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사람들-메탄올 중독으로 시력 잃은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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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노동 안전과 건강을 위한 날’이었다. 그로부터 고작 6일 전인 4월 22일, 경기도 평택항 부두에서 작업하던 스물세 살 이선호 씨가 일터에서 사망했다. 위험천만한 현장에는 안전관리자가 없었고, 규정에 정해져 있던 안전장치도 없었다. 심지어 사고가 일어난 이후 원청의 관리인은 바로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 사내 보고 절차를 거치며, 그를 방치했다고 한다.

보리출판사 제공

보리출판사 제공

왜 관리인은 눈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두고 내부 보고를 선택한 걸까? 놀라고 당혹스러운 마음은 짐작한다 하더라도,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게 했을지 추측하기 어려웠다. 눈앞에 꺼져가는 생명은 단지 ‘현장 사고 1건 발생, 하청노동자 부상’으로만 보고됐을까.

이 사고를 접하고 곧장 떠오른 만화가 있다. 휴대폰 공장에서 일어난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그린 만화 <문밖의 사람들>(김성희, 김수박·보리출판사)이다. ‘문밖’에 노동자들을 세워둔 채 문은 굳건히 닫혀 있다. 그들은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일의 내용과 위험성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물여덟 살 여성 노동자 진희씨는 공장에서 고작 사흘을 일하고 시력을 모두 잃었다. 메탄올 중독 때문이었다. 본래 에탄올을 사용해야 하는 공정에 메탄올을 쓰게 된 건 돈 때문이었다. 에탄올보다 저렴한 메탄올을 사용해 원재료 값을 줄였지만, 일터의 위험성은 배로 뛰었다. 메탄올의 독성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보안경, 폐를 보호하는 송기 마스크가 필요했지만, 파견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건 목장갑이 다였다.

공장 관리인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이미 공장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피해를 본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순씨는 색을 잃은 채 흑백으로 세상을 보았고, 그 외에도 호남씨와 동근씨가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이 손상됐다. 그렇지만 공장은 피해자가 나오면 곧장 폐업하고 이름을 바꿔달며 그대로 메탄올을 썼다. 그들에게 에탄올은 노동청이 요구하는 비싼 원재료이고 메탄올은 노동청이 오면 숨겨야 하는 값싼 원재료일 뿐이어서, 관리인은 에탄올이 다 떨어졌다는 진희씨에게 메탄올을 내줬다. 아무런 장비 없이 메탄올을 옮겨 담던 진희씨는 메탄올 중독으로 뇌 손상을 입어 한달여간 혼수상태에 빠졌고, 정신이 든 이후엔 세상을 볼 수 없었다.

원청은 이런 일에 대해 몰랐다고 진술했다. 그렇지만 하청업체의 단가를 후려친 건 원청업체다. 자신들이 깎아버린 단가로 어떤 것들이 포기됐는지, 누가 위험한 곳으로 내몰렸는지 그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의 보고자료에는 오로지 숫자만이 올라와 있었을 테니까.

어떤 이들은 사람을 단지 숫자나 행정 언어로 읽는 걸까. 쓰러진 노동자를 방치한 관리인이나 메탄올 피해 노동자들로 인해 자신이 더 손해를 봤다며 소리높이는 공장주처럼. 그들의 숫자 안에 꼬깃꼬깃 접혀 들어간 생명을 찾아내 다시 펼쳐내는 건,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다. 2016년 메탄올 실명 사건엔 용기를 낸 피해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김 교수’와 ‘박행’ 등이 있었다. 그리고 2021년 지금, 다시 우리 눈앞에는 평택항의 진실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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