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께서 ‘자유롭게 발언했으면 좋겠다’고 하여 간담회가 2시간으로 길어졌습니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 ‘끝까지 책임져준다’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대통령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 15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정부를 대표해 사과했다. 정부가 피해 구제를 위한 재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2011년 4월 이후 6년여 만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어 가능했다. 청와대 면담 다음날 <주간경향>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간담회를 마련했다. 9일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서 피해자 가족 강찬호(38)·최숙자(68), 최주완(63), 이재성(64)씨와 폐 이식수술 후 투병 중인 피해자 안은주씨(49),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문제를 적극 알린 언론인 겸 시민운동가 안종주 박사가 함께 했다.
“피해자 권리 찾기 매우 힘든 것 같아요”
-안종주(<빼앗긴 숨> 저자, 보건학 박사) <주간경향>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다룬 연중 기획물 ‘엄마 숨이 안 쉬어져’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연재를 끝내기에 앞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피해자가 된 사연과 피해자로서 겪어온 고통, 그리고 아직 미완이며 언제 해결될지 모를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피해자와 그 가족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터놓고 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먼저 어제 대통령을 직접 만나고 오신 피해자분들부터 시작하시죠.
-강찬호(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대표) 2010~2011년 세퓨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3살이던 딸아이는 2011년 6월 15일 간질성 폐질환으로 한 달간 입원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이고 건강은 괜찮습니다. 청와대에 가기 전에 세퓨 제품 피해자들과 3단계 판정 피해자들이 “꼭 우리 얘기를 잘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세퓨는 도산해서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방법이 없는 상태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환경부에서는 청와대 간담회 전 (대통령과의 면담시간이) 한 시간 책정돼 있고 1인당 2분씩 발언해줄 것을 당부했는데, 대통령께서 “자유롭게 발언했으면 좋겠다”고 하여 간담회가 2시간으로 길어졌습니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 “끝까지 책임져준다”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대통령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상규명과 피해자 판정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줄 것과 국회와 잘 협력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최숙자(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연대 공동대표) 저는 옥시 제품 피해자입니다.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브란스 병원에 오래 입원했는데 그때 썼어요. 1999년 12월부터 2000년 1월까지지요. 퇴원 후 집에서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아들이 피부염·비염 등을 앓았어요. 제 막내 남동생은 교회에서 찬양 사역을 하는데 목을 많이 관리해야 하니 가습기 살균제를 적극적으로 썼어요. 작은 가게를 하는데 거기서도 종일 가습기를 틀어놓았죠. 2010년부터인가 몸이 약해졌어요. 찬양을 듣는데 ‘어머 왜 저리 목소리에 힘이 없지’ 싶을 정도로요. 2013년 4월에 입원해서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48세였어요. 환경부 피해조사에서 ‘4단계’ 판정을 받았습니다. 난 4단계가 제일 좋은 등급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억울했던지요. 어제 청와대에 가서 좀 시원했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가서 일러바치는 분위기였어요. 환경부 장관이 얘기를 들으면서 펑펑 울었는데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최주완(63) 집사람이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했습니다. 2005년 5월에 부신에서 종양이 발견돼 수술하고 입원했는데 2주 후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습니다. 옥시 제품요. 2008년 2월에 감기가 폐렴이 돼서 큰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생길 수 없는 병인데 외국에 혹시 다녀왔느냐고요. 그런 적이 없는데. 섬유화를 동반한 간질성 폐렴이었어요. 중환자실에 한 달간 있었죠. 사망했을 때 48세였어요.
“긴급구제 3000만원, 치료비 10% 안돼”
-이재성(64) 저는 2001~2011년 옥시 제품 위주로 사용했습니다. 10년 동안 호흡기 질환에 시달렸지요. 큰애는 2006년 태어나면서부터 사용한 셈인데 생후 5개월 때 천식에 걸렸습니다. 4단계 피해등급이 나왔고, 저는 아예 판정 불가가 나왔지요. 2015년부터 피해가족 모임에서 적극 활동했습니다. 정부가 ‘폐 이외 질환’의 경우 피해보상에 너무 무관심했거든요. 피해자들은 몸이 아프다보니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활동을 해보니 우리 사회에서는 무슨 일을 당할 때 국민들이, 피해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기 매우 힘든 것 같습니다.
-안은주(49) 대통령 만나셨던 분들, 속이 꽉 막혀 있던 게 내려간 것 같다는 말씀이시죠? 우리는 아직 그런 느낌을 못 느껴서 궁금했습니다. 저는 경남 밀양에 사는 안은주입니다. 2008~2010년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고, 2010년 4월 숨이 안 쉬어져서 입원했습니다. 폐렴이었고 결국 폐 이식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3단계 판정을 받았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의 백동민 교수님께서 30분 동안 면담하면서 2차 신청 때 다시 신청해보라 권하셔서 했는데, 똑같은 결과가 나왔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만 적혀 있는 거예요. 검토를 제대로 안한 것이죠. 그게 괘씸해서 피해자 모임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원래 저도 청와대에 초청됐었는데, 폐 이식수술 환자다 보니 항상 2차 감염 위험이 있어서 편지로 대체했습니다.
