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키워드는 전쟁종식·상황관리·상호존중…주변국에 특사 파견해야
종전선언이란 전쟁을 끝내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관련 당사국들이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하고자 하는 공동 의지를 표명하고 널리 알리는 행위다.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현상유지론자들은 불안할 것이고, 현상타파론자들은 기회라고 인식할 것이다.
종전선언 추진의 역사적 전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한국전쟁을 최종적으로 종결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조건부이지만 자신의 뜻을 북한에 전달해줄 것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요청했다. 그 결과 2007년 10·4 선언과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종전선언 추진이 명시됐고, 이후 북중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서 4·27 판문점 선언에 존중을 표시함으로써 종전선언에 남·북·미·중이 공감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2007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노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추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 문제를 언급한 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의미가 있다. 종전선언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자 또는 4자가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 곳에 모여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공동으로 선포한다면 평화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건이 될 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 계승자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종전선언 추진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했기 때문에 4·27 판문점 선언에 종전선언을 명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종전선언의 의미
종전선언 추진의 현재적 의미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평화의 마중물이고,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촉진제이며 남북·북미 간 신뢰증진의 촉매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종전선언이 평화의 마중물이 아닌 위험물이고, 비핵화 협상의 촉진제가 아닌 방해물이며 신뢰증진의 촉매제가 아닌 억제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들은 종전선언이 대선에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효용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황이기에 종전선언의 시의성을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을 무력화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수 있기에 종전선언이 부적절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상황에서 무슨 종전선언이냐는 비판은 북한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과 종전선언 후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그 명분과 정치적 근거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는 것은 남북·북미 간에 대화가 없고 대립과 대결이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으로 그 결과는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였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이 보여준다. 지금이야말로 종전선언 추진을 마중물로 대화를 재개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면서 설득력이 있는 접근이다.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를 야기하고 한미동맹을 와해시킨다는 비판은 주한미군 문제는 남북·북미 간의 문제가 아닌 한미 간의 문제로 종전선언과 관계가 없다. 종전선언 문제는 한미 간의 실무급에서부터 정상급까지 긴밀한 소통과 조율을 하고 있고 종전선언 문안 조정까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조만간 북한에 제의한다는 한미 당국자들의 메시지를 볼 때 종전선언 추진이 한미동맹을 와해시킨다는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
나아가 종전선언 추진을 두고 중국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국으로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큰 원칙 하에 종전선언부터 평화협정체결까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에 분쟁국들의 휴전과 한반도에서 제2의 평화의 봄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과 북한 역시 종전선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북미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코로나19 백신 등 인도적 대북 지원을 재개할 의사가 있음도 밝히고 있다. 최근에는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종전선언에 대한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도 ‘선 이중잣대 및 적대시 정책 폐기, 후 종전선언’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이는 엄격한 선결조건이 아닌 약간의 성의만 보인다면 서로 원하는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인터넷 선전매체를 통해 유엔사 해체 등을 주장하는 것도 남북·북미 대화 시에 의제를 선점해 대화를 주도하겠다는 전략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종전선언의 구성
종전선언의 명칭은 가칭 ‘한국전쟁 종식(종결)에 관한 선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전협정과 같이 국문, 영문, 중문 등 3개의 언어로 작성될 듯하다. 내용은 그렇게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A4 용지 한장이면 충분하다. 2~3개 조항으로 나눠 구성하거나 조항 없이 그냥 문단만 나눠 서술식으로 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핵심 키워드는 전쟁종식, 상황관리, 상호존중 세가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황관리는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 정전협정이 유효하고, 상호존중 속에는 적대시 문제, 불가침 문제, 비핵화 문제 등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에는 유엔사 문제와 불가침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유엔사가 유령단체인 만큼 반드시 해체돼야 하고 필요하다면 평화협정 시까지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면 된다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유엔사가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창설됐고, 정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정전협정을 준수하고 집행하는 역할도 추가된 만큼 유엔사의 해체는 참전국들의 조율과 유엔안보리의 결의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불가침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은 남북 간에는 불가침선언이 있기 때문에 이행만 하면 되고 미국과는 반드시 불가침협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미국은 불가침협약을 한다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스스로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현단계 대북 압박제재의 법적·제도적 틀을 현상유지하면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선언의 단계
종전선언 추진 전망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추진과정에는 3단계의 관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단계 관문은 한미 간의 문안 조정작업으로써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두 번째 관문은 북한의 수용 여부다. 지난 9월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조건부 종전선언 검토 용의를 밝힌 후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단지 유엔 무대에서 유엔사 해체를 계속 제기하고 있고 인터넷 선전매체를 통해 이중잣대 철회와 적대시 정책 철폐를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는 종전선언에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고 한미 간에 조율된 종전선언 문안이 공식적으로 접수되면 나름대로 고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고민과 동시에 일정 기간 강온 양면전략도 펼칠 것으로 생각된다. 수면 위에서는 기싸움 차원에서 한미가 제안한 문안을 비판하면서도 수면 아래에서는 진의 파악과 동시에 중국과 논의하는 모습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월 중 한미의 조율된 종전선언 문안이 북한에 전달되고 내년 1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김일성 출생 110주년과 7·4 공동성명 50주년, 김정일 출생 80주년을 강조하면서 선대의 유훈인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 “종전선언을 추진한다”는 대외 메시지를 발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종전선언 추진 전략은 11월 중 종전선언 대북제의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특사를 파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와 유엔기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대한 진정성이 담긴 메시지 발신이 중요하다. 특히 북한의 답변을 기다리는 기간에 한미 당국자들의 신중한 언행이 요구된다. 가능하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에 남·북·미·중 정상이 참여해 종전선언을 하거나 판문점 선언 4주기를 맞는 내년 4월 27일쯤 교황의 평양방문 귀국길에 교황 앞에서 남·북·미·중 정상이 종전선언에 서명하는 것도 좋은 그림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선언 추진이 불발되면 다음 정부, 아니면 그다음 정부에서 추진해도 된다. 종전선언이라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보겠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는 크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에 종전선언이 어렵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