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해결 아이러니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cj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제목 설국열차

영제 Snowpieces

제작 모호필름, 오퍼스픽쳐스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이완 브렘너, 고아성

러닝타임 125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3년 8월 1일

영화 <괴물>이 개봉한 한참 후, 우연한 자리에서 환경단체 녹색연합에 사전 취재를 온 봉준호 감독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한미군기지 주변의 환경오염 문제를 취재수첩을 들고 와 꼼꼼히 취재해 가더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그 취재는 영화 <괴물>의 오프닝시퀀스에서 소화했다. 혹자는 <괴물>을 두고 반미영화라고 했지만 글쎄. 그것은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 수단에 불과했다.

<설국열차>의 시간적 배경은 2031년, 그리고 사건은 2014년 7월 1일 오전 6시, 그러니까 내년에 시작한다. 이 영화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주제는 지구 온난화다.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는 ‘CW-7’이라는 물질을 살포하는 데 합의한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었다. 지구는 급랭됐다.

99%쯤의 인류는 얼어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1년에 한 바퀴씩 지구를 순환하는 윌포드의 ‘끝없이 달리는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뿐이다. 달리는 열차에서 가용자원은 제한되었다. 열차의 뒷부분에 탑승한 사람들은 롤런드 에머리히의 영화 <2012>(2009)에서 주인공 커티스 일행처럼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었다. 앞칸의 사람들은 무장력을 동원해 그들이 넘어오는 것을 봉쇄한다. 배가 고파진 이들은 서로를 잡아먹었다. 제일 먼저 희생된 것은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이들이 질서를 잡아나가고 앞칸의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과 앞칸의 어떤 이가 이들을 위해 ‘단백질 바’(양갱처럼 생겼다)를 고안해 배급하는 시스템은 길항관계처럼 서로 맞물려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17년 뒤. 뒤칸의 사람들에겐 앞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일단은 그들을 가로막고 서 있는 무장군대의 타도가 우선순위다. 뒤칸의 정신적 지도자는 약자들을 살해하려는 흥분된 군중을 가로막고 자신의 팔을 잘라냈던 길리엄이다. 

반란의 실질적 중심은 영화 <2012> 주인공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커티스다. ‘커티스와 결사대’는 과거 있었던 두 차례 반란의 주인공들이 성공하지 못했던 곳까지 진출한다. 커티스는 그들을 무력으로 다스리던 열차의 ‘총리’를 인질삼아 앞칸으로 나아간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건 ‘요지경 같은 세상’이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삶을 그들은 살고 있었다.

세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은 이 설원의 폭주열차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알레고리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열차의 각 칸은 전체 시스템이 재생산되기 위한 계급이다.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는 각 칸의 관문은 뒤칸 사람들이 드럼통을 길게 연결해 만들어놓은 관에 의해 무력화한다. 이후에는 감옥에서 이들이 꺼낸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가 합류해 하나씩 열어젖힌다. 뒤칸의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앞칸’의 세상이 ‘교실’이라는 것은 인상적이다. 열차 속에서 살아야 했던 지난 17년, 태어난 애들은 ‘무궁무진한 힘을 주는’ 엔진과 그의 설계자 윌포드를 찬양하는 것을 배운다. 동시에 이 시스템을 벗어나려 했던 이들이 어떻게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되었는지 역시. 계급질서는 교육을 통해 재생산된다. 커티스의 최종 목표는? 윌포드를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모른다. 엔진을 멈추는 것은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다. 마침내 윌포드를 만난 커티스가 직면한 ‘진실’은 더 더욱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반면, 남궁민수가 커티스 일행에 협조한 목적은 뚜렷하다.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솔직히, 그게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영화의 엔딩에서 감독은 남궁민수의 딸 요나의 시선을 좇아 얼음산을 타고 넘는 북극곰을 보여준다. 빙하가 녹아 익사하는 북극곰은 지구 온난화의 비극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북극곰을 살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마지막 남은 인류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정용인 기자 nqbus@kyunghyang.com>

터치스크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