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비상, 장애인을 위한 매뉴얼은 없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우한 폐렴으로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설 연휴까지 중국의 감염자는 3000여 명, 사망자는 80명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도 네 번째 감염자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가 확산되던 시기에 스산했던 사회의 풍경이 생각난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쏟아지던 공포와 비난의 눈길이 너무 따가워 마스크가 눈빛도 걸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또 여러 걱정이 들었다.

지난 1월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네 번째 확진자가 치료 중인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에서 병원 관계자가 닫힌 문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권도현 기자

지난 1월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네 번째 확진자가 치료 중인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에서 병원 관계자가 닫힌 문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권도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중국 우한시가 봉쇄되기 전에 500만 명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 중 일부는 입국 시 검역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하고 잠복기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난 뒤에야 감염 사실이 알려졌다. 감염병의 확산이 문제될 때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질책도 매섭다.

예방백신도, 치료제도 특별히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최대한 감염병을 관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언론은 괴담이나 특정 국가와 사람에 대한 혐오보다는 정부의 대책, 감염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불안을 최소화하고 스스로 조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감염병 관리 시 우선 고려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특히 활동지원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들이 그렇다. A씨는 메르스 사태 때 평소 신장 투석을 받던 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다. 메르스 관리대책본부가 활동지원사의 출입까지 통제시켜 A씨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식사·목욕 등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견디지 못해 병원에 입원하려고 했으나 입원도 거부당했다. A씨는 정부를 상대로 장애인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3년이 넘도록 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감염병예방법상 제4군 감염병에 해당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감염병 예방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을 작성해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제2차 감염병 예방관리 기본계획(2018~2022년)과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에 장애인을 고려한 대응은 찾아볼 수 없다. 제5차 장애인 정책종합계획(2018~2022년)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사회 삶이 가능토록 복지·건강 서비스 지원체계를 개편한다’는 전략은 있지만, 그에 맞는 대책이 없어 감염병이 확산될 때 장애인들은 질병에 걸리지 않아도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국가의 정책은 장애인을 포함한 취약계층에 대한 고려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을 잘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인조차 배제되지 않을 정도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는 정부라면 대다수 비장애인 시민을 위한 정책은 더 잘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법률 프리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