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죽음이란 공포에 시달렸던 톨스토이

청년시절에 발표한 자전소설 <유년시절>에서부터 죽음은 톨스토이 문학의 주요 주제였다. 삶에 대한 긍정과 예찬으로 마무리되는 대작 <전쟁과 평화>를 완성한 직후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던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한 이후 다시 한 번 심각한 회의에 봉착한다.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죽음이 인간의 불가피한 운명이라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것이 고뇌의 내용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덜미를 잡히는 물음이지만 톨스토이의 경우 누구보다 철저하게 그 물음에 답하고 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가 그토록 집착했던 죽음과 인생의 의미, 그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창비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창비

<참회록>이 성찰적 에세이라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중년의 판사로 재직하다가 죽음을 맞은 이반 일리치를 주인공으로 한 중편소설이다. 이름부터가 흔한 러시아인을 떠올리게 하는 이반 일리치의 삶은 평범함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런데 이 ‘평범함’이 문제다. 이반 일리치의 부고가 직장 동료들에게 전달되고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가 대표격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친구는 물론 이반 일리치의 아내에게서도 그의 죽음은 관심사가 아니다. 직장 동료들은 그의 죽음이 가져올 자리이동이나 승진에만 관심을 두며, 장례식에 참석한 친구도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나자마자 카드놀이판으로 달려간다. 게다가 아내의 관심은 남편의 사망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국고 지원에만 쏠려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렇듯 누구에게도 진지한 애도와 성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반 일리치 자신도 살아 있을 때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그랬던 이반 일리치도 결국 마흔다섯의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려 죽고 만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삶을 평범하지만 끔찍한 것이었다고 말하는데, 뒤집어보자면 평범함이 면책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죽음에 대한 다수의 무사유와 편견은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고위관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반 일리치는 ‘집안의 자랑거리’로 똑똑하고 예의 바른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 한때 역겨운 행동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남들도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라는 걸 알고는 금방 잊는다. 노는 걸 좋아하는 편임에도 업무에 있어서는 지극히 관료적이고 엄격한 태도를 취했고, 언제나 상류 사교계의 규칙에 따랐다. 사교계의 평판에 맞춰 귀족 가문의 여자와 결혼하고 결혼생활이 예상과 달리 틀어졌을 때도 기대를 재조정해 적응했다. 승진에서 한 번 밀려나기도 했지만 운 좋게도 곧 더 좋은 자리로 부임했다.

모든 일이 만족스럽게 진행되는 것 같던 시점에서 이반 일리치는 새로 이사한 집 장식을 위한 커튼을 달러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진 이후에 차츰 건강이 악화된다. 그를 끝까지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자신의 인생이 정당했다는 인식이다. 마지막 사흘 밤낮의 고통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그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깨달음에 이르고 비로소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이지만 그 공포로부터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지 시사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현우 서평가>

이 한권의 책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