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00세 철학자의 ‘100세 시대’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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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라니까 50세는 청년 같은 느낌이다. 인류가 노화를 여기까지 정복했다는 얘기니 좋은 말인 것 같다. 주위의 많은 60~70대 어른들도 장년층과 별다른 게 없이 건강한 모습이다. 문제는 100세를 살아갈 인생의 계획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노학자 김형석은 50대란 절반의 인생을 끝내고 나머지 절반의 인생으로 나아가는 나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2016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노학자 김형석은 50대란 절반의 인생을 끝내고 나머지 절반의 인생으로 나아가는 나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2016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100세 시대라면 65세 이상을 노년으로 잡을 경우 인생의 3분의 1이 노년이다.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아이를 키우는 게 끝나고도 한참 남는 시간이다. 직업 세계에서의 은퇴, 아이의 독립, 배우자와의 사별, 친지의 죽음, 육체적·정신적 노쇠 같은 피할 수 없는 것들을 길게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건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성장하는 한 늙지 않는다

“인생에서 50에서 80까지는 단절되지 않은 한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50부터는 80이 되었을 때 나는 적어도 이러한 삶의 조각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준비와 계획과 신념과 꾸준한 용기를 갖고, 제2의 마라톤을 달리는 각오로 재출발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101세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김형석이 2016년에 낸 <백년을 살아보니>의 한 구절이다.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인생을 나누면, 50대는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건너가는 나이다. 김형석의 시선에서 보면 좀 다르다. 50대란 절반의 인생을 끝내고 나머지 절반의 인생으로 나아가는 나이다.

김형석은 사람이 성장하는 동안 늙지 않는다고 본다. 노력을 기울인다면 75세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교육을 마치고 장년기에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지다가 노년기에 여생을 보낸다는 통념과 맞지 않는다. 김형석에 따르면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까지이고, 노년은 80세부터다. 1920년생 저자가 우리 나이로 97년을 살아온 체험에서 한 말이다. 통계나 생리학의 연구 결과가 아니더라도 왠지 이쪽이 더 신뢰가 간다.

97세에 여전히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김형석의 삶은 100세 시대를 사는 지혜를 보여준다. 김형석은 65세로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정년을 하고 나서도 2016년까지 31년을 더 일했다.

생애 전반기의 삶이 절로 후반기의 삶을 보장하진 않는다. 김형석은 75세까지 창의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했고, 이후에는 그 수준을 유지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1960년대부터 유명한 철학자이자 에세이스트였다 하더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독자와 청중을 갖고 있는 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김형석은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을 권한다.

김형석이 노후에 중요한 것 하나로 꼽는 건 ‘일’이다. 학문이나 예술같이 인생 전반기의 일을 70대와 80대까지 할 수 있는 분야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일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꼭 소득을 올릴 직업을 말하는 건 아니다. 노후의 시간적 여유는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던 공부나 취미활동에 몰두하기에 오히려 적당하다. 김형석의 경우 40대에 쓰기 시작한 에세이로 노후엔 에세이스트로 더 알려졌고, 50대엔 우리 회화와 도자기에 몰두해 15~20년 동안 행복했다고 한다.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은 100세를 바라본 김형석의 자세다. 김형석은 앞으로 10년만 더 시간과 건강이 허락한다면 구름 사진가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50대의 나는 지금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있나. 취미라고 해봐야 책 보고 음악 듣는 정도고, 새로 신나게 할 수 있는 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건 여유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를 미처 알지 못해 그렇다. 50대의 몰취미가 지루한 100년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번쩍 들게 한다.

김형석은 일이 장수에도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정년퇴직한 후 매일 수영을 했고 하루 50분 정도를 걷는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운동이 97세에도 여전히 집필과 강연을 하는 그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운동의 동기부여가 김형석에게는 일이었다.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동안, 또 그 일을 성취해가는 동안의 삶의 에너지 같은 게 건강을 도왔다. 50세부터는 의사를 자주 만나고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김형석은 권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의 장수 비결은 일에 대한 열정에 있다고 봐야 한다.

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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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는 고생’이 주는 행복

김형석의 인생을 보면 100년이란 참 긴 시간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출생으로 탈북을 했던 경험은 험난한 우리 현대사의 기록이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30년을 근무했다는 이력을 보면 풍족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어려서부터 가난했고 무일푼으로 북한을 떠났다. 6·25전쟁 후 서울에 정착하고선 북한에서 데리고 온 두 동생과 여섯 아이를 부양해야 했다. 84세엔 20년을 투병한 아내와 사별하는 아픔까지 겪었다.

“모든 남녀는 인생의 끝이 찾아오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다. 사랑이 없는 고생은 고통의 짐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인생이다.”

김형석은 행복이 안락함이나 물질적 성공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행복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 안겨주는 거라고 말한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라니. 이 책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은 말이다. 돈을 벌고 아이들을 키우며 인생이 고달플 때는 이 말이 잘 와닿지 않을 것 같다. 삶이 부여하는 일들을 고생스럽게 해나가면서 행복을 떠올리긴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젊은 시절의 나라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지금 이 말에 공감하는 까닭은 뭘까.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깨달음이 스스로에게 의미가 돼주기 때문일 거다. 아이를 위한, 배우자를 위한, 이웃을 위한 고생이라면, 그건 사랑과 같은 말이 아닐까. 젊은 시절의 나라면 지금 이런 나의 판단을 지나온 삶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려는 자기 위안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사랑은 사랑이고, 고생은 고생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할 것 같다.

오십을 넘은 지금, 분명한 건 ‘50년을 살아보니’ 사람이, 생각이 계속 바뀐다는 점이다. 김형석처럼 나도 75세까지 부단히 성장할 수 있을까. 100세까지는 모르겠고, 우리 세대 여성 기대여명인 86세까지 산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 51세의 나에게 어떤 얘기를 건네게 될까.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한 삶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하게 될까. 그러고 싶은 꿈을 하나 새로 얻게 됐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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