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병원은 합법적인 범죄조직인가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병원이 의료법을 위반하는 이유

의료법 어기는 걸 아주 가볍게 여겨… 영업사원이 대리수술까지

의료법을 가장 많이 위반하는 곳은 어디일까?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병원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이 의료법을 가장 많이 어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한 요양원 환자들이 2017년 6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을 보기 위해 건물 앞에 나와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청와대사진기자단

한 요양원 환자들이 2017년 6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을 보기 위해 건물 앞에 나와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청와대사진기자단

일단 일반인들은 의료법을 어길 일이 별로 없다.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주가조작 범죄를 저지를 일이 없는 것처럼, 일반인들은 아예 의료행위를 할 일이 없으니 의료법을 어길 일도 없다. 일반인들은 의료행위에 접근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연히 의료법 위반은 의료인들 사이에서, 병원에서 가장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간호사가 의사 ID로 대리처방

두 번째는 병원 내에서 의료법 어기는 걸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가령 나의 첫 근무지였던 내과 중환자실은 컴퓨터 옆에 아예 의사의 ID와 비밀번호를 써서 붙여 놓았었다. 의사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간단한 처방은 간호사가 의사 ID로 로그인해서 넣으라는 것이다. 실제 의사들은 주당 100시간 이상 일하곤 했다. 2016년 12월에서야 전공의들의 노동시간을 최대 주 88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이 통과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의사 ID로만 처방을 넣을 수 있도록 한 것은 ID를 사이좋게 공유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의사만’ 처방을 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대리처방은 물론이고 대리로 의료행위를 일삼는 곳이 병원이다. 지난해 논란이 된 바, 의료기 판매회사 영업직원이 대리수술을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영업사원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는 숨졌다. 만약 환자가 숨지지 않았다면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을까?

이처럼 의료법 위반의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다. 무자격자가 의료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해서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거나 사망할 경우 소송에서 어렵게 이긴다 한들, 건강이나 목숨은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법 위반의 또 다른 사각지대는 요양병원이다. 대형병원에서 일하다보면 재벌 회장님부터 신원불명의 행려환자까지 다양한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 명품브랜드 구두를 신은 할머니나 빳빳한 중절모를 쓰고 잘 차려입은 할아버지들, 개인 간병인과 운전기사를 대동하고 오는 부유한 노인들은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한 편이다.

반면 요양병원에서 상태가 악화되어 오는 가난한 노인들은 호발부위마다 욕창을 다 달고 있으며, 옴이나 진드기에 옮아 있기도 하고 지린내 같은 것이 난다. 하지만 병원이 환자를 노골적으로 차별할 순 없기 때문에 일단 병원에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는 재벌 회장이든 가난한 독거노인이든 비슷한 치료를 받게 된다. 얼마 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가난한 노인의 현실은 딱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개인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물론 생각해보면 내가 일하는 대형병원조차 의료법 위반이 만연한데 은폐가 쉬운 개인병원이나 요양병원은 오죽할까.

요양병원은 받는 금액이 일정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쓰는 돈을 아낄수록 병원 수익이 올라간다. 그래서 기관지에 직접 들어가는 석션(suction)용 고무튜브나 주사기 등 일회용품의 재사용은 말할 것도 없고, 감염위험 때문에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수액 하나를 한두 달씩 여러 명의 환자에게 돌려가며 쓴다고 한다. 또 혈액이 묻은 주삿바늘 폐기용 박스 등을 씻어서 재사용하거나 ‘의료용 폐기물’ 처리비용을 아끼기 위해 환자 배설물이나 체액 등으로 오염된 폐기물을 일반 쓰레기통에 몰래 버린다고도 한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환자들이 몰려드는 시간대에 한 간호사가 여러 명에게 동시에 투약할 수 있도록 수액을 며칠씩 미리 섞어두기도 한다며, 약이 믹스된 수액이 잔뜩 쌓여 있는 박스 사진을 보여준 간호사도 있었다.

비위관, 폐로 잘못 넣고 기록 삭제

더 끔찍한 건 병원들이 환자들의 고통에 무감하다는 점이다. 한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말기암환자에게 투여되는 진통제를 원래 쓰던 용량의 10분의 1로 줄여서 준다고 했다. 분만 통증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암성 통증에 ‘플라시보(가짜 약)’라니 말이 되는 소린가. 진통제를 투여하면 편안해질 수 있는데 진통제 값 몇 푼을 아끼려고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를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방치하고 있다니 너무 끔찍했다.

최악의 이야기는 의료인이 아닌 직원이 환자에게 L-tube(비위관·코로 긴 고무관을 넣어 위장까지 닿게 해 입으로 먹지 못 하는 환자에게 약이나 미음 등을 주는 장치)를 넣다가 폐로 잘못 들어간 사고였다. L-tube를 넣고 나서 위장까지 잘 들어갔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미음을 주는 바람에 폐로 끈적거리는 미음이 들어가고 환자의 산소포화도는 급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L-tube를 넣은 다음 엑스레이를 찍어서 위치를 확인한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바로 기관지내시경 등을 통해서 폐에 들어간 미음을 최대한 씻어내거나 응급처치를 시행하고 인공호흡기를 적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요양병원은 응급처치는커녕 L-tube를 넣었다는 기록 자체를 삭제했다. 가족들에게는 환자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얘기했다.

며칠 뒤 그 환자는 사망했다. 가족들은 노인이 돌아가실 때가 됐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며칠간을 미음이 가득 찬 폐로 밤새 헐떡거리며 죽어가야 했다. 가난한 노인으로 죽어간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다.

이처럼 의료법 위반은 주로 병원이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개인 일탈이 아니라 병원이 저지르는 조직적인 범죄인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에게만 허락된 의료행위를 해당 면허가 없는 사람에게 시키고 직원들에게 의료법을 위반하는 일을 공공연하게 지시하고 방조하는 병원,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에 너무나도 무감각한 병원들…. 서울 한복판에는 이런 범죄자들이 가득한 소굴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자신이 범죄자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현장 간호사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정부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 범죄자들을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병원은 합법적인 범죄조직인가?

<최원영 ‘행동하는 간호사회’ 간호사>

간호사가 보고 있다바로가기

이미지