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움직이려는 자들의 여정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우리는 때로 사고방식 등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을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을 쓴다. 이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독일 철학자 칸트가 자신의 중요한 업적을 표현하는 데 처음 사용한 후 지금까지 흔히 쓰일 만큼 이 발상의 전환은 인류와 과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21세기에 사는 현재의 우리는 당연한 사실이라 놀라지 않겠지만, 이 변화를 직접 겪은 당시 사람들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우오토의 만화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이하 지.)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으로 그린 작품이다.

우오토의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1> 한 장면 / 문학동네

우오토의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1> 한 장면 / 문학동네

작가는 <지.>의 배경을 15세기 P왕국으로, 극중 주인공들과 대립하는 악역을 C종교라고 설정한다. 모티브가 무엇인지 알기 쉽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임을 확실히 하는 장치이다. 실제로 만화에서만큼 지동설을 주장하는 이들과 가톨릭의 관계가 나쁘진 않았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이 교회에서 높은 위치에 있기도 했고, 그의 연구는 교회가 달력을 만드는 것에 크게 기여하며 인정받았다. 지동설을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당시는 천동설이 이론적으로 더욱 준비된 시대였다.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지금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내세우는 이론만 들으면 무척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된다.

땅을 밟고 사는 사람으로서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후대의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개량해 목성과 그 주위를 도는 4개의 위성을 관측하면서 우주의 모든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연구가 담긴 갈릴레이의 책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늦은 나이에 가톨릭의 재판을 받게 되고, 결국 집에 갇혀 최후를 맞이한다. 아마도 억압받는 <지.>의 캐릭터에 가장 많이 반영된 인물일 것이다.

<지.>의 진행방식에서 신선하고도 탁월한 점은 주인공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지동설을 믿게 되거나, 믿고 있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해 그 타이틀을 가져간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천재적인 발상이 한순간 역사를 바꿔놓은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연구를 이어받으며 지금의 상식을 만들어온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도 이미 수세기 전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타르코스가 쓴 저서를 통해 지동설을 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킨 이론에도 허점이 있었는데, 요하네스 케플러가 타원 궤도의 법칙 등을 더하며 이를 보완하고, 아이작 뉴턴이 마무리를 지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결코 짧은 시간에 이룬 것도 아니다.

멀리서 보면 우리도 지금 커다란 사고방식의 전환기에 있을지 모른다. 전통적인 가족 사회가 붕괴하고, 오랜 이성애 중심의 사고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겠지만, 우리도 커다란 변화의 파도 안에 있는 것 같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만화로 본 세상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