로 인해 구가 불규칙해지기 시작했다. 올해도 강수량이 연평균보다 많이 적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런 강수량 저하로 구에 의존하는 농작물이 자라지 못해 식량 생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이라고 불리는 상황이 국토의 80%를 지배했다.

2019년 12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직후 현장 주변에 보안당국이 출동해 경계를 서고 있다. / 모가디슈 | AP연합뉴스

2019년 12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직후 현장 주변에 보안당국이 출동해 경계를 서고 있다. / 모가디슈 | AP연합뉴스

소말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224위로 1인당 600달러 정도다. 2015년부터 심각하게 소말리아에서 보이는 엘니뇨 현상은 가뭄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소말리아 중부 바이도아 인근에 사는 아흐메드씨(52)는 옥수수 농사를 짓는 농부다. 소말리아 주요 식량 중의 하나인 옥수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작물이다. 하지만 올해 옥수수에는 알이 드문드문 박히고 채 자라지도 않고 말라죽었다. “매년 농사가 힘들었지만 올해 같은 가뭄은 최악이다. 옥수수 대부분이 말라죽었다. 두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은 재작년 국경을 넘어 케냐 다다브 난민촌으로 떠났다. 그후 소식이 끊겼다. 차라리 난민촌은 끼니라도 이을 수 있고 손자들이 학교라도 다닐 수 있다. 나와 부인은 이제 굶어죽는 일만 남은 듯하다”며 흐느꼈다.

2020년 5월 소말리아 모가디슈의 한 공동묘지에서 코로나19로 숨진 한 남성의 장례를 치른 여성들이 무덤 곁을 걸어가고 있다. / 모가디슈 | AP연합뉴스

2020년 5월 소말리아 모가디슈의 한 공동묘지에서 코로나19로 숨진 한 남성의 장례를 치른 여성들이 무덤 곁을 걸어가고 있다. / 모가디슈 | AP연합뉴스

가뭄 엎친 데 홍수 덮쳐 원조도 어려워

소말리아는 이렇게 가뭄으로 초토화되는 가운데 홍수도 빈번하게 난다. 올해 4월 소말리아에서는 최악의 폭우로 홍수가 전국 곳곳에 속출했다. 최소 40만명이 수해로 터전을 잃었고, 10만1300명은 집을 떠나 이재민이 됐다. 소말리아 주요하천인 시벨리강과 주바강 인근이 범람하여 이 일대가 극심한 홍수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소말리아의 고질병이라고 불리는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가 번져갔다.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고 있지만 많은 아이가 죽어갔다. 의료 공백 상태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가뭄과 홍수의 반복은 최악의 기아상태로 몰고 갔다. 이런 상황에 국제사회가 원조는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소말리아 치안 상황은 국제사회의 원조가 제대로 될 수 없었다. 우선 수도 모가디슈로 외국 구호 전문가들의 접근이 힘들었다. 심지어는 국경없는의사회조차 의료활동을 중단하고 철수한 나라였다. 알세바브(젊은이들)는 국제적십자마저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겠다고 공언했다. 소말리아 곳곳마다 총소리가 나는 내전 상황에 원조의 손길이 닿기가 쉽지 않았다. 소말리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난민촌으로 가거나 아니면 남의 식량을 빼앗아야 한다.

여기에 2000년대 후반부터 소말리아에 알세바브라는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이 득세했다. 굶주림과 교육의 부재는 아이들이 성장하기 힘들다. 그 와중에 간신히 살아남은 아이들은 커서 무장세력에 합류해야 조금이라도 식량의 공포에서 벗어난다. 기근이 휩쓰는 나라에서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반군이나 알세바브에 합류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표된 세계기아지수에서 기아를 양성하는 가장 큰 원인이 분쟁이다. 쿠데타로 시작해 반군들의 정권 찬탈 싸움, 거기에 알세바브까지 이어지니 소말리아 치안 상황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치안 상황이 안 좋아지니 식량 생산과 유통에도 많은 위험이 따랐다. 소말리아 중부인 엘부르에 사는 오마르씨는 “농사를 지을 물도 없다. 마실 물조차 부족하다. 그 와중에 간신히 뭔가 심어놓으면 어느 날 총을 든 놈들이 다 쓸어간다”고 말했다. “총을 든 사람들의 소속은 어디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조차도 모른다. 여기는 누가 어느 소속인지 뭔지 하나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농사는 안 짓고 그저 총을 들고 식량을 빼앗아간다는 사실만 안다”고 말했다.

총기를 들고 수도 모가디슈를 순찰하는 이슬람 반군들 / 모가디슈 | 로이터연합뉴스.

총기를 들고 수도 모가디슈를 순찰하는 이슬람 반군들 / 모가디슈 | 로이터연합뉴스.

무력충돌과 치안 부재로 생존 위협

지난해부터 진행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소말리아는 더 엄청난 재난에 노출됐다. 사실 소말리아는 방역이고 뭐고가 없었다. 소말리아 정부가 있으나 마나 한 사실상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이다. 바레 정권 이후 30년 내전 동안 소말리아에는 제대로 된 정부가 들어선 적이 없다. 현재는 소말리아 대통령과 총리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지난 4월 모하메드 압둘라히 모하메드 대통령이 선거도 없이 자신의 임기를 스스로 2년 더 연장했다. 이렇게 셀프 연장을 한 대통령에 대해 제일 반발한 사람이 모하메드 후세인 로블레 총리였다.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과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 간의 정파 간 분쟁이 난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 관계가 파탄에 이른 가운데 소말리아 정부는 유엔 외교단과 약속한 총선과 대선이 기약 없어진 것이다. 원래 올해 11월까지 예정이었으나 대통령과 총리의 충돌로 치러지지 못했다. 지금은 대통령이 총리 권한을 제한하면서 소말리아 정국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이는 여러 정파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무늬만 정부’라고 일컬어지는 소말리아 정부인데 서로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쁜 상황에 코로나19 방역은 전무하다.

정치 혼란으로 인한 치안 부재와 이슬람 무장조직, 반군 등의 무력충돌은 소말리아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모가디슈는 늘 자살 폭탄테러의 위험이 도사린다. 지난 9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대통령궁 인근에서 자살테러가 발생해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통령궁 근방도 늘 이런 사건·사고가 빈번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카페나 시장에서도 자살 폭탄테러가 일어나며 이것은 알세바브의 소행으로 늘 알려진다. 소말리아 프리랜서 기자인 도굴프 오마르씨는 “알세바브는 자신들의 세력 과시와 소말리아 정부 존재감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자살 폭탄테러를 한다. 이들이 작정하고 소말리아 곳곳을 테러해 사람들은 모임과 이동을 꺼린다. 이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바닥인 소말리아 경제활동이 원천 봉쇄된다”고 말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나 식량의 유통이 자살 폭탄테러로 인해 더욱 힘들어지고 이처럼 분쟁으로 인한 치안의 부재는 소말리아 경제를 다시 일어나기 힘들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소말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극심한 기아에 신음하는 나라가 됐다.

<김영미 다큐엔드뉴스코리아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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