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학교-이탈리아 초등학교에서의 화해와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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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혼란과 갈등 속에서 민족과 통일을 고민한 역사학자가 떠올린 책은 <사랑의 학교>였다. 서울대 사학과의 김성칠 교수는 오랜 분열을 끝내고 하나의 나라가 된 이탈리아에서 보여준 화해와 통합의 초석을 아미치스의 동화에서 본 것 같다. 한국전쟁 와중에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나라 만들기(nation building)’에 대한 아동문학의 가치와 효용은 성경이나 불경급이다. 실제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의무교육과 발맞춰(!) 출간된 <사랑의 학교>는 1950년대까지 교과서로 채택됐다. 왕정에서 공화정까지, 승전국에서 패전국까지 이탈리아가 역사의 산과 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에도 대를 이어 학습했다.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지음·이현경 옮김·창비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지음·이현경 옮김·창비

작품의 배경은 북부 도시 토리노의 초등학교에서 펼쳐지는 1년이다. 이탈리아 통일을 주도한 사르데냐 왕국의 수도가 토리노였다는 점을 기억하자. 주인공은 초등학교 4학년 엔리코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엔리코는 채소장수부터 귀족까지 다양한 계층이 뒤섞인 급우들과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담는다. 반도의 최남단 롬바르디아에서 온 전학생도 있으니 학급이 작은 이탈리아인 셈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다 모이다 보니 매일 별의별 일들이 일어난다. 엔리코가 쓰는 일기가 근간을 이루지만 틈틈이 부모님의 격려와 당부가 편지 형식으로 끼어들고 무엇보다 백미는 매달 교실에서 낭송되는 ‘이달의 이야기’다.

가장 익숙한 것은 ‘아펜니노산맥에서 안데스산맥까지’, 우리에게는 ‘엄마 찾아 삼만리’로 알려진 스토리다. 아르헨티나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난 엄마에게서 연락이 끊어지자 소년이 대서양을 건너 천신만고 끝에 모자 상봉을 이룬다. 가족애의 기반을 다지면서 헌신과 희생의 덕목을 부각하는 ‘이탈리아판 삼강행실도’다. ‘파도바의 꼬마 애국자’와 ‘사르데냐의 북 치는 소년’은 애국심을 강조하고 ‘피렌체의 글 베끼는 소년’은 효심을 가르친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대표하는 각각의 지역들은 상상의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하나의 이탈리아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칫 전근대적인 충효의 가치라고 단정 짓기 쉽지만 적어도 나폴레옹의 근대는 나라를 수호하는 국민으로서 시작됐다.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애국심은 가족과 친구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를 우선하고 교실에서 학우를 배려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원제인 ‘쿠오레’가 사랑과 우정을 내포한 ‘마음’을 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게다가 ‘38선’이 사회적으로도 그어진 현실에서 ‘석탄장수와 귀족’의 에피소드는 사회적 계층혼합의 이상까지 보여준다. 귀족인 노비스가 석탄장수 아들 베띠에게 “비렁뱅이 아버지를 뒀다”고 헐뜯었다. 하소연하러 교실에 온 석탄장수에게 노비스의 아버지는 사과하고 악수를 청하면서 둘을 같이 앉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지금 이 순간이 올해의 가장 멋진 수업’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좀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국민통합의 처음과 끝이 학교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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