-안종주 인원 제한이 있다 보니 피해자 모두가 갈 수가 없었죠. 오늘(9일)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시행되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2013년도에도 법안이 추진됐는데 당시 새누리당 반대로 법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지난 2월에 뒤늦게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구제계정운영위원회도 열리고 저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세퓨 등 도산한 업체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정부 기금으로 지원하는 것, 환자들이 입은 피해와 살균제의 인과관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판정된 3·4단계 피해자들의 긴급의료 등에 대한 지원을 논의합니다. 특별법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강찬호 활동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법이 만들어진다는 건 하나의 제도를 남긴다는 것인데, 아쉬움은 있습니다. 제도 속에 여러 이해관계들이 반영되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부터 시행되는 특별법에는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규정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책임 문제도 없습니다. 옥시가 지난해 4월 뒤늦게 사과하며 피해보상 출연금으로 내놨던 50억원에 추가로 50억원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논란이 됐죠. 세퓨 피해자들은 받을 길이 없구요. 구제계정위원회에서는 법으로 보상하지 않는 나머지 부분들을 논의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법 이전에는 이런 문제들을 막무가내로 싸워야 했는데 법이 있으면 시스템 안에서 싸우게 되니까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통해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선례를 만들게 됐어요.
“천식·비염·아토피는 전부 쏙 빠졌어요”
-최숙자 구제계정위원회가 생겨난 것은 좋지만 본질은 흐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구제가 아니라 정확한 판정을 원해요. 웬만한 피해자들을 다 3·4단계로 몰아넣고 제조업체들이 책임을 안 지려고 했던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어요. 그 판정들은 졸속적이었습니다. 특히 상당수가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 다른 기저질환이 있어서 피해를 입은 것이라며 피해가 인정이 안 됐는데, 아니 기저질환이 없으면 누가 애초에 가습기를 열심히 사용하나요.
-최주환 제 아내의 경우도 다른 병이 있었던 기저질환자였기 때문에 판정을 받으면서도 기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강찬호 나쁜 정부 아래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폐출혈과 섬유화(딱딱하게 굳어지는 것) 현상이 아니면 피해로 인정받지도 못했습니다.
-안종주 3·4단계 피해자들에게 긴급구제 명목으로 3000만원이 지원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풀릴 것인가 의문이 있습니다. 안은주 선생님의 경우 폐 이식수술로 교통비와 의료비 등에 상당히 많은 지출이 있었지요.
-안은주 환자 입장에서는 10원이라도 아쉬우니까 준다면 받아야 하는데 고민이 생겨요. 제가 집에서 영수증을 정리하니까 남편이 ‘병원비도 안 되는 돈 주고 나면 끝이지 않느냐. (전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돈인데, 받고 나면 돈 받았다고 소문나서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다’고 그러더라구요. 폐 이식 이후에 감염위험이 높아져서 주기적으로 혈장교환술(혈장 내 오염물질을 제거해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것)을 받았는데 지난 5월에 1500만원을 들여 받았습니다. 혈장술 두 번만 받으면 끝이에요. 실질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되죠. (안씨는 치료비 등으로 3억원의 빚을 졌다고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밝혔다.)
-강찬호 판정 당시 환경부 논리도 우리(환경부) 역시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에서 지지 않으려면, 피해자로 인정되려면 엄격하게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제 급여 지급대상을 확대하는 것과 또 민사소송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요. 해결하려면 정말 많은 단계들이 남아있습니다.
-최숙자 사망환자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없어요. 나는 이게 참 억울해요. 전체적으로 판정등급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언론들도 보통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을 중심으로 다루다보니, 대부분은 폐질환 외 천식·비염·아토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전부 쏙 빠졌습니다. 마치 페질환 환자에게만 지원해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 마냥요. 그동안 장·차관들을 많이 만났는데 ‘모든 피해자들에게 다 보상해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떡하나’ 이런 논리가 많았어요. 예산을 정해놓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국민이 죽었잖아요. 정부 예산 1000억원 더 들여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큰일인가 싶어요.
-촤주완 피해자 단체가 11개인데 환경부에서 혹시 이걸 나쁘게 활용하지 않을지 걱정됩니다.
-강찬호 여러 문제점들이 있지만 법이 생겨난 전과 후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피해자들과 소통을 지속하고, 또 수많은 피해자들의 건강피해 실태를 계속 추적하고 화학물질에 대한 연구를 축적하는 국가 건강관리 시스템이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리·사진 박은하 기자·우철훈 선임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