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볼타 사건의 진실 - 바르셀로나의 근대화 과정과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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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출간된 건 17세기 초다. 스페인 문학사에서 궁금한 대목은 그 이후 소설 장르의 발전이 어째서 스페인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이다. 세르반테스 이후 스페인 소설의 거장을 바로 떠올릴 수 없어서인데, 근대소설의 전성기라 할 19세기에도 소설의 발전과 혁신은 주로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의 작가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세르반테스의 뒤를 잇는 19세기 작가로 플로베르나 도스토옙스키에 견줄 만한 스페인 작가가 배출되지 않은 사실이 역설적으로 스페인 문학의 특징으로 보인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권미선 옮김·민음사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권미선 옮김·민음사

그렇지만 거장의 부재와 같은 문학사의 특징적 양상을 작가적 역량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특히 소설은 근대사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정확히 대응해 탄생하고 진화해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세 로망스 문학(기사 로망스)이 마지막으로 유행한 나라가 스페인이고, 그런 배경에서

<돈키호테>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후 스페인 소설의 빈곤은 스페인의 근대화 지체 현상에 원인을 돌릴 수 있다. 미국과의 식민지 전쟁에서 패배한 1898년을 기점으로 스페인 문학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다는 사실은 근대문학사와 사회사의 조응관계를 한 번 더 실증해준다. 소위 스페인 현대문학의 기점이다.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사볼타 사건의 진실>은 프랑코 시대의 마지막 해인 1975년에 출간되어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하면서 새로운 시대 개막의 신호탄으로 평가받은 작품이다. 앞서 스페인 근대소설사까지 언급한 것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여서다. 제국시대 이후 몰락을 거듭하던 스페인은 19세기 말에 가서야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1888년)를 계기로 서서히 근대화의 시동을 걸게 된다(바르셀로나는 1929년 한 차례 더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며 스페인 경제의 중심도시로 부상한다. 멘도사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작가로 도시의 성장 과정을 <경이로운 도시>라는 소설에 담아내기도 했다). 근대화의 양상은 비슷하다.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하고 이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산업의 비약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자본에 의한 노동착취는 차츰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형성하게끔 하고, 이는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사볼타 사건의 진실>에서 벌어지는 주된 사건은 두 가지다. 첫째로 총파업을 주도하려는 노동자들이 차례대로 테러를 당하면서 파업이 무산되는 것과 군수기업인 사볼타사의 사장이 암살당하는 것이다. 시골 출신의 변호사 사무실 직원 미란다가 이 두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다.

멘도사는 추리소설적인 기법을 통해서 독자의 흥미를 끝까지 잃지 않게끔 하면서(이야기의 재미는 무엇보다 세르반테스가 중요시한 미덕이었다) 역사적 진실을 포착하는 데도 성공한다. 소설은 스페인, 좁게는 바르셀로나의 근대화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어떤 범죄들이 저질러졌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보여준다. 노동자들의 삶뿐만 아니라 그들의 속물근성까지 정확하게 묘사하며 자본가들의 부도덕과 함께 인간적 나약성까지 잘 보여준다. 노동자와 자본가, 어느 쪽도 편들지 않으면서 역사의 진실을 포착하고 소설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 모범적인 사례라고나 할까. 세르반테스가 작명한 ‘모범소설’은 멘도사의 소설에도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이현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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