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스미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장 인터뷰
세계기아지수 보고서를 작성한 기관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SIPRI)다. 이 기관은 분쟁, 안보, 군비, 군축을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독립 연구기관이다. SIPRI는 1966년 타예 에를란데르 스웨덴 총리의 제안으로 설립된 후 스웨덴 정부가 출자했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4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로더연구소가 발표한 미국 밖 싱크탱크 순위에서 3위에 올랐다. 댄 스미스 소장과는 지난달 화상인터뷰가 이뤄졌다. 이후 e메일을 통해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계 기아의 원인은 무엇인가.
“코로나19 발생 이전 6년간의 상황을 보면 기아가 증가하고 있었다. 30여년간 기아 감소를 위한 노력이 무색한 상황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전에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살펴보면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분쟁, 두 번째는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식량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화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분쟁이 발생하면 왜 기아가 증가하나.
“분쟁과 기아의 증가는 양방향 모두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기아가 증가하면 폭력 분쟁이 증가하고, 반대로 폭력 분쟁이 증가하면 기아가 증대한다.
첫 번째 연결고리를 보자. 식량 공급이 불안정해 식량이 부족하면 가격이 급등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배를 채울 다른 방법을 찾는다. 한 예로 극단주의 단체인 지하디스트 같은 단체는 식량이 부족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을 요원으로 모집한다. 또는 농촌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기를 희망하지만, 정작 도시에 가면 이러한 폭력이나 분쟁 상황에 가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연결고리, 즉 분쟁이 증가하면서 기아가 증대되는 것은 다소 이해가 쉬울 것으로 생각한다. 식량을 재배할 토지가 부족해지면서 폭력이 일어나고, 식량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폭력 상황으로 인해 기근을 무기화해 식량 공급이 나빠지고, 기아상태가 심해질 수 있다. 한 나라의 통치가 불안정하고 치안이 불안하게 될 때 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면 식량 불안정이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식량은 평화로운 사회, 그리고 연대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어떤 경로로 식량 불안정이 발생했는가를 살펴보면 사안별로 다르고 정확한 인과 경로는 다르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식량 불안정이 발생하게 되면 평화도 불안해진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기아와 분쟁을 더 악화시켰다고 생각하나.
“논리적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빈곤을 더 악화시켰으며 빈곤지역을 더 강타했다는 것이라는 건 추론할 수 있다. 영양실조나 부족을 겪고 있는 지역일수록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노출도가 크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아동 영양상태가 가장 열악한 이유는 무엇인가.
“복합적인 요소가 있다. 첫 번째가 폭력 분쟁 상황, 두 번째가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 세 번째가 선정(good governance)의 부재, 즉 정부가 실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 분쟁과 식품 공급과 같은 복합적인 이슈 중에서 핵심은 정부가 과연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실효성 있게 창의적인 해법을 찾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일국의 정부가 실정을 일삼고 시민을 돌보지 않아 영양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고통을 받는 주체는 그 나라의 시민일 수밖에 없다.”
-기아와 실정,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대표적으로 어떤 국가가 있는가.
“기아와 실정이라는 2개의 연결고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국가로는 말리와 북부 분쟁을 포함한 나이지리아를 꼽고 싶다.”
-나이지리아는 석유수출국으로 아프리카에서도 부국에 속하는데, 왜 기아와 분쟁이 발생하나.
“특히 기후변화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이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이다. 나이지리아 주민들이 집을 떠나 실향민이 되고 있다. 보코하람과 같은 극단주의 단체가 이를 이용해 세력을 불리고 있다. 너무 세력이 강해져 일부 주의 통치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거주지를 떠나 도시로 몰리고 있다. 그래서 식량 불안정성이, 그리고 기아가 발생하는 거다. 석유수출국인 나이지리아는 부국일 수 있지만, 상당수 나이지리아 주민들은 석유가 불러오는 부의 행운으로부터 배제돼 있고 소외돼 있다. 델타 지역으로 불리는 나이지리아 남부 지역에서 석유가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는 환경적 재앙을 야기하는 주범으로 석유가 지목되기도 한다.”
-2021 세계기아지수에서 소말리아가 기아 위험이 가장 높게 나온 이유와 배경은 무엇인가.
