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변산, 바닷가의 늙은 아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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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생존하는 아비들 역시 파도소리만으로도 바다를 짐작하고, 바람의 소리만으로도 하늘의 이치를 터득한 듯했다.

변산반도는 전북 부안군의 해안선을 따라 바다와 삶이 온전히 어우러지는 땅이다. ‘서해의 진주’라 불리는 변산은 전북 서남부의 해안에 비쭉이 튀어나온 반도이다. 노령산맥의 산줄기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변산은 산악지형의 내변산과 해안선을 따라 모래해안과 기암의 해안절경이 어우러진 외변산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한때 쇠락했던 곰소염전은 천일염이 각광을 받으면서 규모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한때 쇠락했던 곰소염전은 천일염이 각광을 받으면서 규모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외변산은 바다의 변산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변산, 고사포, 격포, 상록, 모항 등 해변이 이어지고 곰소만 갯벌과 곰소항, 곰소염전 등 비릿한 어촌의 풍경이 모두 한데 어우러진다. 옛 시절 서해의 가족 휴양지로 이름이 높았던 변산해수욕장을 둘러본다. 시절이 지난 해수욕장은 화려했던 여름의 기억을 모두 잊은 듯 서늘하다. 모래밭으로 오래된 그 여름 발자국들은 소리도 없는 파도에 씻기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아버지는 해마다 여름이면 온 가족을 데리고 변산해수욕장을 찾았다. 생각해보면, 그 바다가 아버지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닌 듯싶다. 흑백으로 기억되는 지난 시절의 사진 어디에서도 이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가족의 휴양지 사진 그 어느 곳이건 존재한 듯하나, 그 어느 사진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형상의 기록인 사진을 보고 혼백의 유무를 논한다면, 시간을 기록한 가족사진의 역사에서 모든 아버지는 무령(無靈)의 존재이기도 하다.

바다를 찾은 것이 어린 시절이다. 그 시절 아이의 걸음으로 찾은 바다에서 다시 만난 아비는 생존하는 아버지다. 곰소항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늙은 어부를 만나고 해안선을 따라 새벽바다에서 돌아오는 가난한 어부 부부와 소금쟁이 염부를 마주한다. 고기잡이 어부는 바다의 아비이고, 소금밭에서 만난 아비는 햇살이 그을린 강건한 아비다. 들녘의 흙투성이 농부가 하늘만 쳐다봐도 글피쯤의 날씨를 귀신같이 맞추는 것처럼, 그 바닷가에서 생존하는 아비들 역시 파도소리만으로도 바다를 짐작하고, 바람의 소리만으로도 하늘의 이치를 터득한 듯했다.

진서마을 곰소염전에서 만난 박정길씨는 대를 이어 소금 농사를 지어온 소금아비다.

진서마을 곰소염전에서 만난 박정길씨는 대를 이어 소금 농사를 지어온 소금아비다.

새벽 바다와 어부의 약조
도시에 사는 아버지들이 알지 못하는 이치를 그 바닷가에 사는 고기잡이 아비와 소금쟁이 아비는 다 알고 있는 듯하다. 아비들은 그 생존의 터에서 자연스레 바람처럼 숨을 쉬기도 했고, 죽음의 바다에서 거뜬하게 살아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는 듯하다. 가족의 역사에서 무령으로 존재하는 아버지들은 그렇게 생존해 왔다.

변산해변을 지나 채석강을 지나니 궁항이다. 포구를 지키는 것은 작은 등대의 불빛이다. 상록해수욕장이 있는 두포마을의 앞바다에서 맨 먼저 새벽을 맞이하는 이는 다소 몸이 불편해 보이는 고기잡이 늙은 아비 임씨 부부다. 

부부가 바다에 나가는 시간은 언제나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이다. 바닷가에 사는 것과 새벽을 주신 것이 장애를 안고 살아온 임씨의 유일한 축복이었고 생존의 길이었다. 철이 들고 생계를 짊어질 나이가 되어 임씨는 이 바닷가에서 순박한 처녀를 만나 언약을 했다. 그 약조 이후 바다의 아비는 바람이 자는 새벽이면 바다에 작은 배를 띄웠다. 바다에서 임씨는 큰 배가 다니지 않는 산그늘 아래의 앞바다를 찾아 그물을 던졌다. 몸이 불편한 그에게 바다는 생존의 수단이자 삶의 탈출구이기도 했다. 그가 바다로 나아갈 때면 순박한 아내 역시 배에 올라 평온하고 잔잔한 물길을 기도했다. 느닷없이 태풍이 불고 높은 파도가 치는 때면 부부는 솔섬 곁에 작은 배를 붙이고 그저 엎드려 있었다. “바람이 무섭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지. 바다에 기대어 사는 게, 모질어도 그저 바다만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으니. 바다만이 나를 받아준 셈이니, 바다를 믿고 살아왔제.”

