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풍경, 순천만 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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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부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6개월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꽃처럼 해가 떠오르는 갯마을에서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갯길을 따라 걸으면 바다의 내음과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가슴에 와닿는다. 순천만 남도갯길을 따라 해안선 길을 걷고 순천만생태공원도 둘러보고, 세계의 아름다운 정원들이 꾸며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도 돌아볼 셈이다. 차오르는 땅의 기운을 느끼며 걷기에 좋은 여행길이다.

순천만 갯벌에서 새꼬막 채묘시설 작업을 하기 위해 갯벌로 나가는 마을 주민.

순천만 갯벌에서 새꼬막 채묘시설 작업을 하기 위해 갯벌로 나가는 마을 주민.

남도삼백리 길의 시작점, 순천만 갯길을 따라
본래 순천만 갈대길은 남도삼백리길 중 첫 코스로 순천 해룡와온에서부터 별량 화포마을까지를 일컫는 길로 총 길이 16㎞ 구간이다. 하지만 이번 여정은 이 길을 거꾸로 돌아보는 코스로 잡는다. 지난 4월부터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둘러보는 것이 순천까지의 발걸음에 안성맞춤이고, 또 본래 해가 뜨는 자리인 화포마을에서 시작하여 해가 지는 와온마을로 길을 넘는 것이 순리에 맞기 때문이다. 화포마을을 기점으로 광대한 갯벌을 따라 이어진 갯길을 걷다가 순천만생태공원 인근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에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둘러보고 와온까지의 여정을 꾸린다. 심야 막차를 타고 순천으로 길을 달려 아직 어스름녘의 새벽에 순천터미널에서 내려선다.

별량면 화포는 순천만의 서쪽 끝머리에 터를 이룬 40여호의 작은 마을로, 물이 빠지면 40㎞의 해안선을 따라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다. 택시를 타고 화포로 달린다. 여명의 포구, 아직 햇귀가 보이지 않는 이른 시각. 밤새 해무에 젖어 있던 새벽 바다에 작은 불빛들이 샛별처럼 반짝인다. 홑바지 차림의 할아버지가 담배 한 대를 빼어 물고 선창으로 바람처럼 내려선다. “신새북부터 어서 왔능가. 찜만 기둘리면 저 짝으로 해가 올라올팅게, 좀 기둘리야 헐 것인디. 긍게 왜 화폰가 허냐문, 옛날부텀 저 뒤편 산 언덕배기에 진달래랑, 산꽃들이 무자게 폈응께. 그리서 화포여. 지대로는 찾아온 셈이여.” 펄럭펄럭 깃발이 날리는 포구의 갯바람은 차다. 할아버지 뒤를 따라 포구 쪽으로 내려선다.

주민들과 어울려 정성스럽게 채묘작업을 하고 있는 박연자씨. 순천만과 여자만의 새꼬막 양식은 갯마을의 주요 소득원이다.

주민들과 어울려 정성스럽게 채묘작업을 하고 있는 박연자씨. 순천만과 여자만의 새꼬막 양식은 갯마을의 주요 소득원이다.

화포를 맨 먼저 가봐야 하는 이유는 역시 아침볕이다. 마치 활찍 핀 꽃처럼 해가 뜨는데, 건너편 해룡면 앵무산에서 떠오른 해가 순천만 일대를 물들이는 모습이 마치 동백꽃처럼 활짝 깨어난다. 새벽 햇귀가 차오르는 찰나, 마을 사람들이 꽃등이라 불리는 선착장에서 해를 등지고 귀항하는 늙은 어부의 모습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바다는 아직 어둡고 짙다. 그 어둠 끝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흔들리며 다가온다. 점점이 다가오는 작은 나룻배 한 척. 부두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는 할아비가 사공에게 대고 큰소리로 뭐라 하는 듯하나, 바람이 쓸고 지나자 다시 정적뿐이다. 노를 저으며 흐르는 작은 배 한 척은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흔들린다. 솜씨 좋은 화가가 그림 한 폭을 그려 펼쳐놓은 듯하다. 해 뜨는 시각에 맞추어 배를 저어주는 수고를 일부러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든다. 삶 그대로의 모습은 순간순간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낸다. 밤차를 타고 달려온 탓에 거북하던 속의 일렁임이 한순간 잦아드는 순간이다. 바다를 좀 더 바라보다 마을 들머리로 올라선다. 벚꽃이 흐드러지고 붉은 동백과 산수유 등이 피어난 포구마을의 아침 풍경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소망탑을 지나 해안선을 따르면 우명마을과 장산마을로 이어진다. 초가 한 채가 남아 있는 우명마을에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봉화산 중턱이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순천만과 어울리는 풍경이다. 퇴락한 폐염전의 흔적과 새우양식장의 터가 있던 장산마을에는 언제부턴가 갯벌체험장이 들어서 있다. 아이들의 작은 발자국이 남아 있는 갯가를 서성이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는 순천시내의 동천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해가 뜨는 자리로 알려진 화포마을을 기점으로 광대한 갯벌이 이어진다.

