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골목은 영화거리를 중심으로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한복골목, 부평시장, 깡통시장 등이 서로 경계를 이루며 모두 한 길타래로 연결된다.
부산은 우리 땅에서 특별시 서울과 비견되는 광역의 큰 도시다. 부산은 서울과 비슷한 대도시지만 도시에서 느껴지는 향취와 질감은 오히려 특별시보다 더 특별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도시의 질감은 갑갑함이 없으며 유쾌하고 자유롭다. 특히 작은 골목이 실핏줄처럼 도드라져 늘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 바로 부산의 매력이다. 남포동골목을 중심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지닌 작은 시장들을 둘러본다.

자연과 사람, 삶이 한데 어우러진 부산항.
침대열차를 타고 떠나는 부산여행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부산행 침대열차에 오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을 꼬박 채우고 달리는 이 열차는 2008년까지 부산·경남권의 금강산 관광객을 강릉까지 실어 나르던 전용 장거리열차다. 대략 4박 5일의 일정으로 진행됐던 금강산 관광을 위해 객실을 갖췄다. 지난해 여수엑스포 전용열차로 활용되다가 올 봄부터 부산·울산·경남의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부울경관광테마열차(BUGs-Train)라는 이름으로 수도권 및 전라지역의 승객 편의를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고속열차가 쌩하고 지나간 철로 위로 달리는 낡은 열차는 다소 느린 듯하나, 갈피를 잃은 방랑여객에게는 안성맞춤인 정처이다. 무궁화호 객차를 개조한 열차에는 약 100여개의 침대 객실이 있는데, 한 평 남짓쯤의 객실은 온전히 격리된 혼자만의 공간이다. 바쁜 일상의 속도에서 잠깐 격리된 듯한 객실은 탈시공적이며, 다분히 이기적인 공간에 가깝다. 오래 전 접어두었던 책을 한 권 들고 누우니, 객실 여닫이문 앞으로 오가는 이들의 하반신만이 급히 지나친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무심의 타인이다. 눈높이가 다르고 눈 마주침이 없으므로 소통이나 교류는 없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보니 자주 올려다 보지 못했던 하늘이 가까워져, 마치 중력에서 놓여난 듯이 자유롭다. 달리는 열차의 차창으로 하늘과 구름이 스쳐 지난다.
사람에 가까운 골목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에 깡통시장이라 불리던 부평시장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비빔당면 전문 분식점 호평분식을 운영하는 권옥례씨 부부.
남쪽 끝 부산은 지형적으로 바다를 앞에 두고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풍광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부산역에 내리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산 아래의 도시 풍경과 산 위 마을, 그리고 산과 도시를 나누는 길과 골목들이다. 산쪽으로 길이 올라서 있는 것 역시 부산의 길맛이다. 산중턱에 올라앉은 길과 주택. 경사가 가파른 치받이길을 오르는 자동차들도 생경하게 느껴지지만, 사람을 채우고 오르내리는 순환버스 풍경은 옛시절의 느낌으로 익숙하다. 바다의 바람을 피해 산 위에 올라 터전을 이루고자 했던 기운이 이 땅의 길과 터를 만든 셈이다. 또 자연과 싸우지 아니하고 그대로 순응하여 자리잡은 모양새이니 언제보더라도 서울의 도심처럼 눈에 맵지 아니하다. 특히 도시 구석구석 작은 골목이 사라지지 않고 도드라져 활기가 넘치는 맛이 점차 줄어드는 서울의 골목보다 살맛이 더 한다. 특히 원도심 중심부에 위치한 자갈치시장을 중심으로 큰 도로를 경계로 남포동과 또 골목으로 연결된 작은 골목길들은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다. 서울 도심 속 골목들에 발길이 한가한 것과 다르게 남포동골목에는 삶과 문화가 온전히 공존한다. 사람에 정겹고, 생활 가까이에 터를 둔 것이 부산의 골목들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자갈치시장 역시 꽉 막힌 도심 속에 자리한 서울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과 사뭇 다르다. 바다 앞에 펼져진 선창을 삶의 터로 꾸린 자갈치시장은 여전히 생기가 넘친다. 바로 앞에 거대한 바다를 두고 자연과 사람, 삶이 한데 어우러진 까닭이다. 자갈치 아지매의 쉰 목청은 그 바다의 흔적이다. 칼처럼 부는 겨울의 바람과 새벽 짙은 해무의 아득함, 쨍쨍한 물빛과 생생한 활력이 자갈치 아지매들의 쩌렁쩌렁한 목청을 만들어낸 셈이다. 부산의 골목길은 다분히 인간적이며 삶에 가깝다. 그 작은 골목에는 아직도 앞바다의 훈풍이 돌아나가고, 경상도 아지매들의 깔깔한 목소리가 채워진다. 자갈치시장 건너편에 위치한 남포동 골목 역시 부산의 색이 도드라진 명물거리다. 흔히 부르는 남포동 지역은 남포동, 중앙동, 광복동 일대를 모두 포함한다. 남포동은 일제 강점기 때 초량왜관이 일본전관거류지로 바뀌게 되자 일본인들이 용두산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 남항 일대를 항만화하면서 부산의 원도심으로 등장한다. 자갈이 많아 ‘자갈치’로 불려 왔으며 옛날 남빈해수욕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곳으로, 일제시대 때 남빈정이라 부르다가 해방 후 남포동으로 바뀌었다.

