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국가의 시작부터 냉전 시기까지의 ‘분쟁’은 영토갈등이나 이념갈등으로 발생한 ‘국가 간(inter-state)’ 전면전을 의미했다. 하지만 냉전 이후 국제질서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로 재편되면서 분쟁의 양상은 ‘국가 내부(within state or intrastate)’ 행위자들의 내전(civil war)으로 확장됐다. 인종이나 민족, 언어와 문화, 종교 간의 이질성을 원인으로 집단 간 분쟁이 발생했고 대량학살과 인종청소라는 극단적 결과가 뒤따랐다. 최근에는 테러리즘까지 가세하며 분쟁의 형태는 시간이 갈수록 세분화·다양화되고 있다.
분쟁의 양태가 다변화하는 만큼 피해 범위는 넓어졌다. 소수 집단, 국가 단위의 갈등이 전 세계적 문제를 야기하는 식이다. 9·11 테러 이후 시작된 대테러 전쟁에 미국의 동맹국들이 휘말리거나 중동지역의 내전으로 발생한 대규모 난민이 유럽에 문제를 만들었다. 외부의 군사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을 의미했던 전통적 안보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국가의 존립보다 일상에서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확장된 안보개념으로 ‘시대정신’은 변화했다. 이른바 ‘인간안보’의 시대로 역사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안보’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1994년 발간한 ‘인간개발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된 개념이다. 이는 군사와 정치가 상위정치(high politics)이고 배고픔, 정치적 억압, 질병 등은 하위정치(low politics)로 구분한 전통적 안보기조를 뒤집었다. ‘평화’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하위정치 요소들로부터의 자유로 의미가 확장됐다. 안보를 책임진 주체는 조직 형태가 국가든 집단이든 관계없이 구성원들의 가난, 억압, 질병 등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설사 국가 존립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분쟁이라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안보의 핵심이 됐다.
실제로 인간안보가 실패하고 있는 지역에는 공통점이 있다. 2006년부터 세계기아지수를 발표하고 있는 아일랜드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는 지난 11월 16일 2021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아 위험 상위 10개국 중 8개국이 분쟁 상황에 놓여 있었다. 소말리아, 예멘, 동티모르 등은 국가 존속과는 별개로 매해 기아지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분쟁을 관리하지 못한 결과가 국가 단위의 전통적 안보가 아닌 사람 중심의 인간안보를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어떨까.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은 7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전 상태다. 분쟁의 장기화는 한국과 북한의 운명을 갈랐다. 컨선월드와이드의 2021년 세계기아지수에 따르면 북한의 기아 수준은 전 세계 21번째로 나쁜 상태다. 낮음, 보통, 심각, 위험, 극히 위험으로 나눠진 단계표 기준으로 ‘심각’ 상황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5세 미만 아동의 영양은 좋아졌으나,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영양결핍 인구비율은 42.4%로 10년 전(42.7%)에 비해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북한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국가는 아프리카 앙골라(20위), 수단(22위) 등이 있다.
한국은 당장 기아에 놓일 가능성이 낮지만 분쟁 당사국이라는 점에서 위험을 안고 있다. 분쟁을 연구한 국제정치학자 데이비드 D. 캐플런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에 대해 쓰는 일이다.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간안보를 나타내는 지표들은 분쟁의 장기화가 가난, 억압, 질병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이러한 경향에서 언제까지나 예외일 수는 없다. 상존하는 위험의 제거라는 측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이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분쟁은 민족(인종), 종교, 역사, 문화, 정치(이데올로기) 등의 복합적이고 중층적 요소들이 혼재돼 있다. 매일 세계 곳곳의 소식을 접하지만 각 지역 분쟁의 원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분쟁은 ‘이익 추구’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쪽의 평화를 저쪽의 비평화로 구축하려는 인식이 분쟁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2021년 현재, 대표적인 분쟁지역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중국’이라는 소용돌이
지리적 경계로 갈라졌던 국가 간 분쟁은 기술 발전과 함께 한계를 뛰어넘었다. 지난 세기 분쟁이 유럽의 ‘땅’을 중심으로 했다면, 21세기는 동아시아의 ‘바다’를 중심으로 갈등 지점이 옮겨졌다는 의미다. 동아시아의 바다는 쿠릴열도부터 뉴질랜드까지의 태평양 일대와 중국 남동부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등으로 둘러싸인 남중국해 일대 등으로 구성된다. 중국은 양 해역 모두에서 크고 작은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은 총 700여개의 암초와 산호섬 등으로 구성된 4개의 군도(일정한 지역 안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섬의 무리)가 있는 남중국해다. 이곳의 중요성은 중동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수송로와 어족, 원유, 천연가스 등의 자원 측면에서 설명된다.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남중국해와 관련된 군비경쟁의 일부만을 설명할 뿐이다.