해가 뜨는 자리로 알려진 화포마을을 기점으로 광대한 갯벌이 이어진다.

4월 20일부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6개월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지난 2006년 람사르 협약에 가입된 순천만의 생태를 온전히 보전하고, 자연자원을 그대로 재활용한 ‘친환경 박람회’를 열고 있다. 때문에 박람회장은 순천만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생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동천 둔치를 중심으로 생태환경을 보전하면서 자원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취지다. 박람회는 다분히 친환경적이다. 버려진 컨테이너와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나온 바위·수목·갈대 등의 자연자원을 그대로 활용했다. 그 중 꿈의 다리(도보전용 다리)는 폐컨테이너를 버리지 않고 서로 연결해 다리로 꾸몄다는 점이 돋보인다. 대표적인 상징물로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서 조형미가 넘치는 다리로 재탄생시켰다. 박람회장에 들어서면 세계 전통정원과 영국 등 11개 나라 정원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주제관인 국제습지센터에서는 순천만의 모든 것을 축소해 보여주는데, 70% 이상이 살아 있는 생물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의미를 깨닫는 아주 특별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박람회장을 나와 동천과 이사천이 합류하는 대대포구로 길을 잡는다. 순천만생태공원의 대대들판 갈대밭길을 걸어 용산전망대에 오르니 서쪽 하늘이 붉어진다.

용산전망대에서 와온해변까지
이튿날 일정은 용산전망대 아랫녘에 자리한 해룡면 구동마을을 지나 노월, 와룡해변까지 갯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해변 쪽 제방길은 자갈돌길이어서 잘그락거리는 발걸음이 파도의 소리와 제법 박자를 맞춘다. 멀리 갯벌 한가운데, 저 멀리 솔섬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 철새들의 쉼터이자 갯어미들의 삶의 터전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광활한 갯벌과 갈대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갯벌과 꼬막을 캐는 어미들의 일상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사진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마을 주민들이 새꼬막 양식의 1년을 결정짓는 채묘작업 준비로 분주하다.

마을 주민들이 새꼬막 양식의 1년을 결정짓는 채묘작업 준비로 분주하다.

노월마을을 지나자 여정의 종착점인 와온마을이 멀지 않다. 와온은 순천과 여수의 경계에 있는 끝마을로 여자만과의 경계이다. 해안길을 따라 걸으니 부지런히 한 해 살림을 꾸리는 어미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한 해 농사 준비하는 것이랑 매한가지여라. 여기가 꼬막이 많이 나지라. 그래서 일종의 모종을 준비하는 것이여라. 이것을 지금부터 바다에 심궈야 맛난 꼬막이 나는 것이여라. 새꼬막일랑 털꼬막일랑 그런 것들이 여서 많이 나니께.” 여수 여자만과 순천만 해역의 경계에 사는 마을 주민들이 봄부터 새꼬막 채묘시설 작업을 하는 것이다. 바다에 떠다니는 꼬막씨(유생)를 그물에 붙을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작업이 채묘시설 작업이다. 

이렇게 채묘된 꼬막유생은 가을이 되면 콩알 크기만큼 자라고, 이듬해 봄이면 종폐를 그물에서 터는 작업을 한다. 때문에 봄이면 순천만과 여자만 인근마을에서 대대적인 채묘작업이 이루어진다. 주민들과 어울려 바쁜 일손을 놀리는 박연자씨가 잠시 숨을 돌리며 웃는다. “꼬막 양식은 하늘이 도와야만 성공할 수가 있응께. 정성을 다혀야 혀. 여름에 태풍을 잘 견디게 단단히 채묘를 허야 허고. 그렇게 2년쯤이 지나야 그 다음해 봄까지 잘 자라니께.” 벌교 꼬막의 70%를 생산해내고 있는 순천만과 여자만의 새꼬막 양식은 갯마을의 주요 소득원이다. 때에 맞춰 꼬막 채묘작업을 하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만다. 갯마을의 봄채비가 농촌마을의 부지런한 봄맞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바다와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어미들의 부지런한 봄채비. 삶 그대로의 모습이 살맛나는 풍경을 빚어낸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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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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