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을 정면에서 흔든 대리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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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란 게임은 한국에서 일종의 시대적 아이콘이 됐다. 해외에서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롤 프로게이머 ‘페이커’는 아는 세상이다. 이 게임은 3월 12일 현재 게임트릭스 게임사용량 기준으로 점유율 50%로 84주째 1위다. PC게임을 하는 주변 사람 중 절반이 롤을 한다고 보면 얼추 맞는 셈이다.

류호정 정의당 비례후보가 3월 16일 국회에서 ‘대리게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류호정 정의당 비례후보가 3월 16일 국회에서 ‘대리게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게임은 이용자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뤄 상대편 팀의 건물을 먼저 파괴하는 쪽이 이기는 ‘팀 게임’이다. 게임의 실력은 등급(티어)으로 표시된다. 아이언과 브론즈, 실버, 골드까지의 등급은 소위 ‘낮은 등급’이고, 플래티넘 이상 다이아몬드, 마스터, 그랜드마스터 등급은 ‘높은 등급’이며, 최상 등급인 챌린저는 전 세계 이용자 가운데 0.01%만이 올라갈 수 있는 ‘천상계’다. 페이커의 등급이 바로 챌린저다.

이용자는 실력이 비슷한 이들끼리 팀을 이뤄 겨룬다. 예컨대 브론즈 등급 게임 이용자는 브론즈 등급 이용자와 팀을 이뤄 브론즈 등급으로 이뤄진 상대편과 겨루는 식이다. 그런데 ‘챌린저’ 등급의 뛰어난 이용자가 낮은 등급에 있는 이용자들과 게임을 하면 어떻게 될까. 실력이 뛰어난 이용자 혼자 게임을 이겨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롤은 많이 이길수록 게임 등급이 상승하는 구조다. 젊은 또래집단에서 롤이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이 게임의 고등급은 벼슬이나 다름없다. ‘대리게임’이 생겨난 이유다. 실력 좋은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의 계정으로 게임을 해 손쉽게 승리하고, 게임 등급을 인위적으로 올려주는 것이다.

대리게임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건 처벌 대상이다. 프로게이머들이 대리게임을 해주는 대가로 매달 수천만 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2018년 게임산업진흥법에 대리게임업을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최근 정의당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 ‘비례대표 1번’을 차지한 20대 후보자가 자신의 롤 등급을 다른 사람이 대리해줘 올린 사실이 드러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음주운전이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대학생 시절의 ‘대리게임’이 국회의원 후보자의 결격사유로 등장한 것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게다가 그의 ‘대리게임’은 법 개정 이전의 일이고, 게임을 대신해준 사람도 이를 직업으로 한 것인지 불분명해 처벌 대상도 아니었다.

반감의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무한경쟁이 내면화된 청년을 관통하는 결절점은 ‘공정성’이다. 대리게임은 그 역린을 정면에서 건드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대상이 된다. 과정과 기회, 경쟁의 공정함과 투명함이 침탈당할 경우 이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공정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정의당에서, 가장 먼저 여의도에 들어갈 사람이 공정의 룰을 건드렸다는 게 문제다.

정의당은 후보자를 재신임했다. 이의 제기가 ‘그깟 게임’ 내지 ‘근거 없는 인신공격과 폄하’로 격하되면서, 탄핵 세대가 겪는 정치적 효능감의 좌절 내지 무력감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된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무관용 시대의 청년들에게, 누군가가 과오를 저질렀음에도 무탈히 당선 안정권에 속하게 된 사실은 ‘왜 그 사람에게만 너그러운가’란 의문을 품게 만든다. 공당이라면 이들의 분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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