캐플런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비증강을 유럽으로부터 패권을 쟁취한 미국의 부상과 닮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은 플로리다부터 베네수엘라까지 이어지는 카리브해와 멕시코만을 통칭하는 ‘대카리브해’를 장악하며 지역 패권국이 됐다. 이를 위해 활용한 것은 흔히 고립주의로 불리는 먼로 독트린이다. 미국은 유럽과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인근 해역, 육지로의 접근만을 막았다. 당시 영국은 막강한 해군을 보유했지만 무력충돌을 감행하지는 못했다. 미국이 자신들의 앞바다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행보는 미국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남중국해를 장악해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제어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활용하는 전략도 직접 대결이 아닌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이다. 중국 인근 해역으로 미국의 접근을 차단하며 결코, 남중국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전달하고 있다.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왜 중국이 미국과 다를 것이라 기대하느냐. 중국이 미국보다 더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가, 더 윤리적인가, 덜 민족주의적인가”라고 말했다. 지역 패권국의 등장이 기존 질서의 해체를 의미한다는 것은 미국이 입증한 역사다. 결국 남중국해 분쟁은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과 이로 인해 이뤄질 글로벌 세력균형을 막으려는 미국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분쟁에 관한 중국의 특수성은 국가 간 갈등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다종족·다민족·다종교 갈등을 태생적으로 포함한다. 특히 신장웨이우얼(위구르)자치구와 시짱(티베트)자치구에서는 분리주의 움직임이 있다. 본래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은 역사적·민족적으로 중국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과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민족융합론을 내세우며 위구르와 시짱 지역으로 한족 이주를 장려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은 반발하고 있다. 신장웨이우얼 지역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청나라에 점령됐다. 이곳의 원주민인 위구르족은 1864년 반란을 통해 카슈가르 왕국을 세웠으나 1884년 청나라에 완전히 병합됐다. 위구르족은 1933년에도 동투르키스탄이슬람공화국으로 분리독립했으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다시 점령됐다. 2000년대 이후로도 위구르족의 분리독립 요구는 끊이지 않고 있다. 티베트 분리독립 움직임도 이와 유사하다. 본래 독립세력이었던 티베트족은 1904년 영국의 침략으로 붕괴된다. 영국은 1906년 중국과 영토협정을 맺고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해 버렸다. 이후 달라이 라마에 의한 독립 통치가 가능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역시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점령된다.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의 망명 정부를 중심으로 분리독립 운동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신냉전
유럽을 동·서로 구분하는 경계점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이유로 몽골,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의 지배를 받았다. 한때 서부는 폴란드, 동부는 러시아로 분할된 적도 있다. 특히 냉전 시기에 소련의 곡물창고와 광공업기지 역할을 하며 드네프르강을 중심으로 서쪽은 우크라이나, 동쪽은 러시아 문화권이 확립됐다.
