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층을 향한 대중의 분노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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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목 더 테러 라이브

제작연도 2013년

감독 김병우

출연배우 하정우_윤영화, 이경영_차대은, 전혜진_박정민

상영시간 97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013년 7월 31일

한국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장르가 하나 존재한다. ‘분노’ 장르가 그것이다. 민주화 과정 동안 한국은 갖가지 사회적 통증을 통과해 왔다. 군사정권이 존재했다. 무려 ‘혁명’씩이나 해놓고 정권을 도로 군인 출신 대통령에게 맡겼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쉽고 간편한 절대악이 존재했다. 그 절대악의 이름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그리고 노태우로, 다시 김영삼으로, 결국 이명박과 박근혜로 수렴되었다.

억눌리고 억울한 게 많을 수밖에 없는 사회이고 역사다. 누가 보더라도 악랄했던 MB 정권을 거치면서 지배계급을 향한 대중의 격렬한 분노는 영화업계에 빠르게 흡수되어 ‘기획’의 형태로 구체화했다. 분노할 기회만 기다리고 있는 대중에게 마음껏 분노할 기회를 제공하는, 요컨대 분노를 착취하는 장르가 개발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소한의 만듦새도 갖추지 못한 채 ‘이 영화를 봐야 너희들이 민주시민이다’ ‘시대에 공감하고 동참해라’는 식의 당위만 강조하는 <26년> <노리개> 따위 분노 보부상 영화들이 등장했다.

<더 테러 라이브>는 앞서 언급한 대중의 소비심리를 강렬하게 자극한다. 여기에는 대중들 사이에 느슨하고 전방위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권력층을 향한 막연한 불신과 파괴심리가 존재한다. 이야기 자체에 구체적인 동기와 디테일이 존재하지 않을 때 이와 같은 거시적 당위는 ‘분노 보부상 영화’로 전락할 여지를 활짝 열어제친다. 심지어 <더 테러 라이브>는 ‘더러운 세상 에라 다 죽자’는 식의 절멸을 향한 메시지 또한 포함하고 있다. 여러 모로 위험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더 테러 라이브>가 근래 보기 드물게 ‘미칠 듯이 재미있는’ 영화라는 사실에 있다. 나는 이 영화의 상영시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체감치로는 한 시간을 넘기지 않은 것 같았다.

잘 나가던 앵커가 라디오로 좌천되었다. 오늘은 그 첫날이다. 앵커는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아침부터 이상한 사람이 자꾸 주제와 관련 없는 전화를 걸어온다. 앵커는 슬슬 화가 솟구친다. 결국 욕을 한다. 그랬더니 나 폭탄 가지고 있는데 이거 터뜨려도 되냐는 답변을 해온다. 앵커는 기가 막히다. 야 터뜨려, 라고 말한다. 그랬더니 마포대교가 무너졌다. 앵커는 겁을 먹는다. 그러나 금세 이게 재기의 발판이 될 동아줄이라는 걸 깨닫는다. 라디오를 중단하고 바로 생중계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리고 테러범과의 대화를 생중계한다. 시청률이 치솟는다. 대박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치명적인 쪽박의 시작이었다.

<더 테러 라이브>는 대중의 공공연한 분노와 혐오에만 매달리지 않고, 오밀조밀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의 조건을 완연히 충족한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인다. 세상에 연출을 잘하는 감독은 많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많다. <더 테러 라이브>는 누가 보더라도 좋은 연출가와 굉장히 훌륭한 배우들이 존재하는 영화다. 이 정도로 소소한 단역마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건 그만큼 현장에서 연출가의 연기 조율이 잘 수행되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동시에 <더 테러 라이브>는 단지 좋은 연출가와 좋은 배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화다.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면 관객들이 좋아할지 꿰뚫고 있는 기획과 그러한 심리를 어떻게 하면 부족하지 않게 충족시킬 수 있을지 잘 파악하고 있는 영화적 비전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미스터 고>의 흥행 실패와 매우 밀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예상과는 어긋난 <설국열차>와 함께 <더 테러 라이브>라는 영화가 ‘발견’되었다. 한국영화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허지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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