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붉고 푸른 눈-위험을 본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

“이 세계는 모든 사람에게 마법이 있다.”

김민희의 만화 ‘붉고 푸른 눈’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에게 마법이 있지만, 모두가 똑같은 크기의 마법을 가지진 않았다. 큰 마법을 가진 사람은 마법사가 된다. 마법사들은 공직에 나서 공동체를 이롭게 하기도 하고, 개인의 영달에만 골몰하기도 한다. 마법사가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마법구’를 해체하는 것이다. 이 세계 하늘 곳곳에는 ‘마법구’가 떠 있다. 인간이 마법을 쓸 때, 흩어진 에너지 부스러기들이 떠돌다 뭉친 것이다. 인간이 마법을 많이 쓸수록 마법구도 늘어나고 커진다. 문제는 이 마법구가 터져 지진과 화재, 홍수 같은 재해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이 세계에서 ‘자연재해’는 명백히 ‘인적재해’다.

붉고 푸른 눈 (김민희) / 이코믹스 제공

그렇다면 모두가 힘을 합쳐 마법구를 해체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마법구가 내 곁에서 터지지 않는다면, 나는 무사하다. 에너지가 큰 마법구를 해체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적당히 피할 수 있다면 피해가며 살면 되지 않을까? ‘붉고 푸른 눈’은 그 두개의 질문, 혹은 그사이의 무수한 질문을 던지는 만화다. ‘붉고 푸른 눈’은 마법을 보는 눈을 가진 이들이다. 다시 말해 힘의 크기와 흐름 그리고 그 힘의 사용으로 만들어지는 위험을 지켜보고 있다. 강희라는 그 눈을 가졌기에 철산을 떠났다. “뭔가를 안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라서다. 백선우는 더 많은 사람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싸운다. “그것이 위험을 본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라서다.

나는 현실의 ‘붉고 푸른 눈’들을 떠올린다. 김영조는 어느 날부터 건물의 이상한 구조를 보는 눈을 갖게 됐다. 그 눈을 갖게 된 날은 2017년 12월 21일이다. 그의 딸은 그날 제천에서 가장 좋다는 헬스클럽에서 운동 중이었다. 열기와 연기가 올라오자 딸은 계단을 이용해 위쪽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불은 1층에서 시작했고 자신은 6층에 있었기 때문이다. 위로 오르는 계단 끝에는 옥상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탁 트인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면 될 것이다. 바깥에는 벌써 소방차가 와 있으니.’ 그런데 옥상은 없었다.

그 건물은 7층으로 승인받고 난 뒤, 옥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8층과 9층을 계단식으로 올렸다. 비상계단은 7층에서 끝났다. 복도를 조금 돌아간 뒤 다시 연결된 계단은 9층의 잠긴 식당으로 연결됐다. 딸은 그 앞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김영조는 ‘제천화재 참사 유가족’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만화로 본 세상

이제 김영조의 눈에는 주변의 위험이 잘 보인다. 들어갈 수 없는 건물이 많아졌다. 법적으로 ‘피난층’은 1층뿐이라 옥상의 불법 구조물은 소방점검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엔 뜻하지 않게 ‘위험을 보는 눈’을 얻은 이들이 참으로 많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4월 13일, 재난과 산재 참사 피해자들의 증언대회가 열렸다. 사건이 워낙 많아 발표자를 추려야 했다. 모두 발표하자면 몇날 며칠도 모자랐을 것이다. 이들은 애타는 마음으로 자신이 본 위험을 경고했다. “그것이 위험을 본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라서다. 우리는 그 경고에 화답할 의무가 있다. 김민희의 ‘붉고 푸른 눈’이 넌지시 드러내듯, 우리는 모두 그 ‘위험을 만드는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박희정 기록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