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의 기운 샘솟는 ‘한반도의 자궁’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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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과 서천, 장항, 변산 등의 새만금 지역은 한반도의 자궁 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즉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곳이라고 예견되어 왔다.

한반도 호랑이 지형설에 근거하면, 서해 군산의 새만금 일대는 바로 호랑이의 자궁에 해당한다. 또 한반도의 역사 이래 가장 대규모 간척사업인 새만금의 경우, 고군산군도와 군산 및 변산 일대 바다가 뭍으로 변한다는 예견적 풍수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관문이었던 서해 군산에 신생의 기운이 넘치고 있다.

군산 오성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의 아름다운 일몰.

군산 오성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의 아름다운 일몰.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호랑이의 자궁
본래 한반도의 산하는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강성하다. 옛 고구려, 발해의 역사와 동아시아의 입지적 측면으로 본다면, 우리 땅의 지세는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한 마리 호랑이의 모습 그대로다.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풀어낸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만주 땅을 할퀴는 형상이며, 백두산은 호랑이 코에,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천문학 교수였던 격암 남사고는 우리 땅 삼천리 강산을 두루 유람하여 한반도의 지세를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 파악했다.

하지만 외세의 힘을 빌린 신라 삼국통일의 반자주적 역사와 고려 항쟁의 수난사, 조선조를 관통하는 사대적 외교, 일제강점기의 식민사관을 거치며 한반도는 나약한 토끼 형상으로 왜곡되고 만다. 특히 일본인 지리학자 고토 분지가 1903년 한반도의 지질 구조도에서 한반도의 형상을 토끼 모양이라고 왜곡하면서, 토끼형상설은 민간에 확산되며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역사성을 폄하하기에 이른다.

채만식이 <탁류>로 그린 군산내항의 모습.

채만식이 <탁류>로 그린 군산내항의 모습.

일제 침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은 서해 군산으로 향한다. 그 이유는 군산이 오래 전부터 지형의 형세와 입지적 이점에 따라 호랑이의 자궁에 해당되는 ‘신생’의 지기를 지닌 땅으로 주목받던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군산과 서천, 장항, 변산 등의 새만금 지역은 한반도의 자궁 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즉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곳이라고 예견되어 왔다. 새만금의 시대를 맞아 다시 신생의 기운이 샘솟는 군산을 찾아간다.

동군산 나들목을 지나자마자 민족의 정기가 서린 오성산을 오른다. 군산 오성산은 삼국시대 당나라 소정방의 백제 침공에 대항하였던 백제 오성인의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성스러운 산이다. 오성산은 다섯 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으로, 연봉과 줄기가 금강에 바짝 몸을 대고 있는 명산이다. 특히 오성산이 위치한 성산면(聖山面)은 조선조부터 호남의 4대 혈자리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군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군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성산이란 이름 역시 바로 ‘오성인을 모신 산’에서 따온 이름으로, 오성인은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할 때 목숨을 걸고 항거했던 다섯 성인을 말한다. 당시 오성산 아래 병사를 주둔시켰던 소정방은 백제 공략을 위해 나아가던 중 자욱한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다. 이때 소정방이 노인들과 마주치게 되어 사비성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너희들이 우리나라를 치러 왔는데 어찌 길을 가르쳐 줄 것이냐” 하고 항거하였고, 격분한 소정방이 그들의 목을 베었다. 하지만 소정방은 후일 물러갈 때 이들의 충절을 귀하게 여겨 오성산 위에 장사 지냈다고 전해진다. 산정에 오르니 오성인의 다섯 무덤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아래로 금강의 하구와 서해가 만나는 금강하구둑이 내려다 보인다. 금강은 찬란한 백제문명의 젖줄이 되어 비옥한 황금의 들녘을 굽이쳐 흐르다 이곳 금강하구에 이르러 비로소 황해로 나아간다. 비단 물줄기 금강이 서해와 만나 교접하는 곳이 바로 이곳 금강의 하구, 즉 지금의 새만금이다. 서해로 열려 있는 금강하구의 형상이 자궁의 형상이라는 것이 이해가 된다. 해질 무렵, 금강의 물줄기가 낙조에 물든 금빛바다 황해로 나아가는 형상이다.

