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자본이 재현한 일본 괴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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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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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퍼시픽 림

원제 Pacific Rim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롤리_찰리 헌냄, 스탁커_이드리스 엘바,
마코_키쿠치 린코, 뉴튼_찰리 데이, 척_로버트 카진스키

러닝타임 131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3년 7월 11일

이건 ‘대놓고 추억 팔기’다. 영화 <퍼시픽 림>을 본 결론이다. 극장 좀 가본 사람이라면 한 1년 전부터 지겹게 봤을 것이다. “그 놈은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지구 속에서 왔으며…”로 시작되는 영화 <퍼시픽 림>의 예고편을.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퍼시픽 림>은 과감하게 영화의 설정을 압축한다. <퍼시픽 림>이라는 영화 제목이 뜨기 전 인트로에서 수십년 동안 지구에서 벌어진 일을 요약한다. 간략히 다시 정리해보자. 태평양 심해, 대륙 판과 판이 부딪치는 활화산대에서 ‘놈’들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 각국의 주요 대도시는 대혼란에 빠진다. 놈들은 닥치는 대로 부수고 불태운다. 놈들의 이름은 카이주다. 카이주는 괴수(怪獸)의 일본 발음이다. 카이주라는 이름이 붙은 건 쓰나미처럼 태평양 근해의 일본이 최초 희생이었거나, 현실을 고려했다면 일본의 SF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수들을 닮아서였을 것이다. 정신을 차린 각국의 수뇌부는 환태평양(pacific rim) 연합방위군을 결성한다. 이들의 무기는 괴수 크기에 맞먹는 거대 로봇이다. 이름은 ‘예거’(Jaeger). 독일어로 사냥꾼이라는 뜻이다. 

수십년간 싸우면서 예거도 진화했고, 카이주도 진화했다. 카이주들은 예거와의 싸움을 통해 화학물질을 발사하거나 초전자파를 동원해 전자기계를 마비시키는 ‘전술’을 개발했다. 각국 수뇌부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지출되는 예거 프로그램이 효율이 떨어진다고 보고, 해안에 인접한 도시 외곽에 거대한 방어벽을 구축하는 전략을 도입한다. 예거 프로그램을 운용하던 환태평양방위사령부는 확실치 않지만, 세계연합 지도부의 그런 계획에 반기를 든다. ‘저항군’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예거들을 한 자리에 모아 카이주들이 들어오는 태평양 심해의 통로를 봉쇄하는 작전을 진행한다. 사실상의 지구 멸망이냐, 인류의 생존이냐를 두고 벌이는 한판 싸움이다.

사령관 스탁커는 구 모델 예거를 조종할 수 있는 퇴역조종사 ‘롤리’를 찾아나선다. 참, 한 가지 중요한 설정을 빠트리면 안 되는데, 예거는 인간 조종사 혼자 조종할 수 없다. 1970년대 TV 공상과학시리즈 <공룡수색대>에서 철희와 영희가 크로스 하듯, 두 명의 조종사가 각각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맡아 정신이 ‘합체’되어야 한다. 이 기술은 ‘드리프트’라고 불린다. 아무래도 친형제 사이이거나 부자관계 사이여야만 드리프트는 원활하게 이뤄진다. 롤리가 퇴역한 건 카이주를 퇴치하기 위해서 자신의 형과 싸우다 그만 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형이 죽는 순간 느꼈을 고독과 절망감, 분노, 무력감을 함께 겪었다. 한마디로 폐인이 된 거다. 새로 구성된 저항군에서 그의 짝을 맡은 이는 어린 시절 카이주에게 자신의 부모를 모두 잃은 일본 처녀 마코다.

앞서 ‘대놓고 추억 팔기’라고 한 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괴수물, 특히 고지라(1954)에서 시작되는 혼다이시로-토호영화사의 괴수물이 개척한 장르적 클리셰로 가득차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 일본 괴수물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1967년 두 편 만들어졌다. 바로 <대괴수 용가리>와 <우주괴인 왕마귀>다. <우주괴인 왕마귀>를 보면 코미디언 배삼룡씨가 구봉서씨와 피난가는 서울시민으로 나오는데,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똥을 싸다가 괴물의 서울 공격으로 땅이 흔들려 주저앉는다든지, 괴물의 공격방향을 두고 부인을 걸고 내기를 하는 등의 코믹 조연을 한다. <퍼시픽 림>의 조연인 두 과학자 역할이 딱 그것이다. 뉴튼 박사는 무모하게도 카이주와 ‘드리프트’를 시도해 카이주들을 타도할 결정적 단서를 얻어낸다. ‘헬보이’ 론 펄먼이 카이주 장기밀매로 성공한 암흑가 보스로 나오는 점도 인상적이다. 아쉬운 점은 영화의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의 색깔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뭐, 할리우드 자본으로 마음껏 ‘덕질’해봤으니 감독의 개인적 소망은 이룬 것이겠지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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