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포증 자조모임 이끄는 심리상담가 박대령씨…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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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법정기록을 읽었다. 4월 16일 오전, 배 안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슬로비디오처럼 그려진다. 아비규환의 지옥도도 잠시. 너무나 평온해서 슬픈 조용한 바닷속. 그리고 현실의 거리.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돌아가는 일상. 지난 1년간 문득문득 떠오르는 울컥거림이다. 17살 다윤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했던 7살 혁규는. 기자뿐 아니다. 세월호 사건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온 국민의 가슴에 남은 ‘트라우마’다.

[주목! 이 사람]사회공포증 자조모임 이끄는 심리상담가 박대령씨…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일깨워

“심리치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누군가 함께 있어준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같이 아파하고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심리상담사 박대령씨(39)의 말이다. 그는 광화문에서 세월호 천막을 지켜온 사람들이 “일종의 ‘확대된 심리상담’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고립감과 소외감입니다. 같이 공감하고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는 국민들이 그나마 있었다는 것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큰 도움이었을 것입니다. 국민들도 그런 ‘연대’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 것입니다. 결코 정치적인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인간애로 손을 잡는 것이니 그 과정은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씨는 2007년부터 사회공포증, 회피성 성격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자조모임을 이끌어 왔다. 모임의 이름은 <이미 아름다운 당신>. 다음에 모임의 공식 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자조모임이라는 것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자발적 모임을 말한다. 영화 <플랜맨>의 주인공 한정석이 참여하고 있던 강박증 모임을 생각하면 된다. 사회공포증을 겪고 있는 사람의 범위는 넓다. 흔히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아예 집밖을 나오지 않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가벼운 사회공포증을 겪는 사람도 있다. 박씨 자신도 남들 앞에 서면 덜덜 떠는 가벼운 사회공포증을 겪고 난 다음 자기 스스로를 구제하고자 모임도 만들고 박사논문도 썼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의 연대’가 자조모임의 핵심이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주변과 상호작용이 되지 않으면 고립되고 마침내 시들고 만다. “자조모임이 갖고 있는 치유 도구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모임에 나와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사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면 다 멀쩡해 보이거든요. 자신만 이상한 것 같아 미치도록 힘든 겁니다. 그러다 모임에 나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털어놓게 되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힘들어 하는구나’라고 깨닫는 겁니다. 전까지 나는 정신병자야, 못난 사람이야,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이야 하고 자학하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가 되는 것이죠.”

박씨가 요즘 고민하는 것은 건강한 생태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주간경향>에 기고했던 인도의 생태공동체 사다나 포레스트에서 체득한 삶의 원리이기도 하다. “사다나 포레스트에서는 공짜로 주고 배우는 것이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즉석으로 워크숍이 일과 후에 만들어져요. 그렇게 요가도 배우고, 아프리카 댄스도 배우고, 마사지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또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요. 그런 공동체를 우리나라에서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10년 넘게 걸리더라도요.”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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