문제는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 내부에 갈라진 문화권이 지역주의로 고착화됐다는 점이다.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의 갈등은 대통령선거 때마다 쟁점이 됐고, 충돌을 만들었다.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쪽에 있는 크림반도에서 갈등이 폭증됐고, 러시아군이 ‘친러시아파 보호’를 명분으로 크림반도를 장악했다. 같은해 동부 돈바스지방에서도 러시아계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이 분리독립을 추구하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충돌했다. 양쪽에서 약 1만3000명이 사망한 유혈 사태였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내부에 있는 친러시아 세력은 분쟁 양상을 내전과 국가 간 전쟁 사이에 위치하게 만든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을 침략이 아닌 원래 러시아 몫을 돌려받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크림반도는 1783년에 재정 러시아에 의해 병합된 땅이다. 이를 1954년 소련 서기장이었던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에 양도했다. 하지만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탈퇴하면서 크림반도도 우크라이나로 넘어가게 됐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재장악하며 ‘부동항’인 흑해로의 자유로운 접근과 흑해 함대의 안정적 존속이 가능해졌다. 이와 동시에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 크림반도가 서방세계에 넘어갈 수 있는 위험도 차단했다. 러시아는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는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에게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서도 우크라이나가 필요하다. 정치·경제·군사적 요충지로써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와 서방 세력은 우크라이나를 두고 다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약 10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켰다. 이에 미국, 우크라이나, 터키, 루마니아 4국은 군함 7척을 동원해 지난 11월 12일(현지시간) 흑해 공해상에서 연합 해상 훈련을 벌였다. 우크라이나를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NATO 소속국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내년 초 전쟁 가능성도 제기된다.
종교 간 격돌 카슈미르
인도와 파키스탄이 맞붙은 카슈미르는 종교가 분쟁의 시발점이 된 대표적 지역이다. 과거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배하며 힌두교도와 무슬림을 철저히 분리 통치했다. 이러한 기조는 인도가 독립할 때에도 이어졌는데 당시 인도 내부에 갈라져 있던 각 왕국은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교의 파키스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카슈미르의 비극은 무슬림 인구가 77%를 차지하면서도 힌두교가 지배층을 형성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카슈미르의 귀속은 당시 왕이었던 하리 싱의 뜻에 맡겨졌는데 그는 반란이 일어나자 인도에 투항해 버렸다. 인구구성의 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이 반발했고, 파키스탄이 이 문제에 개입했다. 결국 카슈미르 문제로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의 원인이 됐다. 전쟁은 유엔의 중재로 1949년 1월에 끝났다. 양국 군대가 점령한 선을 기준으로 정전을 하고 이후 주민투표로 귀속국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주민투표는 이뤄지지 못했고, 영토분할도 정전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파키스탄이 실효적 지배하는 카슈미르는 북서부지역 길기트 발티스탄과 서쪽의 아자드 카슈미르다. 반면 인도령 카슈미르는 남부의 잠무 카슈미르다. 면적은 인도령이 약 3배 정도 더 넓다. 인도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반환을 요구하고, 파키스탄은 인도령 카슈미르의 반환을 요구한다. 여기에 중국도 카슈미르 일부 지역인 아크사이친과 트랜스카라코람을 장악하고 있어 총 3개국이 엮여 있는 상황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곳은 인도령 카슈미르다. 무슬림들이 인도 정부를 상대로 분리독립 투쟁을 하고 있다. 이들도 파키스탄으로 편입을 요구하는 쪽과 카슈미르 자체 독립국을 원하는 쪽으로 갈라진다. 각각 히즈블무자헤딘과 잠무카슈미르해방전선이다. 지난 10월 12일에는 잠무 지역에서 인도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이 무장세력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힌두교를 믿는 민간인들까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표적 살해되고 있다. 카슈미르는 분쟁 관리의 실패가 인간안보를 위협하는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분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복잡한 원인이 아니다. 집단의 ‘이익’이 걸려 있다면 어떤 이유를 동원해서라도 갈등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안보개념이 더 이상 국가단위의 생존에 머무르지 않는 것도 분쟁의 주체와 원인이 날이 갈수록 분화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안보가 보다 확고해진다면 중국, 우크라이나, 카슈미르 등의 분쟁 원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인간을 위협하는 행위 자체로 비판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질병·기후위기와 같은 인간 생존을 위협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지구적 차원의 공동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대표적인 분쟁이었던 냉전은 총성 한발 울리지 않고 종식됐다. “네가 불안해져야 내가 안전해진다”는 인식의 단순한 전환이 인류사의 가장 큰 분쟁을 끝냈다. 보다 빠르게 인간안보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