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최대 환경참사에 대한 언론의 ‘표피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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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드러난 뒤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와 보도량,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우리 언론이 사회적 감시견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왔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20일 경제신문을 중심으로 언론은 일제히 ‘슈퍼 화평법’ 예고… 중소기업 사업 접을 판’ 등 매우 강한 내용의 제목으로 환경부가 입법예고한 화평법 하위법령, 즉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우려하는 재계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대로 확정·시행되면 기업들이 해당 화학물질 등록비용을 감당 못해 폐업이나 외국 이전이 불가피하다며 정부를 을러대는 기업의 볼멘소리를 가감 없이 비중 있게 다룬 것이다.

기업 또는 기업인 단체가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나 화평법에 대해 불만을 드러낸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제정 당시부터 줄기차게 반대 내지는 규제 완화를 요구해 왔다. 화평법은 2011년 터져나온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유해 화학물질 사용으로 인한 국민의 건강과 생명 피해를 막기 위해 2012년 제정 논의를 본격화했다. 그 뒤 유럽연합이 시행 중인 내용 등을 참고로 해 2013년 제정이 이루어졌고, 이어 2015년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제정 당시 재계의 강력한 반발과 일부 언론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애초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의도한 것과 달리 법안에 담고자 했던 내용이 반토막 나고 말았다. 0.1톤 기준으로 제시된 신규 소량 화학물질 등록기준은 그 10배인 1톤으로 완화됐다. 화평법다운 화평법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2012년 7월 23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제정을 위한 환경부 주관 공개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화평법은 입법예고 단계부터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일부 언론은 이 주장을 적극 보도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2012년 7월 23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제정을 위한 환경부 주관 공개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화평법은 입법예고 단계부터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일부 언론은 이 주장을 적극 보도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화평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반대

지난해 4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고, 국회 국정조사가 이루어지면서 화평법을 도입하려던 애초 취지에 맞게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2016년 12월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개정안은 1991년 이전부터 국내에서 상업용으로 유통됐던 기존 화학물질 약 7000종 모두를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등록하게 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는 이 개정안에 대해 이번에도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4월 10일에는 기자회견과 함께 보도자료까지 내어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독성시험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미약하고 기업들의 전문지식도 부족하기 때문에 ▲과징금 폐지 ▲위해 우려물질 지정 최소화 ▲등록된 물질에 한해 정보제공 의무 부여 ▲유해성 시험자료 생산 지원사업 및 컨설팅 사업 등 정부 지원 확대 등을 요구했다.

같은 날 한 일간지의 지면을 보면 화평법에 대한 일부 언론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신문은 ‘화평법 시행에 화학물질 생산 포기하는 업체들’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신문은 익명의 한 화학물질 제조·수입업체 사례를 들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 업체는 미생물과 화학물질을 조합해 흰개미나 좀나방, 곰팡이와 같이 건축물에 해를 입히는 유해균충을 막는 물질을 주로 생산한다. 일본 기업과의 기술제휴로 30년째 탄탄한 회사로 커 왔다. 좁은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1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강소기업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사업의 상당 부분을 접을 판이다. 화평법이 시행되면서다. 이 법에 따라 연간 1톤 이상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업체는 유해성 자료를 첨부해 환경부에 각 물질을 등록해야 한다. 정부와 갈등을 우려해 익명을 요청한 회사 관계자는 ‘9개 물질을 등록하는 데 드는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억원. 그런데 9개 물질을 등록하는 데 드는 비용이 4억9000만원에 달한다. 생산을 강행한다면 영업이익은 고사하고 적자기업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보도 내용만 보면 기존의 느슨하기 짝이 없는 화평법조차 악마의 법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 법을 고쳐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업을 더 규제하겠다는 개정안은 악마의 법이 아니라 대마왕 법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보도를 담당하는 기자나 부서는 경제부 소속이다. 이들은 때론 기업을 비판하기도 하겠지만, 언론사 안에서도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부장이나 국장 등 데스크도 마찬가지다.

일부 언론의 기업 옹호하는 보도

언론 보도에는 물론 기업 옹호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부 기자를 중심으로 기업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4월 16일자에 <경향신문>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벌써 잊었나… 화평법 또 제동 거는 재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화평법 개정에 반발하는 재계를 비판하는 자세를 지켰다. 이 신문은 2013년 화평법 제정 당시에도 재계 압박으로 법이 대폭 완화된 바 있다고 전제한 뒤 환경부 관계자의 입을 빌려 현재 등록이 완료된 물질의 경우 독성시험 자료에 소요된 부담은 기업당 100만~670만원에 불과하다며 경총의 주장은 ‘논리 비약’이라고 밝혔다. 또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선진국 수출 때는 더 강력한 기준도 지키면서 국내 기준은 지키지 못하겠다는 기업의 이중잣대가 다시 나왔다”고 비판한 말도 덧붙였다.

