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짝을 이루는 단어는 ‘가족’과 ‘행복’이다. 정다운 식구들이 포근한 사랑을 엮어가는 집이야말로 행복의 원초적 형상이다. 그러나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한 조각만 어긋나도 보기 흉한 모자이크 작품이 행복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수다한 ‘행복론’은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평범한 일에 감사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당신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행복의 기원>은 이의를 제기한다. 행복은 감정으로 느끼는 경험인데 자꾸 관념이나 가치로 착각한단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대전제는 동물이다. 중요한 선택과 행동이 합리성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이뤄진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성이 침묵하고 본능이 활약할 때도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감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된다.
지구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종과 개체가 지닌 모양과 습성은 지속적으로 개·보수가 일어나는 싸움의 도구이다. 생존의 전투는 3D의 연속이다. 어렵고 더럽고 위험하다. 멀고 험한 인생길을 누가 감연히 걸어가려 할까.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일이고 차선책은 바로 죽는 것이라고 실레노스가 갈파한 까닭이다. 인류와 인간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보상책이 절실한 대목이다. 그래서 뇌는 기쁨, 즐거움, 뿌듯함, 자신감 등으로 표현되는 쾌감을 분비하는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개선해왔다. 행복감은 동물로서의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원활한 신진대사와 순조로운 짝짓기를 위해 인간에게는 가족과 사회가 필요하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사람은 뼛속까지 복수형(plural)이다. 혼자가 되는 것이 생존에 큰 위협이 되니 외로움을 느끼고 다 함께 어울리면 번식을 크게 도와주니 행복감을 누리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기쁨과 고통 모두 사람에게서 나오고 사람으로 들어간다. 돈이 사람을 대체하는 사회가 될수록 불행해진다. 돈으로 상징되는 물질주의와 성과주의가 강조될수록 행복의 원천인 사람에 대한 존재감이 희박해지니까. 자원봉사를 하고 기부를 할수록 행복감이 높아지도록 뇌는 설계돼 있다. 무엇보다 ‘한방에 인생역전’의 행복은 존재하기 힘들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니 커다란 쾌락보다 소소한 기쁨이 행복의 본질에 더욱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이고 인간관계가 생존의 관건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까. 책에 따르면 집단주의 문화의 부작용이다. 타인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사회구조에서 개인은 삶의 자유를 빼앗긴 듯한 결핍감에 시달리게 된다. 과도한 물질주의 풍조로 학벌, 재산, 용모 등 모든 면에서 비교와 경쟁을 강요받는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남을 위해 나를 버리지 말고 각자를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자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다원주의적 가치관, 자유주의적 인간관이 한국사회에 자리 잡기 위해서라도 행복을 도덕적 지침이 아니라 구체적 쾌락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음미할 만하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