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석·박사 모임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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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식의 대중화와 나눔 실천

연구자들이 가장 열심히 공부할 때는 언제일까. 여러 시기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학위논문을 준비할 때다. “며칠 밤을 새우며 공부했다”는 무용담은 대부분 이때 탄생한다. 문제는 이 시기에 공부한 결과가 종종 ‘그들만의 지식’이 된다는 점이다. 주로 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그렇다면 연구자들이 공부한 결과를 강연, 유튜브, 책 등을 통해 대중과 나눌 수는 없을까. 바로 이 고민을 해결한 것이 역사학계의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다.

시민강좌팀이 출간한 책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

시민강좌팀이 출간한 책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

시작은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학원생들의 모임이었다. 국정화가 저지된 후 “이왕 모였으니 바로 해산하지 말고, 뭐라도 해 보자”고 한 것이 4년을 이어오게 됐다. 네트워크는 ‘사무국’을 중심으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미디어팀’, 기획을 담당하는 ‘연대사업팀’, 교육활동을 하는 ‘시민강좌팀’으로 구성된다. 석·박사 과정의 연구자 모임이다 보니 모두 평등한 관계에서 운영된다.

목표는 ‘역사지식의 나눔’이다. 윤성준 사무국장은 “학회나 연구소가 아닌 대중도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여러 팀 중 대중과 직접 만나는 것은 주로 시민강좌팀이다. 12명 정도의 연구원이 소속돼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박사과정 수료생들이다. 전공은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다양하다. 지역 문화원 등과 연계해 독자적인 강연활동을 한다.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깃발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깃발

실제로 2017년에는 성북문화원, 중랑민중의집에서 각각 ‘잊혀진 패자의 고대사’,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2018년에는 천안 아우내재단에서 ‘라이벌을 통해본 한국통사’ 강의를 했고,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이천문화원에서 ‘이천에서 일어난 의병과 독립운동’ 강의를 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대면 강의가 어려워지자 책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를 냈다.

시민강좌팀에서 책 출간을 주도한 김세림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가 아닌 독자가 흥미로워할 만한 새로운 주제를 선정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각기 다른 시대를 공부한 9명의 연구원이 참여해 각 시기 한·중 관계를 집필했다.

출간 과정에서의 문제는 ‘쉽게 쓰기’였다. 김 연구원은 “책을 만들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라며 “학술적 글쓰기를 오래 하다 보면 쉽게 쓰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목표인 고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수차례 고쳐 썼다. 결국 10~12세기 동아시아의 복잡한 국제관계를 ‘골목대장 고려의 줄다리기’라는 식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었다. 연구 내용을 ‘그들만의 용어’가 아닌 ‘대중의 언어’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역사지식의 대중화를 지향하면서도 경계하는 부분은 있다. 민족주의와 신파적 역사만을 강조하는 유사 역사학자들과는 차별을 둔다. 김 연구원은 “‘우리가 이렇게 당했어’,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어’라는 감정만 강조하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어렵다”며 “4차산업혁명, 페미니즘 같은 새로운 현상에도 대응할 수 있는 역사 속 교훈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찬호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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