부산의 영화거리에서는 외국인 관광객과 언론인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포동은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온 이들이 주저앉은 터였다. 부산 남항만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문물과 이방인들이 도시를 드나들고 자리를 꾸렸다. 때문에 국내 최대의 수산물 집산지인 자갈치시장 일대에 오래된 재래시장들이 지금까지 제각기 특색있게 남아 있다. 남포동은 주말이면 내국인과 외국인, 부산사람과 타지사람의 비율이 엇비슷하다. 남포동의 초입에는 대영시네마와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마주 보고 서 있는 ‘BIFF부산국제영화제’ 광장이 있다. BIFF광장에는 국내외 영화인의 핸드프린팅이 박제돼 있다. 남포동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거리 구석구석에 숨겨진 영화인의 손도장을 찾아다닌다.
한판의 신명으로 어우러지는 장터골목
남포동골목은 영화거리를 중심으로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한복골목, 부평시장, 깡통시장 등이 서로 경계를 이루며 모두 한 길타래로 연결된다. 또 각각의 시장은 재래시장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으로 맺어지고 한데 어우러진다. 골목에 줄지어선 노점상들은 다소 즉흥적 구성에 가깝지만 한판의 마당놀이처럼 어우러짐이 좋다. 마치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민요인 ‘쾌지나칭칭나네’의 가락처럼 거침없이 나아가는 당당한 기운과 율조가 골목을 가득 채우며 떠들썩한 신명을 낸다. 마치 사물놀이패가 제각기 개별적 장단과 어우러짐으로 자유롭게 노니는 것과 같다.

올 봄부터 부산·울산·경남의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이곳을 총칭하는 부울경관광테마열차(BUGs-Train)라는 이름의 전용열차가 수도권 및 전라지역의 승객 편의를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 깡통시장이라 불리던 부평시장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비빔당면 전문 분식점을 운영하는 권옥례씨 부부(호평분식) 역시 생업의 신명으로 바쁘다. 남편이 삶은 당면을 끓여내자 권씨가 익숙하게 비빔장과 고명을 올려낸다. 비빔당면은 부산의 향토음식 중 하나로 깡통시장에서 상인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여기가 본래 깡통시장으로 불리던 장이라애. 6·25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로 그야말로 성시를 이루었다코 합니더. 미군 원조물자로 들어온 군용품이랑 외제품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하지애. 그때 시장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었다 캅니다. 깡통에 담겨 나온 제품들이 많아 ‘깡통시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지애. 입에 풀칠하라고 장에 나오는 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아닙니까.”
부평시장에서 길을 따라 걸으면 국제시장과 헌책방으로 유명한 보수동 책방골목이 나타난다. 이 골목 역시 피난온 이들이 생계를 위해 호구지책으로 하나둘 장을 꾸린 셈이다. 시장 안에 또 다른 시장이 열리고 서로 기대어 지금까지 이어져온 셈이다. 남포동 일대의 재래시장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역사,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