변산해변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퇴적암 지층인 채석강.

변산해변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퇴적암 지층인 채석강.

새벽 샛별이 멀어지고 햇귀가 솔섬의 그늘에 이를 무렵, 부부는 그물을 거두어 하루 거리를 챙겨 포구로 귀항한다.

서쪽 바다의 볕이 영그는 곰소염전
전북학생해양수련원 앞의 솔섬을 바라보고 30번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곰소만과 줄포만이다. 부안 청자박물관을 지나면 곰소항과 곰소염전이 나타난다. 곰소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부안 지역을 군항으로 사용하려고 제방을 축조하면서 육지가 된 지역이다. 곰소에 염전이 만들어진 것도 그때였다. 염전을 따라 길게 늘어선 낡고 오래된 목조 창고 건물들이 보인다. 어언 70년이 넘었다. 곰소염전은 한때 쇠락했으나, 몇 해 전부터 천일염이 각광을 받으면서 그 규모가 차츰 늘어나는 추세다. 반가운 일이다.

염부들이 하얗게 꽃이 피어난 소금을 거두는 것은 햇귀가 차오르기 전이다. 그 소금밭에서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염부들은 소금아비다. 소금아비들은 응달의 삶에서 양성한 해의 기운을 좇아 삶을 기약한 이들이다. 염부들이 일을 하는 때는 봄부터 가을까지로 볕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때로, 여름에 나는 소금을 가장 좋은 소금으로 친다.

소금물을 미는 고무래로 소금을 모으는 소금아비의 실루엣이 염전에 반영된 하늘과 구름, 산그림자 위로 미끄러진다. 소금밭을 오가며 소금을 긁어모으고 미끄러지듯 걷는 늙은 염부의 몸놀림은 재고 날렵하다. 몇 해 전부터 염전일을 시작한 젊은 염부의 씩씩하지만 시원한 약진의 보폭과는 사뭇 다른 보행이다. 몸을 놀리는 늙은 염부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물 위를 걷는 소금쟁이의 유영을 보는 듯하다. 수면을 지쳐 나아가는 아비의 보행은 긴 다리를 쭈욱 펼쳐 미끄러지며 나아가는데, 빠르고 유연하다. 늙은 염부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런 몸놀림으로 소금꽃을 거둔다. 경지와 연륜이 밴 동작은 부드러우며 고요하다. 경건하고도 신성한 의식과 같다.

천일염(天日鹽)은 하늘의 기운과 태양, 신성한 노동이 빚어낸 순성의 결정체이다. 염부의 신성한 땀방울이 맺혀 소금 알갱이 하나하나의 결정체로 빚어지는 셈이다.

궁항의 저편에 있는 솔섬은 태풍이 불 때 어부들의 피난처가 된다.

궁항의 저편에 있는 솔섬은 태풍이 불 때 어부들의 피난처가 된다.

“소금을 온다고들 허잖어. 바람이 지나고 햇볕이 환하게 웃는 날이면 소금은 반가운 손님처럼 찾아오니까. 좋은 소금은 햇볕이 강한 여름철에 나는 것을 제일로 치지. 인제 제철이 돼가는 것이여.”

진서마을 곰소염전에서 만난 박정길씨는 대를 이어 소금 농사를 지어온 소금아비다. 꽃을 피워낸 소금 알갱이를 바라보는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다.

“염전일이 모다 사람의 손으로 허는 것이라 고단하지만, 부지런히 정성을 다하면 좋은 소금을 얻는 것은 농사일이랑 똑같어. 저 창고가 우리 윗대에서 1945년에 소나무를 베어서 만든 것이지라. 아직도 내 맹크롬 튼튼하고 좋제.”

소금밭에서 40년을 살아온 소금아비 박씨는 이제 차오르는 햇귀만 보아도 소금의 결정과 맛을 미루어 짐작한다. 바람 소리와 햇살만으로도 소금이 영글고 꽃이 피어나는 것을 터득한 셈이다. 자연 안에서 온전히 몸을 던져 살아온 늙은 염부의 거친 숨결에서 봄꽃 바람의 향기와 뜨거운 태양의 기운이 느껴진다. 서해 그 바닷가에는 아직도 늙은 아비들이 바다와 호흡하며 생존하고 있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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