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착륙 이면의 장엄한 인간 드라마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질문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과연 그들이 달에 발을 디디게 만든 근본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제목 퍼스트 맨 (First Man)
제작연도 2018년
제작국 미국
러닝타임 141분
장르 드라마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제이슨 클락, 카일 챈들러
개봉 2018년 10월 18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근래 한국관객들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모험영화에 후하다. 2013년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감독)를 시작으로 <인터스텔라>(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4), <마션>(리들리 스콧 감독, 2015) 등 유사소재 작품들의 선전은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모든 SF영화들이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소위 정통 SF라 불리는 장르의 영화들은 그리 대접받는 부류가 아니었다. 여전히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SF영화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실증한다.
성공작으로 언급한 위 세 작품의 공통된 특성은 뚜렷하게 정리된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현실적으로 가능한’이라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립되는 것처럼이라도 보여야 한다. 이후 펼쳐지는 모험 속에는 절체절명의 위기순간이 필수적으로 등장해야 하며 더불어 가족애나 동료애 등으로 읽히는 인간애가 녹아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 요소들이 충족되었다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한 이름의 감독과 배우가 참여하고 중형 이상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되면 된다. 영화 <퍼스트 맨>은 위의 조건에 얄밉도록 꼭 들어맞는 작품이다. 그리고 앞선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현실적’으로 보인다.
1969년 7월 20일, 인류는 달에 발을 디딘다. 이 놀라운 사건 자체가 이미 충분히 영화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변 이야기나 이를 부정하는 음모이론을 다룬 작품들은 많았지만 정작 정면에서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이 없었다는 점은 놀랍다. 그만큼 달 착륙이라는 화려한 역사 뒤에 가려진 정치·사회적 이해관계나 인문학적 의미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그리 낭만적이거나 녹록한 사건이 아니었다. <퍼스트 맨>이 우주를 배경으로 성공했던 앞선 모험영화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화려한 볼거리나 허구적 서스펜스가 상대적으로 현저히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라라랜드> 감독의 진일보한 성취
<위플래시>(2014)와 <라라랜드>(2016)를 통해 신뢰를 쌓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달 착륙이라는 단단한 원석을 세공하기 위해 선택한 도구는 앞선 두 작품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취를 향한 인간의 맹목적 ‘투지’와 그에 병행되는 ‘상실’에 관한 고찰이다. 영화
<퍼스트 맨> 안에서도 그것은 장엄하지만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셔젤 감독은 아폴로 계획이 ‘잔혹한 임무’였다고 정의한다. 당시 달 착륙에 사용된 전체 기술이 지금의 아이폰 하나만도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그는 관객들이 우주비행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체험하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려움의 근원은 비단 열악한 과학기술만이 아니다. 주인공 닐 암스트롱은 지구에서 멀어지는 만큼 가족과 동료라는 사회적 울타리로부터도 멀어진다. 그의 강박적 목적의식과 책임감은 서서히 주변의 인물을 밀어내고 고립을 자초한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질문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과연 그들이 달에 발을 디디게 만든 근본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뛰어난 제작진의 출중한 작품
주제가 무엇이든 한 편의 영화가 상업적으로 외면받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관객들을 매료시켜야 한다. 영화와 관련된 정보나 인터뷰를 들춰보면 기획 이후 어느 정도 작품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제작진의 목표는 뚜렷했다. 프로듀서 마티 보웬은 그들의 작업이 ‘어떻게 하면 관객을 우주선 조종실에 앉힐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단순히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을 함께 느끼고 목격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당연히 섬세한 기술적 완성도를 담보로 한 야심이었지만 결국 관건은 ‘이야기’다. 성과의 밑바탕에는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제임스 R. 한센이 쓴 동명원작과 더불어 이를 영화적으로 능숙하게 풀어낸 <스포트라이트>
<더 포스트>의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작가 조쉬 싱어의 탁월한 각색이 큰 기여를 했음도 분명하다. 셔젤 감독의 절친한 대학동문이자 데뷔작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벤치>(2009)부터 모든 작품에서 함께 작업해온 작곡가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이야기의 흐름에 발맞춰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그의 음악은 자칫 평면적으로 읽힐 수도 있는 드라마에 결정적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각본·음악·연출·연기의 모든 요소에서 출중한 결과를 뽑아낸 <퍼스트 맨>은 2018년 만들어진 영화들 중 의미 있는 한 편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영화 속의 아폴로 프로젝트
1902년 프랑스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스는 최초의 SF영화라는 명예를 얻고 있는 <달세계 여행>을 공개했다. 깜찍한 상상력과 섬세한 영화기법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창의의 봇물을 터뜨렸고 이후 수많은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란 비단 영화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다. 67년 후 영화 속에 펼쳐졌던 황당한 사건이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공개된 <퍼스트 맨>은 이제껏 우주탐사를 소재로 나왔던 그 어떤 영화보다 현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관객들은 영화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현실에 기반을 둔 내용이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창작자의 고뇌로 탄생한 철저한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세 명의 우주비행사가 지구로 귀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가족들이 판매할 수 있도록 수백 장의 우편봉투에 친필 사인을 해놓았다든가, 임무를 수행하는 8일 동안 비행사들의 생리현상으로 인해 좁은 우주선 안이 지독한 냄새로 가득했다는 사실 등은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1995년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아폴로 13>은 관련소재 영화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아폴로 11호의 화려한 성취와 대비되는 미국 우주 개척의 한 페이지를 엿볼 수 있다. 2011년 곤잘로 로페즈 갈레고 감독이 연출한 <아폴로 18>은 공식적인 아폴로 계획이었던 17호 이후를 상상한 파운드푸티지 형식의 스릴러 영화였지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프랑스 코미디 <문워커스>(2015)나 매트 존슨 감독의 <아폴로 프로젝트>(2016)는 호사가들이 주장하는 달 착륙 거짓 음모이론을 위트 있게 재해석한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