“소말리아는 지난 30년간 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 현재 국제사회의 지원에 힘입어 소말리아 정부에서 질서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1990년대에 독재정부 전복 상황과 같이 대혼란의 상황에서 시민은 혼란의 수렁 한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지하디스트 인 알샤바브라는 단체가 정부를 꾸릴 수 있을 규모로 세를 불리고 있다.
소말리아의 상황을 악화시킨 또 다른 요인은 바로 기후변화다. 1960년대 이래로 소말리아의 평균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매년 극심한 가뭄과 홍수가 소말리아를 강타하고 있다. 두가지 기후 재해로 인해 식량 생산이 어려워지고 생산 비용이 올라가고 있다. 특히 건조 지역에 홍수가 발발하면서 비옥한 토양이 씻겨 내려가는 참사마저 발생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이제 농촌이나 농가를 떠나 소말리아 대도시 변방부에 머무르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도 분쟁에 불을 지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알샤바브는 정부보다 한걸음 빨리 식료품 지원을 제공하면서 주민들을 자신들의 대원으로 포섭할 수 있는 기회로 악용하고 있다. 세를 불리는 가운데 기후변화 영향은 더 악화하고 있다.
서로 기름을 붓고 있는 상황이다. 식량 불안정성으로 기아가 악화하고, 기아가 악화하면서 식량 불안정성이 더 악화하는 상황이 복합적으로 상호 추동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 기아 상황이 분쟁을 야기하고, 분쟁이 또 기아를 불러오는 부정적 사이클이 있다. 반면 식량 안정성이 확보되면서 평화가 구축될 수 있는 긍정적 사이클이 있다. 즉 양면적 사이클이 이들 국가에는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 사이클을 만들기 위해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런 커다란 방정식에서 첫 번째는 분쟁 요소의 복합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단일한 해법은 없다는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식량안보라는 것과 분쟁 해결, 즉 평화 구축이라는 2개 요소가 상호 연결되고 연동돼야 한다는 것이다. 분쟁을 겪고 있는, 또는 분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사회가 있다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식량 공급망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또는 어떤 식으로 식량을 재배할 것인가 하는 해법 모색을 통해 평화를 정착하는 지름길로 돌아올 수 있다.
덧붙이면, 식량위기 직격탄을 받은 국가의 주민들을 한 테이블에 모아야 한다. 해당 지역에 정확하게 무엇이 필요한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공유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제안하는 ‘푸드-피스 허브(Food and Peace Hub)’라는 개념이다. 푸드-피스 허브에서 지역사회, 기구, 전통적인 리더 역할을 하는 분들, 정부, 국제 NGO,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한데 모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최상의 해법인지를 함께 찾아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식량과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도 많은 원조를 했다. 그런데 탈레반의 복귀로 너무 쉽게 무너지자 한국인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케이스다. 가장 심각한 사례 중의 하나다. 우선 식량원조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고, 흘러갔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일조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자체가 통합된 단합된 국가일 수가 없다. 굉장히 분절, 파편화가 많이 돼 있고 많이 부족한 국가다. 1979년 서방권이 침투했을 때, 국가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이 파국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회복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2001년에 서방에서 다시 아프간에 들어갔을 때 물론 동기나 계기 자체는 달랐겠지만, 분쟁은 개선되지 못하고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식량원조를 받아 국민에게 일정 부분 식량을 공급했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할 수 없었다. 식량원조가 시민의 생존에는 도움이 됐지만, 식량안보를 통한 평화유지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왜 그럴까?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실천적 노력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량안보와 평화를 동시에 만들겠다는 노력이 없었다. 미국과 나토(NATO)는 탈레반을 격퇴하겠다는 일념으로 아프간에 들어갔다. 시작부터 잘못됐다. 아프간에 처음 들어갈 때 테러와의 전쟁을 목표로 들어갔기 때문에 포용적 사회와 평화 구축을 위한 슬로건이 너무 부재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북한도 식량난을 겪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식량을 지원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다.
“식량원조에 조건을 달면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어렵다. 조건이 작동하려면, 지도부가 염두에 둔 해법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마도 북한은 자신들이 굴복하게 될 여지가 있는 원조를 거절할 것이라 생각한다.”
<김영미 다큐엔드뉴스 코리아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