한편 제대로 된 화평법이 만들어져 시행되지 않아 엄청난 피해를 당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환경·시민단체 등은 경총과 일부 언론의 재계 감싸기 내지는 대변하기에 진절머리를 내며 규탄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화평법 제정 당시에도 재계의 목소리만 반영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가피모)과 환경·시민·소비자단체 등으로 이루어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 네트워크’ 등은 4월 24일 경총회관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방지법·화평법 무력화 시도하는 경총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경총의 주장을 반박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언론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감시견으로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당해 생명을 잃은 가족들의 고통스런 삶을 조명하거나 가해기업의 부도덕성,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거나 무능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보도해야 할 때 보도하지 않거나, 의제 설정을 해 끈질기게 무게를 실은 보도를 해야 함에도 이를 외면하고 잘 다루지 않거나, 정부나 기업·환경시민단체의 발표자료에만 의존해 수박 겉핥기식 보도를 하는 측면도 비판적으로 반드시 짚어야 한다.

2011년 8월 31일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 발표 직후인 9월 17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br />한 슈퍼마켓에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이 회수되어 있다./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제공

2011년 8월 31일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 발표 직후인 9월 17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한 슈퍼마켓에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이 회수되어 있다./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제공

우리 언론한테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예방에 관한 한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1994년 첫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선보였을 때 이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데만 열중했다. 가습기 살균제란 신상품과 이어 문제가 불거졌을 때인 2011년까지 무려 17년간 언론이 제품의 위해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위해 가능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언론은 외려 틈 날 때마다 세균의 위험성을 부각해 소비자들이 알게 모르게 세균 공포증에 시달리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어찌 보면 전 국민의 세균 공포증 유행과 이로 인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 열풍에 언론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언론의 세균 공포증 부추기기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세균 공포 마케팅은 세균·곰팡이·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과 모기·진드기 등 해충 등에 대해 과도한 공포를 가지게 해 항균제, 살균제, 항곰팡이제, 모기·진드기약 등 이른바 살생물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일어난 데는 주거의 다수를 차지한 아파트 문화, 한국의 기후, 즉 겨울의 춥고 건조한 날씨 탓 등도 있지만 세균 공포증 확산과 이에 기댄 공포 마케팅을 한 기업에 언론이 부역자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이 얼마나 정신을 못차렸는지는 이런 일그러진, 과도한 세균 공포문화 때문에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참사’가 벌어졌음에도, 최근 들어서도 어디 어디에 세균이 많다는, 그래서 건강에 심각한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실제로 일반 세균이 생활용품에서 검출된다고 해서 심각한 건강 위협이 되는 경우는 사실상 없음)는 보도를 상당수 언론사가 계속하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세균공포증 확산에 기여한 언론

가습기 살균제 참사 예방은 국가도, 전문가도, 시민환경단체나 소비자단체도 하지 못한 것이기에 이를 두고 언론에 비난의 화살을 과도하게 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사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이 드러난 뒤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와 보도량,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우리 언론이 사회적 감시견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왔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5월 초 처음 이 사건이 괴질로 보도된 뒤 원인이 드러나기까지는 치열한 보도경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원인이 드러난 뒤에는 대다수 언론이 2016년 검찰이 가해기업을 본격 수사할 때까지 사실상 침묵하다시피 했다. 일부 방송에서 탐사보도를 간혹 하거나 <경향신문> <프레시안> <베이비뉴스> 등 극히 일부 대중매체나 인터넷언론, 전문매체만 나름대로 의제를 설정하고 의지를 갖고 접근했을 뿐이다. 피해자의 규모와 피해의 성격에 걸맞은 대접의 보도를 우리 언론은 거의 외면했다. 이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효과 있게 집단적으로 내지 못한 탓도 있고, 시민사회·전문가들도 똘똘 뭉쳐 이들과 크게 한 덩어리가 되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큰 목소리를 내는 데 실패한 탓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언론이 이 사건의 본질과 깊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데다, 언론 본연의 사명을 추구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제대로 된 언론이었다면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심층보도를 분명 했을 것이다. 또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주범인 옥시레킷벤키저가 피해자들이 제기한 피해배상 민사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김앤장을 내세운 뒤 서울대 교수 등을 끌어들여 실험연구를 왜곡하고 이를 근거로 피해자들을 압박할 때도 우리 언론은 이를 피해자와 공감하는 눈으로 들여다보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 또 정부가 제때 피해자 조사와 피해 판정을 하지 않고 있을 때(2012~2013년)도, 피해 판정 대상 질환을 특이 중증 폐질환 하나로 국한한 것에 대해서도, 피해 판정과 구제를 대위변제, 즉 구상을 전제로 피해 신청자 가운데 소수에 대해서만 사실상 피해자로 규정해 피해 구제를 해 피해 신고자 대다수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2013~2017년)도 대다수 언론은 이를 심층·탐사보도하지 않았다.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참사’라는 수식에 걸맞은 보도를 하려면 거의 모든 주요 언론이 신문과 방송·통신, 전문지를 가리지 않고 적어도 10여 차례 이상 탐사·기획보도를 내보냈어야 한다.

우리 언론이 그동안 잘못한 것을 만회할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는 언론이 될 것이냐, 아니면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기레기’ 언론이 될 것이냐는 전적으로 언론인과 언론사의 자세에 달려 있다. 시민과 소비자의 편에 서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들여다보고 보도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과 정부의 처지를 많이 신경 쓰는 그 길을 걸을 것인지도 오롯이 언론인과 언론사의 몫이다. 우리가 한때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에서 “이게 나라냐!”고 외친 것과 판박이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보고 “이게 언론이냐!”를 외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안종주 <빼앗긴 숨> 저자,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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