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다시 찾아온 대만의 대표적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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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홍콩 느와르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이나 홍콩, 그리고 한국에서도 꽤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대만 청춘 로맨스’의 대표격이다.

제목 청설

원제 廳說 (팅슈어 tingshuo)

감독 청펀펀

주연 펑위옌, 진의함, 천옌시

상영시간 110분

등급 전체관람가

재개봉 2018년 10월

오드(AUD)

오드(AUD)

풋풋하다. 뭐 그렇다. 사랑에 논리란 없는 법이지. 대책 없이 빠져드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던가. 나이도 국경도 신체조건도 넘어서는 거라고 하지만. 그런데 영화 중반을 넘어서면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졌다. 대학 다닐 때 여름이면 농활이라는 걸 갔다. 마지막 날, 졸린 눈을 비비며 하는 평가 자리에서는 이런 말이 매년 고정 레퍼토리로 오간다. 농활은 농촌봉사활동의 줄임말이 아니다, 농민과 학생들의 계급연대다, 가만! 학생이 계급이라고? 소부르주아지가 아닌가? 10여일의 극기훈련이었다고 하면 우리는 참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분들’에겐 그건 생활이다.

<청설>. 누누이 밝히는 이야기지만 사전에 가급적 영화에 대한 정보를 읽지 않는다. 초겨울 눈이 내리는 새벽에 연인이 재회한다는 이야기일까. 그래서 붙은 이름이 청설(淸雪)?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건 수영하는 한 처녀다. 그리고 응원하는 또 다른 젊은 처자. 언니와 동생이다. 점심도시락을 배달하던 스무 살 청년은 둘 중 동생에게 꽂혔다. 뻔뻔한 구애가 시작된다. 언니와 동생, 그리고 남자 사이의 대화는 모두 수화로 진행한다. 포스터에 적힌 제목을 다시 봤다. 청설(廳說). 듣고 말하기. 영제는 Hear me다. 청각장애인 이성과의 사랑 이야기다.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동생의 이름은 양양이다. 남자의 이름은 티엔커. 영화는 티엔커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두 사람의 티격태격 대화는 수화와 MSN메신저-아, 이게 언제적 이야기냐-로 이뤄진다. 티엔커의 관찰자 시점에서, 관중들은 이 남자가 청각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대학시절 배운 수화로 그녀와 대화를 진행한다. 수화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데스크톱 컴퓨터 앞에서 ‘생쑈’를 한다.

앞서 영화 중반을 넘어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청각장애를 극복한 사랑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겠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2등 시민으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장애의 현실이 아니라 그 어떤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성격 좋고 오지랖 넓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면? ‘10여일간의 극기훈련으로서 농활’을 떠올린 이유다.

영화는 앞부분에서 DSLR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언니 사진을 찍는 양양의 시각에서 티엔커의 시각으로 넘어간다. 코치이자 매니저, 헌신적인 보조자로서 여동생이 모니터링 또는 기록하는 수단이 왜 정지사진을 찍는 카메라일까. 동영상을 찍는 캠코더가 아니라. 자매가 과거를 회상하는 수단 역시 앨범에 고이 모셔져 있는 사진들이다. 사진은 소리를 배제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낸다. 그래도 많은 것을 담는다. 이야기는 소리가 없어도 만들어질 수 있다. 글자 그대로 환유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뛰어나가던 양양은 익스트림 자전거를 타던 또래 청년을 피하다 넘어져 다친다. 티엔커는 자신의 스쿠터로 그녀를 병원으로 실어 나른다. 골목과 골목을 잇는 지름길로 급히 달리던 티엔커의 스쿠터는 ‘공사중’ 표지에 막혀 다른 길로 가는데, 골목의 담벼락에는 ‘I LOVE YOU’라고 적혀 있다. 이후의 극 전개에서 시련 후 사랑 고백을 암시한다.

예견된 반전, 행복한 결말

한석규와 전도연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접속>(1997)이 떠오른다. 두 주인공의 사랑은 PC통신을 통해 오가는 대화로 무르익어가는데, 장윤현 감독은 그것을 어떻게 연출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청설>은 극의 클라이막스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사랑의 감정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수화로 표현한다. 한국 관객이야 어차피 외국어 영화이므로 자막에 의존할 거고, 대만 관객들도 아마 자막을 통해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선을 따라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중심선에 말로 하는 대화가 없다는 것을 관객들이 눈치 채기란 쉽지 않다. 이런 식이다. 양양이 길거리에서 아르바이트로 마임 공연을 할 때 바로 옆에서는 젊은이들로 이뤄진 밴드가 거리 공연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신통하게도 젊은 남녀의 애달픈 사랑을 담은 노래다. 모든 오브제가 앙상블을 이루며 이들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 관객들이 대사가 없다는 것을 잊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의 반전. 티엔커의 시각이 아니라 양양의 시각에서 다시 본다면 그것은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영화는 1980년대의 홍콩 느와르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이나 홍콩, 그리고 한국에서도 꽤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대만 청춘 로맨스’의 대표격이다. 어쩌면 이들의 오해와 착각이 빚은 행복한 결말을 다시 확인하고픈 열혈 팬들 덕분에 이 영화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엔 나이가 없다지만 글쎄. 영화를 보니 누구나 그런 풋풋한 감정을 품는 한때-청춘이 있었음을, 살짝 그리워지기도 한다.

재개봉 추진 영화사간 갈등

영화 <청설>의 스틸이미지 | 오드(AUD)

영화 <청설>의 스틸이미지 | 오드(AUD)

앞서 ‘MSN메신저’라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채팅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나지만 요즘 영화가 아니다. 재개봉이다. 그러고 보니 양양의 마임신 같은 장면은 이미 TV영화 소개 프로그램 등에서도 여러 차례 본 기억이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2010년 6월에 한국에서도 개봉했었다. 8월에는 일본에서도 개봉했고. 그러니까 8년 만의 재개봉이다. 찾아보면 TV ‘주말의 명화’에서도 방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왜?

영화 개봉에 앞서 잡음이 있었다. 영화 수입사와 배급사협회 사이의 이중계약 논란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른 영화 수입사가 판권계약을 마친 상황에서 더 높은 가격을 부른 현 수입사 측으로 판권을 넘겼다는 주장이다. 전에 판권계약을 마친 쪽은 배급사협회를 이끄는 메이저 영화사다. 영화의 개봉을 추진하는 수입사 측에서는 “먼저 수입을 추진하던 재개봉 판권이 무효가 된 것을 확인하고 진행했는데 협회가 일방적으로 한쪽 이야기만 듣고 입장을 발표했다”는 성명문을 이메일로 배포했다. 업계의 상도덕과 관행 문제다. 근 7∼8년간 만만치 않은 대만 로맨스 팬층이 형성되었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의 KOFIC(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2010년 성적표는 전국 누적관객 수 1만7086명이었다. 당시 흥행작은 아니었다. 다시, 그런데 왜 재개봉 판권을 둘러싸고 잡음이 벌어졌을까.

업계에서는 VOD나 IPTV 등 2차 판권시장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인터넷의 하마평을 보면 ‘최애(최고로 아끼는) 영화’로 이 영화를 뽑는 특정 연령대 성별 팬층의 입소문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도 진행되는 모양이다. 리메이크 영화가 개봉하면 2차 판권시장에서 원작의 위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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