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96년 8월 사법시험령을 개정했다. 이른바 ‘고시 낭인’을 막겠다며 응시 자격 제한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1차 시험을 4차례 응시한 사람은 마지막 응시 이후 4년간 1차 시험에 다시 응시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개정 4년 후에 생겼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사법시험 제1차 시험에 4번 응시해 내리 불합격한 수험생들이 실제로 시험 응시가 막히자 집단 반발했다.
1286명의 수험생은 사법시험령의 응시자격 제한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돼 헌법상 보장되는 직업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 등 기본권을 침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시험부터 칠 수 있게 해달라”며 헌법소원심판의 결론이 날 때까지 해당 조항의 효력을 중지해달라는 ‘가처분’도 함께 냈다. 가처분이란 본안사건에 대한 재판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법적 지위나 권리의 임시적 보호를 위해 본안사건 재판 이전에 행하는 재판이다.
문제는 헌법재판소법이 ‘정당해산심판’과 ‘권한쟁의심판’에만 가처분이 가능하단 조항을 뒀다는 점이었다. 개인의 권리구제를 위해 청구하는 헌법소원심판에는 가처분 조항이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수험생들이 낸 가처분을 불과 17일 만에 인용했다. 명문 규정은 없지만 헌법소원심판에서도 가처분 필요성이 있을 수 있고, 달리 가처분을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헌법소원심판에서도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게 드물지 않은 풍경이 됐다.
그러나 이후 가처분이 인용된 사건수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2002년 구속기소 된 군인의 면회 횟수를 매주 2회로 제한한 군행형법 조항 효력정지 가처분 ▲2014년 난민 신청을 낸 외국인이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변호인 접견 신청 허가 가처분 ▲2018년 자립형 사립고와 일반고를 중복 지원하는 것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효력정지 가처분 ▲2018년 합격자 성명을 공개하는 변호사시험법 효력 정지 가처분 정도가 전부다.
물론 헌법재판에서의 가처분, 특히 법령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결정은 그 효과가 광범위하게 미쳐 일반 민사소송의 가처분이나 행정소송의 집행정지와는 달리 엄격한 심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 헌법재판소법엔 이러한 특성이 언급된 가처분 조항이 없을 뿐더러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의 가구제 절차를 준용한다고만 되어 있다. 그 때문에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과 같은 빠른 권리구제를 기대하며 가처분을 신청한 국민은 왜 헌재가 자신의 가처분을 받아주지 않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헌법재판 특유의 가처분 요건이 민사소송 내지 행정소송의 그것과 다르다면, 이를 명확히 법령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알쏭달쏭한 기존의 판례만으로는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시리즈 연재를 이번 호로 마칩니다.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