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판소리극 여는 연출가·배우·소리꾼 조아라씨 “현실의 다양한 ‘을’ 모습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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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아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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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또 달려서 훈장은 수두룩 빽빽하나 벼슬구멍 바늘구멍. 내 눈이 빨갛다 무섭다 수상하다 귀가 길다 의심스럽다….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으니 내 몸 내가 지킬 수밖에.”

수궁가는 잘 알려진 <별주부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당대 민중의 삶과 현실을 잘 반영한 토끼의 모습 덕에 판소리의 한 마당으로 뼈대가 잡히기 시작했다. 특히 배를 가를 뻔한 토끼가 구사일생으로 육지에 돌아와 별주부(자라)에게 욕을 퍼붓는 장면은 단연 인기 있는 대목이었다. 연원을 따져 보면 고대 인도 설화에 근본을 둔 토끼와 자라 이야기가 수천 년을 살아남아 조선 후기의 수궁가로 재탄생한 것도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는 풍자성 때문이었다.

배우이자 소리꾼인 조아라씨(35)가 연출까지 맡은 <수궁가가 조아라>도 현대 한국의 현실을 풍자하는 판소리극이다. 토끼는 ‘헬조선’을 빼다박은 ‘헬육지’에서 이것저것 다 포기하고 살아가는 ‘N포세대’다.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휘둘리고 쫓기다 겨우 자라를 만나 벼슬하러 수국(水國)으로 가게 되지만, 막상 도착한 수국은 토끼의 간만 노리는 ‘헬육지’보다 더 썩은 세상이다. 토끼는 꾀를 내어 용왕을 속이고 세상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수궁의 말단직원으로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자라가 울면서 토끼에게 속사정을 토로한다. 자라 역시 병든 용왕과 부패한 신하들 등쌀에 떠밀려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한 ‘을’이었다. 결국 토끼건 자라건 ‘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투영된 캐릭터였던 것이다.

조아라씨는 미산 박초월제 수궁가를 기본으로, 어려운 옛말을 쉽게 풀고 현대의 사회상을 담아 재창작한 희곡을 만든 뒤 연출과 출연까지 도맡았다. 극은 토끼로 분한 조씨가 고수와 함께 서로를 속이고 죽여야 하는 이 시대를 한판 놀이로 풍자하며 펼쳐진다. 조씨는 “수궁가가 오랜 시간 살아남은 이유가 그 풍자성에 있다고 봤는데,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재창작을 했다”며 “토끼와 자라뿐만 아니라 현실의 다양한 ‘을’의 모습을 한 여러 동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일인다역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도전해 볼 만은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판소리를 배워온 조씨는 국악고를 거쳐 학부에서도 판소리를 전공했다. 이후 대학원에서는 연기를 전공해 판소리와 연기를 아우르는 독특한 예술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씨는 “사람들의 응어리진 이야기를 꺼내 풀어가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무녀이자 이야기꾼으로 자임한다”며 “활동을 해나갈수록 연기와 소리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감해야겠다는 생각이 작품에도 반영되면서 덕분에 주목해 주는 관객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조씨가 이끄는 공연단체 ‘몸소리말조아라’는 <수궁가가 조아라> 이전에도 다양하고 실험적인 형식의 극으로 관객들과 만나 왔다. 인기 개그맨인 아버지 조정현씨와의 관계를 연극 형식으로 옮겨 무대에 올리는가 하면, 연극과 판소리 외에도 각종 영상과 음향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극단 구성원들과 함께 특색 있는 시도들을 해 왔다. 조씨는 “지금까지의 여러 시도만큼이나 이번 공연도 보이지 않는 데서 도와주는 극단 구성원들 덕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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