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의 쓰레기통을 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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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고소득층도 필요한 물품 찾아 뒤져… 낭비 줄이고 환경보호 ‘긍정적’

쓰레기통에서 쓸 만한 물건을 고르는 호주의 쓰레기 스케빈저들.

쓰레기통에서 쓸 만한 물건을 고르는 호주의 쓰레기 스케빈저들.

호주의 부유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쓸 만한 물건을 집에 가져와 다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웃집 쓰레기통에 머물지 않고 아예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문적으로 슈퍼마켓 쓰레기통까지 헤집고 있어 눈길을 끈다.

최근 호주 연구소가 언론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과 올 2월 사이 전국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 대부분이 높은 수입을 보장받는 전문직인 디자이너, 컴퓨터 프로그래머, 대기업 은퇴자, 심지어 현직 공무원들이다.

빅토리아·ACT·퀸즐랜드·NSW 주에 살며 전문직을 갖고 있는 쓰레기 스케빈저(호주에선 이들을 ‘스킵디퍼’라고 부른다) 20명을 인터뷰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이유는 필요한 물건을 얻는 것 이외에도 과소비에 대한 항의 표시와 환경 오염의 대상이 되는 쓰레기량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이들이 쓰레기통에서 얻는 물건은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아직 먹을 만한 채소나 과일, 유통기한이 남아 있는 맥주, 의류와 가전제품 등 다양하다. 지난 5년 동안 정기적으로 집 주변 슈퍼마켓 쓰레기통을 뒤져 필요한 물건을 얻고 있는 폴 마틴(29·기업 컨설턴트)은 “직장에서 충분한 돈을 벌고 있지만 버려진 쓰레기 중에는 아직 멀쩡한 물건이 많다”며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은 결국 쓰레기량을 줄여 환경 오염을 예방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로 정보 교환하고 물품교환까지

쓰레기 스케빈저들은 각종 모임을 만들어 개인 정보를 서로 나누는가 하면 때로는 쓰레기통에서 얻은 물건들을 서로 기호에 맞게 교환까지 한다. 대학생 때 처음 쓰레기통에서 필요한 물건을 얻기 시작한 페오베 터너(23)는 대학 행정사무원으로 일하는 지금도 틈틈이 쓰레기통을 뒤진다. 그녀는 “룸메이트와 함께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집 근처 대형 슈퍼마켓 쓰레기통을 뒤져 필요한 물건을 구한다”며 “슈퍼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필요한 물건을 얻도록 도와주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터너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지 않고 오로지 버려진 쓰레기통에서 필요한 채소와 과일은 물론 각종 음식재료를 구하고 있다.

호주는 갈수록 늘어나는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간 약 1700만t의 고체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도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쓰레기 재활용’의 목소리가 호주 젊은이들 사이에 높아지고 있다. 쓰레기 스케빈저들은 “슈퍼마켓 쓰레기통의 경우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최소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건설 현장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들은 최대 80%까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말한다.

쓰레기 스케빈저들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엠마 러쉬는 “최근에는 남녀노소는 물론 경제적 위치에 상관없이 많은 호주인이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집 주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며 이들의 활동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환경 전문가들은 “쓰레기들이 먹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상한 경우도 있어 주의 깊게 상태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며 “일부 쓰레기통은 접근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된 경우도 있어 이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시드니/김경옥 통신원 kelsy031220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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