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도소’는 왜 비난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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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살인을 저질렀고,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사형집행인인 내가 널 광장에다 목을 매달겠지. 그렇게 일이 이뤄지는 걸 문명화된 사회에선 ‘정의(Justice)’라고 불러. 하지만 당신이 죽인 사람의 친척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금 당장 저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서 널 눈 속으로 질질 끌고 가 목을 매단다면, 그건 ‘개척지 정의(Frontier Justice)’라고 부르지.”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8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8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영화 <헤이트풀 에이트(The Hateful Eight)>에 등장하는 사형집행인 오즈월드 모브레이의 말만큼 ‘사적 제재(私的 制裁)’를 쉽게 설명하는 대사는 드물다. 사적 제재란 현존하는 사법체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개인이나 집단이 사적으로 결정해 집행하는 단죄 또는 처벌을 말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이런 ‘개척지 정의’는 금지된다. 정해진 법률에 따라 저지른 죄에 합당한 만큼의 처벌을 받는 법치와 법체계에 의존하지 않는 개척지 정의는 양립할 수 없어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공공연히 ‘개척지 정의’를 표방하고 나선 사이트가 있다. 지난 6월 생긴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다. “법이 정당한 벌을 주지 못하니 직접 해결하겠다, 국가가 못한 범죄자 응징을 대신하겠다”라는 자력구제를 표방한다.

문제는 이 사이트가 특정인을 범죄자라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데 있다. 사이트에서 신상이 공개된 이들이 실제로 범죄나 그에 준하는 혐의가 있는지는 사이트 측에서 올린 근거 자료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사이트가 어떤 형태로 증거를 수집하며, 그 진위를 가리는 기준과 근거는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개척지 정의는 통쾌하지만 늘 오판 가능성을 걱정해야 한다. 디지털 교도소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로 동명이인을 지목해 물의를 빚었다. 한 대학교수가 성 착취 영상물을 구매하려 했다며 신상을 공개했지만, 결국 교수를 사칭한 누군가가 허위 캡처 사진을 제보해 신상 공개를 유도했다는 결론이 났다. 지인 능욕 게시물 제작을 의뢰했다며 신상이 공개된 한 대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간혹 법치 아래에서도 자력구제의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드물게 ‘개척자 정의’가 통용된다. 법이 만들어지거나 바뀌는 속도가 너무 느려 사회와 괴리된 끝에 자력구제가 인정된 극단적 경우다. 의붓아버지 김영오에게 12년간 성폭행을 당해온 20대 딸은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의붓아버지를 살해했다. 사건 직후 가정문제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 법이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고, 친족간 성폭력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제정됐다. 딸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사면됐다.

디지털 교도소는 이런 사례가 아니다. 정당한 사유가 있는 자력구제가 아니라 엄벌주의와 대중의 말초적 쾌감이 교합돼 태어난 괴물에 불과하다. 어떤 형태로든 국내 접속이 차단되고, 운영자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당한 끝에 문을 닫게 될 운명이다.

법치는 사회구성원의 합의다. 이를 무시한 자경주의 내지 개척지 정의의 최후는 디지털 교도소와 같다. 공분을 살 만한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사적 제재가 허용되기 시작하면 법치는 무너진다. 당장은 시원하지만 개인이나 집단의 주관과 감정에 의한 집행과 처벌이 일반화되고, 결국 공정성이 배제된 절차와 결과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온다.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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