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유니온’ 원진주 지부장·김한별 부지부장, 방송작가들의 당당한 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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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문제가 생겨도 각자도생해야 하는 방송작가들의 특성상 힘을 모으기란 쉽지 않아보였지만, 2017년 11월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이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 모였다. 체념의 시선이 무색하게,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소모품 취급받는 현실에 작은 변화가 쌓였다. 지난 3월 ‘슬기로운 작가생활’을 이끌 새 임원진이 활동을 시작했다. 12년차 방송작가 원진주 지부장(32)과 7년차 김한별 부지부장(30)이다.

방송작가유니온의 김한별 부지부장(왼쪽)과 원진주 지부장.

방송작가유니온의 김한별 부지부장(왼쪽)과 원진주 지부장.

원 지부장은 부당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였다. 제작사는 기존 작가들 몰래 새 작가팀을 꾸리고 있었다. “대부분 주 52시간 넘게 상근으로 일하고 있는데도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약서도 쓰지 않아요. 프리랜서라지만 프리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자를 때는 ‘너희들은 프리랜서니까’라고 모순적으로 말하는 행태에 너무 화가 났어요.” 당시 원 지부장은 방송작가유니온과 함께 제작사·사측에 맞섰다. 이때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지부장이 됐다.

노동문제가 이슈화되기까지 방송의 힘이 크다. 정작 방송은 내부 문제에는 입을 닫곤 한다. 김 부지부장은 ‘창작’이나 ‘유연’이라는 말들이 노동의 문제를 덮는다고 말한다. “사측은 작가를 프리로 유연하게 고용해야 방송 질이 올라간다고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는 자신들의 도태를 방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유연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불안정함을 이용해 착취하면서 방송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해요.”

이들에게 노조는 엄청난 ‘비빌 언덕’이다. 임금 체불 같은 부당대우는 노조가 나서면 열에 아홉은 해결된다. 상담도 한 주에 3~4건이 들어올 정도로 많아졌다. 올해는 언론노조와 KBS·MBC·EBS가 구성한 특별협의체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돼 있던 문제의 해법을 찾기로 했다. ‘막내작가’라 불리는 취재·보조작가들의 노동환경, 지역 작가 처우, 불공정 계약서 개선 등을 다룰 계획이다. 노조는 이를 토대로 서브·메인작가 등의 처우 개선까지 논의를 이어가려고 한다.

더 많은 작가를 모으는 데도 집중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연차 높은 작가들이 후배들을 위해 목소리 내왔다면, 이제는 막내작가나 서브작가들이 많이 유입됐으면 한다. 이들 가운데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장시간 노동을 해도 부당하다는 걸 모르는 이들도 많다. 김 부지부장은 “아직 노조가 있는 줄도 모르는 방송작가들이 많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기댈 수 있고, 내 동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원하는 작가들이 노조를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 지부장은 “좋아야만 할 수 있는 게 방송일”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온 친구들이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하루아침에 좋아하는 글을 쓰다가 내팽개쳐지는 취급을 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죠. 그런 환경에서 쓰고 싶은 글을 써야 시청자에게도 와닿지 않을까요.” 방송작가들의 당당한 권리찾기는 계속된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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