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애 전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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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젠더연구회의 든든한 언니

‘잘 아니까’가 아니라 ‘여자 한 명 가면 좋으니까’였다.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를 맡은 경찰 간부가 외부 전문가를 만나러 가면서 상사에게 들었던 말이다. 불과 한 달여 전이다.

이은애 전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팀장(총경)은 “제가 올해 마흔여섯인데 아직도 이런 얘기를 듣는다”며 “여경 비율이 10%를 넘었지만 경찰이 ‘남성 조직’이란 점은 여전히 변함없다. 여전히 여성이 한 명밖에 없는 지구대가 적지 않다”고 했다.

사진/이준헌 기자

사진/이준헌 기자

이 총경은 지난 2년간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를 맡았다. 수사권 조정의 쟁점을 가장 잘 아는 경찰 간부 중 한 명이다. 일선서 여성청소년과장을 지낼 때는 청소년용 책 <관점의 힘>을 쓰기도 했다. 성매매 직불금 사기를 다룬 석사 논문도 썼다. 지금은 총경으로 승진한 뒤 교육을 받고 있다.

정원 120명에 여성이 5명인 시절 경찰대에 들어갔다. 수해로 피가 모자란다며 헌혈차가 경찰대에 왔는데 남성용 수혈판밖에 없어 헌혈을 포기한 적도 있다. 그는 “형법 시간에 낙태를 주제로 토론하는데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이야기가 나왔다. 이때 남자 동기가 ‘성폭행당하도록 행동한 사람이 잘못’이라며 낙태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더라. 조금 많이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는 2017년 12월 경찰젠더연구회를 만들었다. 경찰에 갓 들어왔을 때 “왜 이런 젠더 문제를 두고 고민을 나눌 선배가 없을까”라는 생각이 컸다. 그는 “이제는 나이가 차고 계급이 어느 정도 되니 저를 괴롭히는 사람이 조직 내에 많지는 않다”며 “여성 후배들이 본인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든든한 언니, 혹은 지지자가 되어야 하는 위치가 됐다고 느껴 연구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연구회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다. 책도 읽고, 술도 마시며 고민을 나눴다. 시작은 8명이었다. 지금은 28명까지 회원이 늘었다. 지난 7월에는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교육장에서 첫 공개세미나를 열었다. 주제는 온라인상 여경 혐오, 여경의 역할과 기능 변화, 성별 분리 채용 관행이었다.

그는 경찰이 최근에야 n번방 사건 등 여성대상 범죄 수사에 나선 것을 두고 “의지가 없었다기보다는 아예 문제인지 몰랐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문제 제기는 10년 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경찰 내부에서 범죄로 인식했다는 취지다. 그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을 중요한 범죄로 다루기 시작한 건 10년 안쪽의 일”이라며 “경찰에서 모든 역량을 투입하면 해결되지 못할 범죄는 없다. 어디에 역량을 투입할 것인지 선택의 문제인데, 그동안 여성대상 범죄는 ‘중요한 범죄’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여성 피해자가 많은 범죄를 특수하게 다루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도 했다. “경찰은 최근까지 여성 피해자가 많은 범죄를 특수한 범죄로 취급해왔다. 일상적인 조직이 아닌 ‘성범죄 대책반’ 같은 임시 조직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여성대상 범죄를 특수하게 다루는 접근에서 나아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성평등 치안서비스가 무엇인지 생각을 좀 더 발전시켜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원진 기자 i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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