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취하면 괴물이 되는 아빠가 싫다

‘음주 아빠’를 둔 소녀의 우울한 성장기

오자와 카오루라는 필명의 만화가 키쿠치 마리코는 특이한 취재로 이름을 알렸다. 편집자와 함께 폐허를 탐방하거나 자살로 유명한 숲을 직접 찾아나서고, 전생 치료와 악령 퇴치 같은 체험을 만화로 옮긴 <수상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가 국내에도 소개됐다. 제법 재미있게 읽었기에 그가 본명을 걸고 자신의 우울한 성장기를 되짚어 내놓은 <취하면 괴물이 되는 아빠가 싫다>는 조금 놀라운 전개였다.

‘취하면 괴물이 되는 아빠가 싫다’ (키쿠치 마리코 지음)의 표지 / 미우 제공

이 만화는 작가의 유년기부터 아버지가 병환으로 별세하기까지의 시기를 담았다. 그동안 그가 받은 고통은 만화의 제목에서부터 이미 예상 가능하다. 키쿠치 마리코의 아버지는 습관성 음주로 항상 취해 있었고, 그것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신흥종교에 빠졌다가 결국 본인 스스로 세상과의 이별을 택했다. 당시 겨우 중학생이었던 작가는 아직도 자신이 과거를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있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은 이어졌다. 아니 갈수록 아버지의 상태는 심해졌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는 일은 다반사고, 술에 취해 잠이 들어 난방기구에 데이거나 욕조에서 잠이 들어 물에 잠기는 경우도 있었다. 단 한 번이지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취한 아버지와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통은 단절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한달간, 그리고 아버지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에서야 겨우 오랜 대화가 가능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작가의 사연은 결코 낯선 일들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가정폭력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려 오고, 그것이 실제 벌어지는 일의 극히 일부라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가정폭력의 70% 정도는 음주 범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을 남에게 알리기 부끄럽게 생각하는 분위기와 폭력의 행사자가 경제활동을 전담한다는 등의 이유로 많은 사건은 신고와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키쿠치 마리코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그들의 성장기는 아버지의 경제활동에 많은 것을 기대왔고, 아버지는 아침이면 멀쩡히 자신의 일터로 나갔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다른 뉴스들을 보며 자신의 처지는 평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성장한 그는 몇차례 놀라게 된다. 또래 친구들이 젊은 어머니가 돼 자식을 키우고 싶어하며, 것에 다른 가족의 모습이 자신의 그것과 너무나 달라 충격을 받고, 성장 이후에도 상황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던 것이 학습성 무기력 때문이라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아버지가 집 밖에서는 굉장히 인기도 많고 평판이 좋다는 점을 알고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 자문한다.

<취하면 괴물이 되는 아빠가 싫다>를 읽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그의 행동을 고발하려는 생각보다 오히려 현실을 회피하고 방관한 자신에 대해 후회를 더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자전적 에세이를 내놓은 이유도 그래서 일 것이다.

만화로 본 세상

이 만화는 ‘술을 즐긴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우선 보았으면 한다. 자신의 음주로 주변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코로나19 이후 가족구성원이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가정폭력은 줄어들었다고 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대화가 늘어나 서로를 이해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한줄기 의미 있는 소식이 아닐까.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