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황고운 교사 “1년에 10시간 성평등 교육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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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이후 세간의 관심은 교육에 쏠렸다. 지금까지 드러난 n번방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10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교육이 문제”라는 주장이 동시에 나왔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소속 황고운 교사. 아래는 아웃박스 로고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소속 황고운 교사. 아래는 아웃박스 로고

교육부나 일선 교육청이 제구실을 못 하자 오랜기간 성평등 교육을 연구해온 초등학교 교사들의 자치 모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는 2017년부터 성평등 교육을 고민해온 교사들의 모임이다. 2016년 1월 시작된 독서모임에서 출발했다. 경기도교육청 소속 황고운 교사(33)를 주축으로 이듬해 1월 기존 독서모임을 정식 연구회로 전환했다. 7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12명이 활동한다. 한 달에 한 번 전체 모임을 한다. 팀별로는 일주일에 2~3번씩은 자체 과제를 수행한다.

아웃박스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대상 성평등 교육안을 직접 만들어 공유한다. 교사 연수의 강사로도 나선다. 성평등 교육을 알리려 책도 냈고, 방송에도 종종 출연한다. 아웃박스는 n번방 사건 이후 ‘피해자 탓하지 말기’, ‘피해 예방보다는 가해 방지에 힘쓰기’, ‘침묵이 아니라 신고하도록 지도하기’ 등이 담긴 교육안도 만들었다. 일선 교사들에겐 소중한 참고자료가 된다. 교육안을 올려놓은 블로그의 한 달 방문자는 꾸준히 7000~8000명을 유지하고 있다.

황 교사는 쓸 만한 성교육 커리큘럼이 없어 답답해하는 일선 교사들도 자주 만난다. 그는 “세상은 성평등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학교 전반에는 성평등이 예민한 주제라고 보고 섣불리 다뤄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며 “공교육에선 누구나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아웃박스 활동을 지속하면서 변화도 생겼다. 교육 현장에서 성평등 교육 수요와 관심 모두 크게 늘었다고 했다. 그는 “시니어 선생님들의 지원은 확실히 큰 힘이 된다”며 “2년 사이 같은 학교로 세 번이나 연수를 불러주는 남자 선생님이나 교외 행사에서 저희 강의를 듣고 본인 학교로 섭외해주는 교장 선생님도 계셨다”고 말했다.

황 교사는 n번방 사건 등을 교육으로 풀어야 한다는 관점에 기반을 둔 ‘교육 만능론’도 경계했다. 황 교사는 “아이들은 진공상태에 있지 않다. 초등학교 1·2학년만 해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똑같이 갖고 있다”며 “아이들이 범하는 범죄는 사실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늘 수업하면서 느끼지만, 사회가 왜곡된 성인식과 성범죄가 별것 아니듯 치부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사회를 닮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웃박스의 올해 목표는 학교 현장에 ‘공문 내려보내기’다. 교육 현장에 성평등 교육을 해야 할 유인(공문)을 제공해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황 교사는 “학교는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내려오는 공문이 없으면 잘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쉽지 않을 거라고 보지만 ‘1년에 10시간 성평등 교육을 시행하세요’라는 내용이 공문에 담겼으면 좋겠다”며 “디지털 성범죄·성 고정관념·성차별·혐오표현·외모평가·가족다양성 등을 가르치라는 구체적 지침을 받아보는 게 저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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