군산철새전망대에서 바라본 들녘과 생태공원.

군산철새전망대에서 바라본 들녘과 생태공원.

삼국시대부터 호남의 조세창으로 불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군산지역은 호남의 곡창을 살찌우는 금강과 서해의 합류적 위치로 인해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호남의 조세창으로 발전해 왔다. 현재의 군산역이 자리한 내흥동 일대와 군산시청과 지역기업인 페이퍼코리아가 위치한 조촌동 일대에서는 다수의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이 일대가 고대에서부터 비옥한 땅과 물길이 모여드는 풍요의 땅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삶터로서의 기능이 우수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때문에 삼국을 거쳐 고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군산항에는 늘 산물이 모여들었고,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만경강까지 작은 배들이 강줄기를 따라 오르며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군산은 충청과 전라, 호남의 곡창에서 생산되던 미곡 등을 일본 본토로 실어 나르던 일제 수탈의 관문항이자 근거지였다. 아직도 군산 사람들이 ‘째보선창’이라 부르던 군산내항의 앞바다에는 당시 일본인이 선박의 접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놓았던 뜬다리 부두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앞으로 고려 최무선이 왜구를 무찔렀던 진포대첩(진포는 군산의 옛 지명)의 이름을 딴 진포해양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소정방에 대항해 목숨을 잃은 오성인의 무덤.

소정방에 대항해 목숨을 잃은 오성인의 무덤.

미래로 향하는 생명의 기운 잉태
하지만 새만금사업으로 인해 군산은 이제 지형이 바뀌었다. 서울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땅이 새로 생겨나게 되어,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국토가 확장되어진 것이다. 이는 과거 우리 민족의 대표적 풍수학자들이 미래예측적 측면에서 제시한 한반도 지각변동설에 의한 예견적 풍수론과 일치한다. 현재 새만금사업이 마무리 중인 군산과 부안 일대의 지형이 바뀐다는 지각변동에 의한 서해안 융기설은 예부터 우리나라의 여러 선지자에 의해 거론되어 오던 학설이다.

조선시대 전라감사를 지낸 이서구(1754~1825)는 서해안 지각변동에 따른 군산 부흥설을, 19세기 말 강증산(1871~1909)과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은 ‘남통만리’(南通萬里)와 ‘군창만리’(群倉萬里)라는 말로 ‘서해 개척으로 군산 앞쪽으로 창고가 만 리나 생겨난다’는 학설 등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군산의 역사를 연구하는 한 향토사학자는 “군산이 한반도의 자궁이라는 선견지명이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증거”라며 “군산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기운의 터로, 동북아 시대의 거점으로 새 시대를 맞이해 금강의 물줄기에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군산은 ‘본래 열려 있는 땅’으로, 서해의 항구 대부분이 섬으로 둘러쳐져 막혀 있는 것과 다르게 군산항은 바다 쪽으로 열린 형태를 지닌 자궁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적 개방성의 입지 특성이 과거 역사에 반영되었으며, 이제 일제강점기의 수난과 굴곡을 이겨내고, 다시 미래로 진출하는 생명의 기운을 잉태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새만금방조제.

새만금방조제.

이미 군산은 새만금 시대를 준비하며 오래된 도시 이미지를 일신하고 새로운 미래도시의 이미지로 변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잃어버렸던 과거 100년의 시간을 새롭게 조명하여 대표적인 근대문화도시로 거듭나고 있으며, 적산가옥이 늘어선 원도심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몰리고 진포해전의 자리였던 군산내항 인근에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진포해양공원 등이 들어서 역사문화도시의 일면을 갖추어가고 있다. 또 매년 가창오리가 군무를 펼치는 철새전망대 인근의 금강하구에 생태수변공간을 조성하며 생태해양도시로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새만금이 열리는 서해 군산의 변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한반도 호랑이의 지세가 태동하는 지금, 동북아 허브의 명당 군산에 다시 신생의 기운이 가득하다.

<글·사진 이강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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