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살리는 도시재생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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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보존에 나선 교사 김성일씨

“2020년 한 해 동안 헌책방 8곳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는 등 거리가 계속 잠식당하고 있어요.”

부산 동주여고 김성일 교사(33)는 존폐 위기를 겪고 있는 학교 인근 보수동 책방골목을 보며 학생들을 모았다. 자신은 물론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의 추억이 어린 거리가 ‘도시재생’ 취지와는 달리 점차 개발논리에 밀려 위축되는 모습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학생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단편영화를 찍고 시집도 내기로 했다. 단편영화 <책방골목에서>와 시집 <와보시집>은 코로나19 때문에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은 끝에 2020년 세모에 선을 보였다.

부산 동주여고 김성일 교사(뒷줄)와 단편영화 <책방골목에서>를 촬영한 양혜진·양지혜·김현지·박주현·공도휘 학생(왼쪽부터)

부산 동주여고 김성일 교사(뒷줄)와 단편영화 <책방골목에서>를 촬영한 양혜진·양지혜·김현지·박주현·공도휘 학생(왼쪽부터)

조금 먼저 세상에 나온 단편영화는 부산시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소셜미디어(SNS)에도 오르며 부산을 넘어 전국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외부에서 섭외한 배우는 한명이다. 출연자 모두가 아마추어인 고교생들이어서 부득이했다. 헌책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오빠를 짝사랑하는 여고생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로 보수동 책방골목만의 서정적인 풍경을 필름에 담는 데 주력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을 데리고 촬영하는 일은 재미있었는데 짧은 영상 찍기 위해 여러 장소를 돌면서 많은 컷을 찍다 보니 힘들긴 했다”며 “그런데 협조해주신 많은 곳 중에 한 카페가 코로나19 때문에 결국 폐업을 하는 모습이 정말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시집 <와보시집> 역시 동주여고 학생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더해져 보수동 책방골목에 어떤 도시재생이 필요한지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감상을 담았다. 용두산공원과 국제시장, 남포동거리, 자갈치시장이 지척인 부산의 구도심 보수동이 본래의 개성과 매력을 살리며 도시재생을 진행할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을 표현했다. 김 교사는 최대호 시인,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치어리더 박기량을 비롯해 여러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어렵게 접근하지 않고 진짜 쉽게 짧게 쓸 수 있는 그런 시들을 모아 진심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담당 교사로 학생들을 지도하긴 했지만 김 교사 자신도 프로젝트의 한 일원으로 참여했다. 학생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하고, 시집에 실린 시를 손수 필사하거나 삽화를 그린 노력을 보고선 더 많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사회 변화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한 것만 해도 뿌듯한 시도였다. 그리고 학생들이 던진 화두를 지역사회가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김 교사는 “사람들이 헌책에 대한 관심이 적어진 건 사실이고, 도시재생이라는 것도 시대 변화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동안 오랜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가치 있는 문화는 보존하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정책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많이 나오지 않는 점은 오히려 학생들의 시도를 보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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