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철조망 믿는, 분단으로 왜곡된 땅”
코로나19 시국만 아니었다면 강주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북한생활문화연구단 선임연구원(49)은 압록강·두만강의 조·중 접경지역에 나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2013),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2016),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2019) 등 접경지역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관찰지 연구를 다룬 책만 벌써 3권이다. 그가 신간을 냈다. 꿩 대신 닭이랄까, 압록강·두만강 대신 그의 눈에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DMZ가 들어왔다.
신간의 제목은 <휴전선엔 철조망이 없다>이다. 철조망이 없다고?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렇다. 휴전협정으로 만들어진 군사분계선은 그 선을 중심으로 각각 남북으로 2km씩 물러선 뒤 종단으로 도합 4km 공간을 비무장지대(DMZ)로 설정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휴전선 하면 떠오르는 건 녹슨 철조망이다. 강 연구원이 책 집필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2021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철조망, 평화가 되다’라는 행사였다. DMZ 군사분계선의 철조망을 녹여 ‘평화의 십자가’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 철조망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막상 그걸 만든 서울대 조소학과 교수님도 그 철조망이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다고 답을 하더라고요. 취재한 언론사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렇다고 그걸 두고 사기라고 말하긴 어려운 게 청와대 통일부 영상을 찾아보면 철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해안 철조망이에요. 영상에서 용달차가 가서 철거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제목이 <DMZ 철조망>입니다. 이건 한편의 블랙코미디도 아니고….”
‘휴전선에는 철조망이 없다’는 그의 명제는 집요하게 이어진다. 하나만 알면 많은 오류가 잡힌다고 했다.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강 연구원의 지적이 맞다. 임진각에서 평화 곤돌라를 타고 보이는 지역은 북한지역이 아니다. 민통선 안쪽의 풍경이다. 거기서 농사를 짓는 농부나 물고기를 잡는 어부도 북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DMZ평화관광 등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압록강·두만강 접경지역을 연구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접경지역은 무서운 공간이어야 합니다. 조선족 화교 가이드가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데, ‘너 왜 거짓말하냐’는 한국 답사객들하고 많이 부딪힙니다. 연차가 쌓이면서 설명 내용이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에 맞춰 변경됩니다. DMZ도 마찬가지예요. 무서운 공간이고, 지뢰도 많고, 긴장해야 하고….”
그가 답답한 건, 남북관계만 놓고 보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철조망이 없는 데도 있다고 상상하는 사회입니다. 분단이라는 것이 다른 많은 걸 얼마나 많이 왜곡해 바라보게 하는지 뼈저리게 느낍니다. 연구자로서 한계는 있지만, 휴전선에 철조망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분단과 관련된 오류를 바로잡는 데 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