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 우주공간에선 골칫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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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맥주와 같은 각종 음료를 마실 때 발생하는 기포가 생명을 위협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중력 상태의 우주공간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공간에서는 비행사가 맥주를 즐길 수 없다.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도 새지 않는 특수용기에 빨대를 꽂아 마셔야 한다. 이때 지상에서처럼 용기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기포가 생기기 때문이다. 무중력 상태에서 기포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과학이야기]기포 우주공간에선 골칫덩어리

맥주를 잔에 따르면 그 안에 녹아 있던 기체들이 기포를 형성하고 이 기포들은 액체 위로 떠올라 거품층을 만든다. 중력이 없다면 액체 안에 생긴 기포가 위로 떠오르지 않고 생긴 곳에 그대로 머문다. 때문에 기포가 합쳐져 축구공 크기만큼 커진다. 결국 맥주가 밀려 올라가 잔에서 넘치고 만다.

마찬가지 이유로 우주공간에서 주전자에 물을 끊이는 일은 위험하다. 주전자의 물이 끓어 생기는 기포는 중력이 없기 때문에 물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물을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공간에서 뜨거운 물을 얻으려면 물의 양에 비해 상당히 큰 통에 물을 담아 끓여야 한다.

무중력 상태에서 기포의 문제가 이 정도라면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보다 기포는 매우 심각한 존재다. 비행사의 생명유지시스템에서 기포가 발생하면 그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생명유지시스템을 구성하는 튜브를 떠올려보자. 그 튜브에는 액체가 지나다닌다. 이곳에 기포가 생기면 액체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앙열공급시스템에서 액체가 이동하는 관을 기포가 막는다면 어떻게 될까.

기포의 횡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주 실험에서 가장 큰 골칫덩어리이기도 하다. DNA의 전기영동실험이 대표적인 예다. 전기영동실험에서 DNA를 장치의 한쪽 끝에 놓고 그 양쪽 끝에 전기를 건다. 그러면 분석하고자 하는 DNA의 질량에 따라 이동하는 거리가 달라진다. 이를 통해 DNA의 질량을 알아낼 수 있다. 이 전기영동실험을 우주공간에서 하면 중력의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실험 결과가 더 좋다. 그런데 전기영동장치에 포함된 액체 성분에서 기포가 생기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실험 결과에 방해가 된다. 따라서 이 연구를 수행할 때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과학이야기]기포 우주공간에선 골칫덩어리

이처럼 우주공간에서 기포를 제거하는 확실한 방법은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확실한 방법을 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최근 기포의 운동을 좀더 이해하려고 한다. 실제로 기포의 운동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슈퍼컴퓨터를 동원하고 있다.

기포의 운동을 기술하려면 열원이 되는 고체나 액체 또는 기체와의 상호작용을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무척 복잡한 시스템이다. 또한 부력, 열흐름 그리고 표면장력과 같은 요소가 기포의 운동에 관여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에 실제로 기포의 운동을 시뮬레이션하는 데는 상당한 계산능력을 가진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기포 제거 확실한 방법 아직 없어

과학자는 기포의 운동을 이해함으로써 버블젯 프린터를 탄생시켰다. 버블젯 프린터는 1980년대 캐논사가 발명했다. 잉크를 뿜어내는 노즐의 지름이 수μm(1μm=10~6m)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프린터 헤드에 200개 가량의 노즐이 수μ초마다 미세한 잉크 방울을 뿜어내면서 사진과 같은 고해상도로 프린트해낸다. 그러면서도 버블젯 프린터는 레이저 프린터에 비해 가격이 훨씬 싸다.

[과학이야기]기포 우주공간에선 골칫덩어리

최근 과학자들은 버블젯 프린터에서 기포가 이용되는 방법을 응용해 마이크로시스템에서 구동되는 초소형 엔진을 개발 중이다.

상자 안에 액체를 채우고 그 바닥면에 전기적으로 작동되는 히터를 설치한다. 그리고 어느 한쪽 벽에는 피스톤이 움직이는 관을 연결한다. 이 상태에서 전류를 흘려주고 히터를 데우면 그 위로 기포가 형성된다. 그러면 내부 공간이 줄어들어 피스톤을 밖으로 밀어낼 것이다. 그런 후 히터를 식히면 피스톤은 다시 되돌아온다. 이와 같이 히터를 데웠다 식혔다를 반복하면 피스톤은 밀렸다 들어왔다를 반복한다. 이같은 왕복운동으로 초소형 엔진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시스템에서는 자동차처럼 석유와 같은 연료를 태워 작동하는 엔진이 실제로 이용될 수 없다. 때문에 버블젯 프린터처럼 기포가 초소형 엔진을 작동시키는 데 적합하다.

마이크로 시스템에서 기포는 밸브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지름이 고작 수μm인 관에 히터를 장착한다. 그리고 이 히터를 데우면 그 관에 기포가 형성돼 액체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기포 크기를 제어함으로써 액체의 흐르는 양도 조절 가능하다. 기포가 수도꼭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처럼 기포는 마이크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박미용〈동아사이언스 기자〉 pmi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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